기차를 예매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에 기차를 예매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매한 기차표를 취소하고 학생복지위원회(학복위)의 ‘한가위 귀향버스’를 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가격. 부산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KTX 요금이 57300원인데 비해 학복위의 귀향버스는 16000원이다. 일반 고속버스가 2~3만 원대인 것과 비교해도 귀향버스는 아주 저렴한 편이다. 왕복 10만 원이 넘는 교통비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겐 단연 매력적이다.

학교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쏠쏠한 장점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기숙사에 살거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떨어진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학교에서 바로 버스에 탈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장점이 된다.


출발 전 학교에 모여 있는 귀향버스들.


옆자리엔 ‘썸남’ 대신 병맥주와 한과

나는 학복위 귀향버스를 신청하면서 ‘차장’에도 지원했다. 차장은 해당 버스의 인원점검과 분실물 등을 담당하는 사람인데, 차장을 맡는 사람에겐 혜택이 주어진다기에 덥석 지원을 한 것이다. 내가 기대한 혜택은 가격인하 같은 거였지만, 실제로 내게 주어진 것은 커다란 한과세트였다.

일부 대학의 귀향버스는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도시락 등의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광주나 부산 등 먼 노선의 경우 도착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탄 버스 역시 긴 귀향길을 고려해 무언가를 제공했다. 다만 그 종류는 특이하게도 병맥주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한과세트와 병맥주를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내려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차장의 역할이 적혀 있는 안내문.

차장 역할은 간단하지만 녹록치 않았다. 예정된 버스 출발시간은 5일 오후 2시. 원래대로라면 출발 10분 전인 1시 50분에 1차 인원점검을 하게 돼 있었지만, 탑승하기로 된 35명 중 20명도 채 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만약을 대비해 적혀 있는 연락처도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 탑승객의 경우 2시 10분까지도 도착하지 않아서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시기도 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는 탑승객 한 명을 내려놓고 갈 뻔도 했다. 출발 직전 한 탑승객이 “화장실에 놓고 온 물건이 있어 다녀오겠다”고 했고, 그 분께서 돌아온 후 출발을 했는데 알고 보니 쌍둥이 형제였던 것이다.

학복위에서 운영하는 귀향버스에 탄다고 하면 일부 사람들은 같은 학교 사람들과 가는 것이니 더 편하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옆 자리 이성과의 ‘달달함’을 꿈꾸는 새내기도 간혹 있다.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해당 학교 학생이 아니어도 신청할 수 있는데다가, 옆자리엔 이성 대신 짐이 놓인 경우가 많다.

모든 버스에는 목적지를 나타내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과거에 비해 이용객 줄었지만…

대학에서 귀향버스 제도가 정착된 것은 90년대부터다. 연합뉴스의 1993년 기사에 의하면 귀향버스 제도는 연세대, 서울대, 한양대 등 많은 대학에서 실시됐으며 “저렴한 요금과 도시락 제공 등의 이점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최근엔 귀향버스 제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다. 박정수 고려대 학생복지위원회 위원장은 “90년대부터 사업을 해왔는데 KTX가 생겨나고 하면서 이용하는 학생들이 줄었다”고 말했다. 과거엔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나 고려대‧동덕여대 등지처럼 가까운 대학들이 연합해서 사업을 하는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연합하는 대학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90년대엔 2~3000명의 학생들이 귀향버스를 이용했지만 최근 3년엔 4~500명 선에서 그치고 있다.

하지만 귀향버스는 여전히 지방 학생들에겐 매력적인 선택지다. 고려대에서 부산 시청으로 가는 귀향버스를 이용한 김수경(20)씨는 “신청하기가 비교적 쉬운데다가 일반 터미널이 없는 시청 근처에서 내려줘서 편리했다”고 말했다. 포항 노선을 이용한 정희진(21)씨도 “가격이 매우 저렴한 것이 학교 귀향버스의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