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부엌 가면 고추 떨어진다!”


온 가족이 모인 명절날, 물이라도 마실까 해서 부엌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시면서 당신의 며느리를 시키셨다. 부엌은 금남의 구역이었다. 반면에 추석 차례상이 있는 거실은 금녀의 구역이었다. 막상 차례가 시작되면 여자들은 작은방에 모여 나올 수 없었다. ‘모름지기 남자는~’이라고 시작하는 할머니의 말은 진지했고, ‘자고로 여자는~’이라는 말은 지엄했다. 무엇보다도 그런 말을 들으면 괜스레 숨이 막혀왔다.


할머니 댁뿐만이 아니다. 요즘 방송에서도 ‘여자는~’ ‘남자는~’이라고 시작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SBS는 지난 8월 27일부터 ‘달콤한 나의 도시’를 방영했다. 한국판 ‘섹스앤더시티’를 표방한 프로그램으로, 20대 후반의 일반인 여성 4명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연애담을 보여주고, 속마음은 개별 인터뷰와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 SBS '달콤한 나의 도시' 캡쳐



그런데 이 내레이션이 문제다. 그들은 감정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에서 ‘여자는 이렇다’라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지난 수요일(3일) 방영분에서 한 여자 출연자가 남자친구에게 이벤트를 받았다. 그러자 내레이션에서는 ‘여자는 이벤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한다’라고 말한다. 곧이어 여자 출연자는 친구들에게 이벤트 사진을 자랑했다. 모든 여자들이 그럴까. 이벤트를 받으면 자랑하고 싶어하는 여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여자도 있고 이벤트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여자도 있다. 그런데 방송에서 말하는 ‘여자는 이렇다’ 때문에 이벤트를 해주는 남자는 여자의 뛰는 듯한 반응을 기대한다.


tvN의 ‘로맨스가 더 필요해’도 마찬가지다. ‘로맨스 완전 정복’이 기획의도인 이 프로그램은 연애에 대한 전반적인 조언을 한다. 연애할 때 고민스러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상황에 맞는 톡을 보내는 방법도 가르쳐주는 식이다.


 


ⓒ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 캡쳐



지난 13회 방송에서는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함일까. MC들은 말을 할 때마다 ‘여자는~’ ‘남자는~’식의 전제를 유난히 많이 붙였다. 남녀 MC들은 남녀가 아름다운 이별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남자는 단번에 정리하는 것이, 여자는 차분히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것이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것이다. 모든 남녀가 그럴까. 먼저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개념 자체도 모순이다. 이별에 대한 남녀의 입장을 일반화하는 모습은 이 모순을 넘어 억지같이 느껴진다.


 


ⓒ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 캡쳐



지금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도 ‘고추 떨어진다’고 소리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제 연애를 할 때 여자가 남자의 이벤트에 별로 기뻐하지 않거나, 남자가 지지부진한 이별을 선고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남자는~, 여자는~’이라는 수식이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