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인터뷰할 때마다 가라앉은 흙탕물을 휘젓는 기분이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가 맨 처음 꺼낸 말이다. 그는 “지훈이가 죽은 후 1년 동안은 가라앉은 흙 대신 위에 걸러진 맑은 물만 봤지만 이렇게 언론과 접촉하며 그 가라앉은 흙들이 다시 떠오르도록 섞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수십 번을 반복한 이야기지만 아들의 죽음을 되새기는 일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해 7월 군대 내 가혹행위로 자살한 고 김지훈 일병(당시 22세)의 아버지 김경준 교수(54)를 12일 판교역 근처의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사건 경위를 직접 설명하는 아버지 김경준 교수.

순직처리 하겠다더니 ‘일반사망’ 통보

아들 지훈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입대한 지 다섯 달이 채 되지 않은 지난해 7월 1일이었다. 제15비행단 단 본부에 배속된 날로부터는 겨우 40일 만이었다. 유가족은 아들이 죽은 후 3주가 지나서야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처음에 아들이 왜 자살을 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순직처리 되도록 하겠다”고 말하던 군을 믿었다.

하지만 올해 1월 29일 공군본부는 유가족에게 ‘일반 사망’을 통보했다. 가혹행위는 없었고 입대 전부터 정신적으로 연약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로금 500만 원을 받아가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입대 전에는 정신과 한 번 가본 적 없던 아들이었다.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 했다. 아버지는 3월부터 정보공개청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받아든 자료엔 아들이 겪었던 가혹행위가 가득했다. 단 본부에 배속된 직후부터 죽은 날까지 아들은 끊임없는 질책을 받았다. 

가해자 한 중위는 자신의 잘못을 지훈이에게 뒤집어씌우고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을 고치겠다며” 완전 군장을 시켰다. 지훈이의 수첩 마지막 장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하얗다’는 메모가 가득했다. 메모를 본 전문의는 지훈이가 사망 직전 급격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은 것 같다는 소견을 보였다. 7월 3일 국군수도병원 신경정신과에 예약까지 해둔 상황이었다.

물론 정보공개를 청구한 내용을 한 번에 다 받지는 못했다. 굴하지 않고 빠진 정보는 다시 요구했다. 그렇게 자료를 모았다. 하지만 그렇게 받은 내용만으로 경위를 다 파악하긴 힘들었다. 변호사를 선임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내가 말렸다. ‘우리가 밝혀야 한다’며 부실한 진술서를 끈질기게 바라보는 아내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김 교수는 “아내와 함께 지금까지 진술서를 1000번은 넘게 본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이후를 꼼꼼히 기록해오고 있다.


지난 5월, 아들이 다니던 고려대학교에 아들의 억울한 죽음이 담긴 대자보가 붙었다. 비슷한 시기 언론보도도 시작됐다. 김 교수는 언론, 국회의원, 시민단체 등 1000곳이 넘는 곳에 보도자료를 보냈다. 국방위원회 간사인 김성찬 의원(새누리당)이 유일하게 답을 주었다. 국회의원이 움직이자 군의 태도가 변했다. 곧바로 재심의가 결정됐다.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에게 편지를 썼다. 재심의 자리에서 발언하게 해달라고 했다. 8월 12일 이뤄진 재심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처음엔 심의위원들이 아내와 내가 순직결정을 부탁하러, 읍소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 심의에 관여한 심의위원들 다 제정신 아니다, 엉터리였다’라고 강하게 말했더니 심의위원들의 표정이 변하더라. 끝나고 미안하다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재심의 이틀 뒤인 8월 14일 순직이 결정됐다. 

“1시간 30분 만에 결정된 거라더라. 이렇게 빨리 끝날 수 있는 게 7개월이 걸렸다.”

“규정대로 철저하게 조사해주기만 하면 된다”

순직처리는 됐지만 달라진 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관련자들이 처벌되지 않은 것이다. 가해자 한 중위는 같은 부대 13중대장으로 옮겨갔고, 모든 사실을 알고도 한 중위를 감싸고 있는 방관자 허 준장은 공군본부 감찰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공군본부는 유가족에게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한 중위는 가혹행위, 모욕, 강요 대신 위력행사에서만 혐의를 인정받았고 그마저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허 준장은 서면경고 처분을 받았는데, 정작 그 자신이 처분을 담당하는 감찰실의 실장으로 있다.

김 교수는 순직처리 이후 “‘순직했으면 됐지, 죽은 놈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건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건 아니다. 

“공군본부가 항상 얘기하는 법과 규정대로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해주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그게 엉터리로 진행되고 있기에 싸우는 거다.” 

인터뷰 하루 전인 11일 그는 재정신청서를 제출했다. 한 중위의 기소유예와 허 준장의 무혐의를 그냥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재정신청에 대한 결과는 한 달 내에 나온다. 그때까지 언론과 SNS를 통해 이 억울함을 알리는 것이 아버지의 목표다.

한 시간 반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아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씀 있느냐’고 물었다. 어떤 질문에도 논리정연하게 답변하던 김 교수의 입에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는 한참 끝에 답을 했다. 

“참 희한한 게 처음 1년은 지훈이 사진도 제대로 못 봤고 이름을 말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순직 처분 내려지고 현충원에 이장시키고 나니까 그게 되더라.” 

이젠 울지 않고도 죽은 아들의 사진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아버지는, 정작 그 말을 하며 울고 있었다.

다음은 김경준 교수와의 일문일답 정리.

“구속 생각했는데 기소유예”

– 순직 인정을 받기 위해 직접 국가기관과 맞섰다. 힘들지 않았나.

“나는 원래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아는 기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보공개청구도 사건이 있고나서야 알았다. 아내와 진술서를 검토하는 과정도 힘들었다. 진술서 자체가 아주 부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읽었을 땐 감도 안 잡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되는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라. 지훈이가 원래 정신병이 있는 것처럼 묘사됐는데 그 근거가 전문의의 소견이 아니라 지훈이를 처음 만난 한 예비역의 말이다. 지인들이 지나가는 말로 ‘이 사람은 예비역인데 왜 부대에 있었냐’는 식으로 말하면서 의문을 품고 그랬다.”

–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민간기관은 도움을 구하기가 힘든 게, 효과도 없을뿐더러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감을 잡기도 힘들다. 또 도움을 구하려면 사건을 처음부터 다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인권위도 찾아가봤지만 무성의하더라. 변호사들은 진실규명보단 행정소송을 해서 승리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 언론에 꾸준히 보도가 되는데도 큰 이슈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지훈이 사건엔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윤 일병의 경우 물리적으로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대중이 관심을 갖기가 쉽다. 하지만 지훈이는 교묘한 방식의 정신적 살인을 당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지훈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다. 큰 이슈가 되지 못하는 건 가해자와 방관자의 직급이 높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방관자 허 준장은 지금도 감찰실장이지만 앞으로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는 떠오르는 실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언론에 압력을 넣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실제로 기사가 나간 직후에 관련 검색어가 삭제되는 걸 보기도 했다.”

– 순직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공군본부의 태도는 똑같다. 순직은 ‘가혹행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때’ 적용된다. 지금 공군본부는 순직은 맞는데 가혹행위를 한 가해자는 없다고 말하는 셈이다. 나는 당연히 순직이 됐으니 재수사를 하면 한 중위가 최소 구속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언론을 통해서 사건이 충분히 노출된 상황에서도 그런 판결이 내려진 거다. 딱 하나 나아졌던 게 15비행단 측에서 지훈이가 세상을 떠난 자리에서 추모식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거다. 그게 유일하게 고맙다. 공군본부 측은 달라진 게 없다.”

– 공군본부에 요구하는 사항은.

“다들 처벌에 관해 많이 물어본다. 한 중위와 허 준장이 어떤 처벌을 받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지만 그건 유가족인 내가 원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 제대로 조사해서 죄가 밝혀졌을 때 법대로 처벌을 하면 되는 거다. 지금은 제대로 된 조사 자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처벌’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모호함이 오히려 감정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처벌을 강조해 말하고 싶진 않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면 된다.”

– 사건이 해결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종결돼도 내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누구보다 좋은 친구였던 내 아들이 갑자기 떠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건이 해결되지 않아도) 12월에 지훈이 동생이 제대를 하면 내년에 길게 가족여행을 떠나려고 한다(고 김지훈 일병의 동생 또한 공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 최종 목표 같은 게 있나.

“사건을 정리해서 책을 만들고 싶다. 너무나 비정상적인 사건이다. 이걸 통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서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도움이 되도록 하고 싶다. 또 상식에 근거해서 관련자 처벌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한다.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