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원래 안 이랬잖아.” 보통은 변심한 사람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담아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SNL에게 하고 싶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이 만든 이 프로그램에 묻고 싶은 두 가지 물음이 있다.

SNL이 탄생하던 배경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SNL은 원래 ‘할리우드 스타들과 유명 인사들의 코믹한 변신과 정치풍자를 만날 수 있는 코미디’라는 소개 타이틀을 갖고 있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라는 미국의 콘텐츠를 본떠왔다. 등장 후 반응은 뜨거웠다. 핫한 반응의 근원에는 통렬하게 찌르는 정치 풍자가 있었다. 2012년 당시 대선을 앞두고서 SNL은 후보들을 텔레토비 캐릭터들에 대응해 거침없이 희화화했다.

ⓒSNL코리아

그러나 이는 곧 정치인 희화화와 정치적 편파성 문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실질적으로 폐지된다. 이후 비슷한 의도를 띠고 나온 위켄드 업데이트 역시도 소송의 바람을 맞고 사라졌다. 현재 고정 정치 풍자 코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대체된 코너들은 주로 사적인 영역만을 다룬다.

방송 책임자인 안상휘 CP는 스포츠 경향에서 “우리 프로그램이 총대를 매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모난 돌처럼 튀어나와서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는 이와 같은 회피가 전체적인 방송환경의 변화를 더욱 둔화시킨 것이 사실이다. 맨 앞에서 제일 먼저 담을 넘으려던 사람이 저지당하면 뒤에서 눈치 보던 사람들도 포기해버리는 상황과 같다. 정치 풍자 개그는 주기적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치라는 일상영역이 일상이 아닌, 주기가 돌아왔을 때에야 너도나도 숟가락 얻는 눈치 보기 영역이 되었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SNL이 고정적인 정치 풍자 포맷을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의 주된 반응은 “신선하다”였다. 초기 SNL의 애청자였던 김 모씨(23)는 “SNL의 처음을 기억한다. 그런 형태의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 이전까지는 없었기에 파격적이고 신선해서 당시엔 자주 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선한 방송은 곧 폐기처분 되었다. SNL의 정치 풍자 코너 덕택에, 진지하게 접근하면 분쟁을 낳는 씨앗이 되었기에 회피했던 주제가 웃음으로 가볍게 다가왔고 이로써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마음의 간극이 잠시나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것을 가능케 했던 정치와 문화의 결합은 따가운 시선과 안타까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뒤편으로 사라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관심도 바래져갔다.

가슴 부각의 향연… 이게 15금? 요즘 애들 알 거 다 안 다지만

방송이 시장경쟁에 내몰렸을 때에 나타날 수 있는 일은 많다. 요즘의 SNL 경향은 그 중에서도 선정성 과잉이라는 결과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텔레비전은 보통 개방적이고 트렌디한 젊은 층을 가장 구매력 있는 계층으로 보고 이들의 흥미에 맞춰 콘텐츠 상품을 만든다. ‘대중의 흥미와 유익성의 구별이 필요하다’는 구태의연한 설교는 뒤로 하고, 이런 뉘앙스가 SNL이 목적한 바의 고객층에게 먹히는 방식이라는 것은 시청자들의 호응으로 증명됐다. 자극적이고 잡념 없이 웃을 거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방송이 원하는 대로 기꺼이 붙잡혀줬다. 그러나 자극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제 출연진들은 가슴을 기꺼이 내주며 사람들이 캡쳐할 거리를 잔뜩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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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성 담론과 저속한 성 담론의 경계는 모호할 수 있다. 그러나 가벼운 것과 경박한 것의 차이가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방송의 등급이 15세임을 감안하면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려는데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 열 다섯살은 이 정도는 면역됐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추세가 옳은 것이라고 평가내리기는 어렵다. 19세에서 15세로 등급을 내려 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려 했다면 그러한 기준에 맞게 수위를 조절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9세 관람 연령 때와 비슷한 시기의 수위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누군가 물을 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까도 되고, 성은 까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이중 잣대 아니냐고. 식물이라도 종마다 다른 양의 물과 햇빛을 필요로 한다. 성이라는 종의 식물과 정치라는 종의 식물은 그 태생과 성장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조건으로 대해야 한다. 외국의 콘텐츠 포맷을 갖고 올 적에 우리나라의 ‘코드’에 맞게 변형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의 SNL이 그러한 코드에 맞게 제대로 변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때 머릿속을 맴도는 답은 ‘글쎄올시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