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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을 아시는가? 단식하는 세월호 가족 앞에서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치킨을 먹어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사람들은 “이런 놈들 얼굴은 전국 방방곡곡에 퍼트려야 해!!!”라고 분노하며 무한 리트윗을 날렸다.

다음은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 아빠’의 단식을 비난한 댓글들 중 하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반 대중이 개인에 의해 선동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분노와 선동.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사안에 대해 분노하면 대중은 종종 ‘선동 당했다’는 음모론에 휩쓸리곤 한다. 이를테면 언론이 ‘유민아빠’라는 대표격인 아이콘의 행적을 파헤쳐 비난함으로써, 대중들이 분노하게 된 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묻힌다. 이후 대중은 ‘유민 아빠’라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개인에 의해 선동된 집단으로 탈바꿈된다. 그렇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특정 배후세력에 의해 선동당한 집단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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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이라는 낙인을 찍는 근거가 무엇일까. 히틀러 시대 선동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 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있다.”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는 그의 믿음은 ‘대중은 믿을 게 못 된다’와 같은 맥락이리라.

민주주의는 대중에 의해 흘러가야 함이 옳다. 우리들의 나라고 우리들의 생활양식이니 우리의 목소리에 기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전제되어야 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개개인이 중요한 사회적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오늘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여러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만능열쇠일 것 같았던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의 도래로 우리가 얻은 것은 오류가 난무하여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혼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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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오류가 섞여있는 와중에 대중은 자신이 얻은 정보만으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를 비난했다. 그 결과 공론장이나 화해의 장이 생기기는 커녕 갈등과 분열이 심화됐다.

다음으로 대중이 합리적인 사고자여야 한다. 충분한 정보를 습득했을 때 우리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슬프게도 기나긴 역사를 걸쳐 ‘인간은 과연 합리적 행위자인가’라는 물음에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예들이 쌓여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늘날 개개인들은 합리적 선택을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당장 내일 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까닭에 늘 지쳐있다. 공동의 문제를 깊게 고민하기에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쁘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위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 쉬워진다면 민주주의를 이끌 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만은 책 ‘여론’에서 대중이라는 집단의 빈틈을 속속들이 짚어내며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미지들과 선입관에 갇혀 바깥세계로부터 온 메시지를 왜곡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복잡하고 불규칙한 세상에서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에 접근하려 할 때 대개 우리와 사건 사이에는 간극이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간접적으로 얻은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과 격렬하게 충돌한다.

하지만 대중의 선택이 못미덥다는 이유로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정치를 맡기기에는 그들의 윤리성과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혀 행동하던 전례들이 영 못미덥다. 게다가 정부는 그 자신의 존재를 저항하지 못하게 막는 데만 급급하다. 리프만은 여기서 전문가들의 집단인 ‘정보국’을 그 답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이 집단 역시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상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간과했다.

월터 리프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이 모든 선택의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정부는 하고 싶은 정책을 내고 정책에 연루된 이해관계자들은 토론의 장을 열어 지지고 볶고 싸워 합의를 본다. 언론은 관련 정보를 알차게 담아 널리 퍼트리고 국민은 그것을 지켜보고 더 맞다 생각되는 이의 손을 들어준다. 이 과정에서 무한히 부정부패와 오류가 생겨나면 인내하며 끊임없이 고치면 된다. 끝도 없고 지루하며 지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손으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데 이 정도 노력을 못할쏘냐.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과 개인이 이루는 그 모든 집단에 대해 불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실 리프만도 그의 평생을 대중에게 국정을 설명하는 데 바쳤다. 독자들을 위해 거의 매일 사설을 게재하고 수백여 개의 신문에 당시의 중요한 이슈를 논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 역시 한편으로는 대중을 믿고 노력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혹은 당신이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해 선동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면 우선 차분해져라. 분노는 치밀한 반박에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이 쓰는 논리의 모순을 ‘까고’ 싶다면 자기 자신의 논리부터 살펴야 한다. 내가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얽혀 ‘허구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끼워 맞춘 것은 아닌지 혹은 구체성이 결여된 채 감성에 젖어 원칙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분노와 공감은 문제 인식의 시발점이 될 수는 있으나 체계적인 해결의 구심점이 될 수는 없다. 그 모든 것에 대해 경계해보고 싶다면 월터 리프만의 ‘여론’,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