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이 12척으로 330척을 물리친 이야기를, 수천 개의 상영관으로 천만관객을 모으고 있을 때였다. 나는 괜한 마음에 <명량>을 보는 대신, <명량>과 함께 상영하던 조그만 영화들을 찾아다녔다. 그 때 봤던 영화 중엔 <숫호구(Super Virgin)>라는 영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금발의 캐릭터가 핫핑크 포스터 속에서 “지켜줘서 미안해”라고 외치고 있는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숫’호구인 30년산 모태솔로의 이야기다.

ⓒ 포스터

<숫호구>는 모태솔로가 자신의 순정을 알아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한다는 익숙한 스토리지만, 감독은 여기에 소규모 독립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SF 요소를 가미시켰다. 생명공학 박사가 등장해 주인공 ‘원준’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실험에 성공한 ‘원준’은 무려 봐라만 봐도 오르가즘이 느껴지는 ‘슈퍼 섹시 아바타’의 몸에 들어가 폭풍 방탕을 즐긴다. 그러다 책방 여직원 ‘지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SF적 요소는 물론 로맨스 드라마도 모두 조명, CG, 카메라’들’도 없이 만들어진 화면 속에 구현된다.

드라마 장르로도, SF 장르로도, 혹은 프로의 작품이라고도, 아마추어의 작품이라고도 분류하기 어려운, 이 ‘잡종’의 영화는 201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까지 진출해 후지필름 이터너상을 받았다. 2014년 여름에는 정식 개봉도 했다. 그리고 2014년 가을. 한쪽엔 관광호텔, 또 한쪽은 차이나타운, 위쪽 언덕길에는 절이 있는 혼종의 동네에 자리 잡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숫호구>의 감독이자 주인공 ‘원준’을 연기한 백승기 씨를 만났다.

#1 [찌질하다면, 더 과감하게]

원준(왼쪽)과 지나(오른쪽) ⓒ

주인공 호구 ‘원준’의 디테일이 대단했어요. 매일 갈색 점퍼를 입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DEEPER”가 새겨진 똥색 잠바요? 그거 제가 정말로 입고 다니던 거예요(웃음). 거기에서 ‘원준’을 만들기 위해 새로 사온 소품이 하나도 없어요. 물론 다른 역할도 마찬가지고요. 다들 자기가 평상시에 입는 옷을 입었죠.

영어 제목이 ‘Super Virgin’이죠? 이 영어 제목을 보고 한참 웃었어요

영화 제목에 ‘super’를 넣고 싶었어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super는 원래 super의 뉘앙스와는 다르죠. 슈퍼맨은 아니지만 빨간 보자기를 두르고, 메리야스를 입었어도 ‘어쨌든 나는 슈퍼맨이야!’ 이런 느낌? 예산이 적지만 일반 독립영화들처럼 스케일 작은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한국 독립영화들, 특히 상 받는 영화들을 보면 사회 구조나 사회적 약자들 이야기가 많아요. 무산일기, 한공주, 가시꽃, 파수꾼이 그런 예죠. 이런 종류의 리얼리즘 영화들은 많지만, 비현실적이긴 해도 상상력을 도입한 영화는 많지 않아요. 그러다보니깐 ‘독립영화=예술영화’라는 등식이 성립되서 일반인들이 독립영화에 더 접근하지 않는 면도 있고요. <숫호구>는 그런 편견들을 최대한 깨고 싶은 영화였는데 따지고 보면 <숫호구>에도 그런 요소가 들어가 있어요.

어떤 점에서요?

일단 주인공 호구 ‘원준’은 취업도 안 되고 연애도 못 하는 사회적 약자에요. 또 영화 초반에는 유쾌하게 흘러가다가 후반부에는 아바타로 변한 원준이 “‘나’ 정말 사랑해요?”라고 여자 주인공 ‘지나’에게 진지하게 반문하는 장면도 있고요. 이런 요소를 집어넣은 이유에 대해 말하면 계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 영화들이 하도 영화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다 보니깐 일부로 넣은 거예요. 한국 영화에서 뽑히려면, 세상에 묶일 수 있는 교집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진짜 그렇게 만드니깐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어요.

“기존 상업영화의 연장선에서 본다면야 만듦새가 조악하기 그지없고 전개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이정도로 대놓고 뻔뻔하면 왠지 설득당하고 싶어진다” 

-씨네 21 <숫호구> 리뷰 중에서

<숫호구> 리뷰들을 보면 만듦새를 지적하는 부분도 많이 보여요

제가 못 만들어서 조악한 만듦새가 나오긴 했어요. 그런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런 거예요. 미술에서는 유화로 열심히 그린 그림만이 아니라, 볼펜으로 대충 끄적인 그림도 전시회에 걸릴 수 있어요. 영화도 그런 것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술계는 그런 시도나 흐름들이 있었던 반면 역사가 짧은 영화는 그런 시도가 없었어요. 영화는 기술의 발전만 줄곧 시도하고 있고, 거기에 자본주의까지 결합되면서 아무나 찍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죠. 이런 상황에서 <숫호구>의 정식 개봉은 유의미해요. <숫호구>는 그림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그냥 연필과 지우개 정도만 가지고 자기 딴에는 최대한 잘 그리려고 노력한 그림이에요. 그런 사람도 그 사람만의 작품이 충분히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영화 창작의 현실적인 장벽이 높은 이유는 역시 영화는 많은 돈이 전제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맞아요. 그렇지만 당신은 돈도, 빽도, 영화 전공 학위도 없으니 ‘당신은 영화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게 맞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라는 소리를 듣는 게 맞을까요? 영화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장르가 되어야해요. 누구나 쉽게 영화를 만들고, 영화감독을 꿈꾸고, 영화교육이 활성화되고, 조그만 영화를 틀어주는 상영관이나 영화제도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영화라는 매체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갈 요지가 많아요.

이런 관점을 접하니 또 새롭네요. 최근 들은 영화관련 강의주제가 ‘영화의 죽음’이었거든요. 영화라는 매체가 끝물이라는 거죠

미술계에도 2006-7년경에 똑같은 논란이 있었어요. 미술의 죽음. 그런데 그 당시는 작가주의 흐름에서 많이 벗어나서 공공미술이라던가 일반 미술 저변의 확대가 되고 있던 시기기도 했죠. 그런데, XX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저변에는 조급함이 놓여있지 않을까요? 스스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영화는 안 봐야지 그러지는 않는단 말이에요. 영화를 만들어보기 전에는 ‘내가 돈을 냈으니깐 나를 즐겁게 해봐’라던가 ‘어? 이거밖에 못해?’ 이러다가, 영화를 만들어보면 ‘이 감독이 이렇게 표현할 때 이런 고민을 했겠구나’ 등 예전보다 다양한 관점과 좋은 안목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데 만약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런 꿈이 생겨나는 초기부터 자꾸만 자기 자신에게 ‘내가 여기에 재능이 있나?’라고 자꾸만 반문하게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엘리트주의적인 예술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앞서 말했듯이 영화에 대한 벽이 낮아져야 하는 거고, 많은 다양성 문화가 필요한 거예요. 재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노는 판만 있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아마추어들도 노는 판이 필요해요. 스포츠처럼 축구 선수가 아닌 사람들도 축구를 즐기는 게 당연한 것처럼, 미술, 음악, 영화 같은 예술도 소질이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찌질한 이야기에 색보정조차 되지 않는 화면 때깔… 찌질함의 극치였죠. 하지만 표현이 서툴면 좀 어때요. 난 찌질합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찌질한 사람이 있으면 같이 보고 즐깁시다. 뭐, 이런 거죠.”

는 '아트나인(이수)' 등에서 정식 상영되었다 ⓒ네이버영화

정식 개봉까지 됐어요.

PiFan 때 경험해봐서 자신감이 생길 법도 생길 법도 한데, 정식 개봉 전날 밤에도 제대로 못 자고 엄청나게 떨렸죠. 기쁨보다는 부담감이 더 컸어요. 영화제 관객은 아무래도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관객들 반응은 어땠어요?

정식 개봉했을 때는 영화제랑 반응이 또 다르더라고요. 진정성이나 매력을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저희가 ‘C급’이라고 홍보를 해서, 완벽한 C급을 기대했는데 후반부에 진지하게 빠져버려 ‘진부한 면이 없지 않다’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혼란스러워서 차기작에는 C급 느낌을 더 내려고요.


차기작은 어떤 내용인가요?

인류 최초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앞으로 영화제목은 한글은 3글자, 영어는 super- 이런 식으로 갈 예정이라, 제목은 ‘시작할 시’에 ‘출발할 발’해서 <시발놈(Super Origin)>이에요. 얼마 전에 촬영이 끝났고 편집단계에 있어요. 세번째 영화는 기획 중이고요. 개봉을 하고나니깐 확실히 작품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빨리 2,3 번째 작품을 내서 내 색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2 [현실과 꿈, 그 경계에서]

백승기 감독은 영화 감독인 동시에 미술선생님이었다. 재미있는 선생님으로 TV에 출현하기도 했다. ⓒSBS '아바타 선생님' 편

미술교사도 겸한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학교도 함께 다니고 있는 건가요?

올 2월까지 간석여중, 4월까지 인천예고에 있다가 학교는 이제 그만뒀어요.

예전 인터뷰를 보면 교사도 꿈 중 하나였다고 들었어요

원래 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아이들이 꿈을 갖는 경로가 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어른들을 보고 그걸 닮고 싶어 하는 것부터 시작되잖아요. 아이들에게 꿈에 대한 선호조사를 해보면 교사가 많은데,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해요.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보는 게 교사잖아요. 어른들을 보고 닮고 싶어 하고, 그에 대한 꿈을 갖는 게 아이들의 성향이라고 하면 굉장히 다양한 어른들을 못 본다는 게 안타까운데, 내가 가졌던 꿈 중 하나인 교사도 그런 꿈이었던 거죠. 개인적인 꿈이었다기보단 보편적인 꿈이었던 거죠. 예고 졸업 후에는 미술교육과에 진학했는데, 또 다른 꿈이었던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 등에 비해서 훨씬 현실 가능한 꿈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교사와 영화감독이라는 두 종류의 꿈을 가지고 산다는 건, 결국 현실과 꿈 사이의 수많은 고민들로 귀결되지 않나요?

맞아요. 졸업하고 나서도 바로 교사가 된 건 아니에요. 미술교육가서 공부를 하고, 임용고시 학원에 다니면서도 영화가 정말 하고 싶었죠. 그래서 대학교 때 미술교육과지만 그림을 안 그리고 영화를 혼자 찍기도 하고 졸업하고 나서도 바로 교사가 되지 않고 1~2년 정도는 영화 만들기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현실에 벽에 많이 부딪치고 경제적 여건도 안 좋다 보니깐, 나름 현실에 더 가까운 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교사가 되니깐 ‘좋은 선생님이 되서 아이들 곁에 오래오래 있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이대로 내 운명이 끝나는 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교사가 정말 간절한 최종목표였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교사 소리를 듣는 행복한 교사가 되려고 노력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나’의 꿈과 행복을 이루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리니깐 빨리 영화감독이 돼서 학교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절실한 꿈이었던 영화엔 어떻게 훅하고 빠져버렸어요?

예고 다닐 때 전시회를 하면, 전시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극장에 가면 사람들이 가득 차있고 심지어 영화를 보고 우는 사람도, 재밌어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소위 말해서 ‘유통’이 된다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매체’라는 것. 그런 점이 제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죠. 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극장에 가서 영화는 보는 데, 전시회에서 그림은 왜 안보지? 의자가 없어서 불편한가? 그럼 의자를 그림 앞에 두면 좀 더 그림을 편하게 볼까?”


특정 감독이나 작품이 매체적인 매력에서 빠졌다는 게 특이해요

‘보여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깐. 사실 제가 창작자의 길을 걷게 된 건 어렸을 때 걸렸던 불치병 때문이에요.

네? 불치병이요?

중2병 말이에요(웃음). 그전에는 말 잘 듣는 올곧은 학생이었는데 그러다가 중2병에 걸리게 되면서 관심받고 나대고 싶고 이런 욕망이 커져 버렸어요. 중2병이 낫는 건 슬픈 일이에요. 중2 때 원했던 삶을 계속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정말 행복한 삶이죠. 제가 교사할 때는 중2병 걸린 애들 관리하는 게 되게 힘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이 오히려 건강한 애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2병이 낫고 철이 들고 한다는 것은 세상에 내가 맞춰지는 거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잠시 놓고 공부를 한다는 거죠. 중학교 2학년을 지나 고등학생만 되어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말도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에요.

감독님의 지병인 중2병과 영화에 빠진 이유, 그리고 계속 창작 활동을 하는 이유가 하나의 지점으로 연결되는 셈이네요

그렇죠.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고, 예고까지 간 이유는 제가 그림을 그렸을 때 그림을 보고 애들이 해 준 리액션들 때문이었어요. 칭찬을 들으면 더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죠. 다른 분들이 작업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런 욕구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깐 전시라는 걸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막상 보면 정말로 피드백을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 하고 있구나’의 증명 정도의 피드백에 만족하는 정도가 많아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나 전략이 부족한 거죠. 아니면 그런 걸 고민할 엄두가 나지 않거나.

“제일 싫어하는 말이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라는 말이에요. 계란으로 바위를 왜 쳐요? 아깝잖아요. 계란을 부화시키던, 닭을 만들어서 팔던, 계란을 어떻게든 잘 써먹어야지요.”

“내가 잘하면 사람들이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잘하는 것과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감독님은 후자로 감독님이 예를 든 사람들은 전자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실용적인 걸 많이 따지는 편이에요. 꿈도 실제로 이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꿈을 이뤄가는 데 있어서 단순히 남들도 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노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건 꿈을 이룰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잖아요. 이게 제가 미술을 하면서 느낀 생각이에요. 미술사를 보면,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시대가 아닌 이상 표현력이 너무 뛰어나서 인정받는 화가들보다는 자기만의 ‘다름’으로 인정받았던 화가들이 더 많아요. 지금 유명한 반 고흐나 피카소 모두 그 당시에 ‘과연 예술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라는 논란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들만의 다름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말이에요. 특히 현대미술로 오면 남들과는 다른 뻘짓, 또라이 짓해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죠.

<숫호구>의 유쾌함 때문인지 그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짐작은 나의 괜한 걱정과 편견이었다. 백승기 감독은 <숫호구>의 전체적인 흐름처럼 유쾌해 보이는 사람인 동시에 사뭇 진지한 예술가였다. 동시에 영화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고 만드는 걸로도 모자라 모두 다 함께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니! 백승기 감독의 슈퍼 영화 시리즈도, 그가 바라는 조기 영화회(?)나 인디 감독들도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