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악플을 기대한다.


올 하반기 채용은 ‘인문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빈말은 아니었던 건지 각종 공채와 직무검사에서 한자부터 역사까지 인문학의 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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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이러한 변화는 언뜻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기업 스스로가 정량적인 능력이나 학과, 자격증에 치중한 모습에서 탈피를 시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시도가 구직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색다른 평가 문항의 출현은 결국 준비해야 할 것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측면에서의 부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드러내고 그것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압박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현대차의 역사에세이 문항인 ‘역사 속 저평가된 인물을 서술하라’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역사적 지식과 함께 역사관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구직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관의 노출이 아니다. 자신의 역사관이 평가자의 입맛에 맞을지가 문제이다. 답안을 작성하는 순간 구직자의 가치관은 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 문제 하나 출제하고 너도나도 인문학?

결국 구직자들은 자신의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펼치기 보다는 평가자의 취향에 맞는 답을 서술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답을 쓰기 용이한 자료만을 찾아보며 기업의 가치관이나 역사관을 체화할 뿐이다. 구직자가 영원한 을인 취업시장에서 이와 같은 부작용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쯤 되면 기업이 정말로 인문학적 소양을 보고자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지금 기업들이 전형에서 묻고 있는 인성이나 가치관은 전부터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사항들이다. 새삼스럽게 인문학적 지식과 엮어 지필 평가로 다시 물어보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인문학의 위기가 기업의 채용 구조와 연관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한 면피책이자 적당히 인문학을 유행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업들의 인문학적 소양 평가에 진정성은 없다. 방법과 모양새가 구색 맞추기에 가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스스로 탈스펙과 감성의 중시라며 뿌듯해하고 있다. 기업이 뿌듯함을 느끼는 사이 구직자들은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에 한국사와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발에 땀이 나게 뛰는 중이다. 탈스펙이 아닌 또 다른 스펙을 쌓으러 돌아다닐 뿐이며 감성이 아닌 지식 축적을 위해 매진할 뿐이다.

구직자들의 동동거림은 뒤로 한 채 각종 언론에서는 겉치레에 불과한 혁신에 대해 기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기업의 인문학적 소양 평가를 기존 채용 구조의 대안이나 긍정적 변화로 묘사하는 언론의 모습은 다소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기업의 자화자찬과 언론의 무한 긍정 속에 구직자는 제외됐기 때문이다. 기업의 제한 없는 요구에 구직자들은 자포자기 상태다. 그저 궁금하다. 과연 다음은 무엇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