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스포주의)


힙합과 청춘영화와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영화 <33리>와 <거기엔 랩퍼가 없다>는 힙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최근 종영된 방송에서 보여주는 힙합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쇼’는 이미 끝났다.

 

Not 0 to 100

이들 세계엔 ‘Show Me the Money’를 입력할 수 있는 치트키 창 따윈 없다. 이 영화들은 요즘 유행하는 트랩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스웩보다는 랩퍼의 고민에 집중한다. 자수성가의 이야기가 형성될 수 없는,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밑바닥에서 끝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3리>


<33리(2012, 조승연 감독)>

끊임없이 반복되는 꿈과 현실의 줄타기 


나 역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이젠 우리만 남았는데, 삶은 계속 진행되는 군

be a lie, If I told ya that I never thought of death.

my n*****, we tha last ones left but life goes on

-2pac <Life Goes On>

 

<33리>는 TBNY의 톱밥이 주연을 맡은 주인공 ‘석용’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앞서 인용한 2pac의 <Life Gones On>으로 시작된다. 석용은 서른세 살 먹은 한국인이다. 당연히 그의 삶엔 갱스터도, 게토도 없다. 그렇지만 그 역시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자의식의 죽음이다. 


석용은 택배 배달을 하고 돌아와 컴퓨터 앞에서 음악을 만든다. 빈 시간엔 종이를 펴서 펜으로 가사를 적는다. 석용은 언젠가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희망을 품는다. 석용의 음악생활은 생업과 병행되는 고단한 이중생활의 틀 안에 놓여있지만, 쉽사리 흐트러지진 않는다.


ⓒ<33리>

 

이러한 이중생활에 석용의 희망을 좀먹어 나가는 존재는 바로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헌신적이다. 보험을 팔아 석용과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간다. 그렇지만 그의 세계는 먹고사니즘의 세계다. 그 세계의 삶의 기준은 밖에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하는 힙합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음악 하는 아들 두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석용에게 강박적으로 드럼이나 피아노를 배울 것을 권한다. 그는 ‘정말’ 아들의 꿈에 관심 없다.


석용은 자신의 곡이 표절당해도 그는 힙합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다. 어머니 지인에게 택배기사를 하고있는 초라한 모습을 들켜버렸어도 그는 그의 먹고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33리>는 내려놓을 수 없는 생업과 힙합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 가는 석용의 하루하루를 보여주고, ‘삶이 계속 되리라’는 암시를 남긴 채 33분의 러닝타임으로 막을 내린다. 

 

<거기엔 랩퍼가 없다>



<거기엔 랩퍼가 없(SR サイタマノラッパー; SR: Saitama’s Rapper, 2008, 이리에 유 감독)>

 “후쿠야에서 날아 그것이 내 시나리오”

<거기엔 랩퍼가 없다>의 배경인 사이타마 현의 후쿠야는 브로콜리 특산지다. 농촌인 후쿠야에서 꿈을 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인공 ‘이쿠미(이쿠)’와 ‘톰’의 고등학교 동창인 ‘코구레’는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 시골에서 이쿠와 톰은 ‘SHOU-GUNG(쇼군)’이라는 힙합크루에 속해있다. 이쿠와 톰은 랩퍼를 꿈꾼다. 

 

쇼군이 랩을 하고 공연을 하기엔 후쿠야의 현실은 척박하다. 거기엔 힙합은커녕 공연장도, 레코드샵도 없다. 여차해서 공연 기회를 얻는다 한들, 젊은이와 소통하겠다는 구실로 이쿠미와 톰을 훈계하는 시청의 공무원들을 비롯한 ‘어른들’ 앞뿐이다.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교육, 금융, 브랜드 뉴>를 부른 쇼군에게 어른들은 출신 고교에 대해, 그들의 직업에 대해 물어본다.

 

“자네들 일은? 역시 음악만으로 먹고 사는 건 무리죠. 도쿄라면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

“톰 형은 최근 생긴 단란주점 점원이고, 이쿠 형은 완벽한 니트족입니다 ”

 

이쿠와 톰은 사회의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청 공무원들의 은근한 압박에 주눅이 든다. 이쿠와 톰은 그들에게 랩퍼가 아니라 공고 출신인 니트족, 프리터로만 인식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 제목은 후쿠야는 ‘랩퍼가 없는’ 게 아니라 ‘랩퍼가 없어지’는 마을로 그 의미가 변모한다.

 

<거기엔 랩퍼가 없다>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끝없는 적막과 절망의 분위기로 이쿠미와 톰을 에워싼다. 이쿠미와 톰이 속해있던 쇼군은 와해되고, 그들에게 곡을 선사하던 타쿠미 선배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AV배우가 돼서 후쿠야에 돌아온 코구레는 자신을 깔보는 고향 남자들의 시선에 다시 고향을 떠난다. 후쿠야로 요약된 이 세계에서 사회의 정상적인 루트를 따르지 않은 청춘에게 줄 수 있는 건 절망뿐이다.

 

현실에 장벽에 부딪히고, 꿈에 대한 열정도 소진된 이쿠와 톰은 무대 위에서 식당 카운터로, 공사현장으로 각자의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다. 랩퍼에서 식당 알바생이 된 이쿠미는 공사장 사람들과 방문한 톰에게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랩을 읊조리기 시작한다. 감독은 이쿠미와 톰의 랩을 영상에 긴 호흡으로 담아낸다. 정말로 후쿠야에서 성장한 감독이 적막 속에 갇혀있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다. 이는 외교, 정치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며 신문 속에서 가사를 건져내던 이쿠미가 자기 얘기에 라임과 플로우를 가미한 순간이다. 이쿠의 랩은 테크닉은 둘째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는 이쿠의 “(너의 꿈을) 무시하지마” 라는 대사로 끝난다.


<거기엔 랩퍼가 없다>

 

희망 속의 절망, 절망 속의 희망


재즈힙합 프로듀서 누자베스가 참여한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절망이란 희망에서만 생기는 걸세. 하지만 전혀 희망 없이 사는 것도 인간에겐 힘든 법. 말하자면 인간은 절망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절망이 있다. 둘은 딱 붙어 있어 그 누구도 하나만 가질 순 없다. 꿈을 꾸는 건 절망을 꾸는 것과 같다. 힐링열풍에서 이름 떨친 힐링 약장수들도 물론 같은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여기서 <33리>의 석용, <거기엔 랩퍼가 없다>의 이쿠와 톰의 ‘꿈’이란 것은 그 장사꾼들의 ‘꿈’과는 다르다. 위 랩퍼들의 꿈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준에서 만들어진 꿈이지 사회적 꿈, 입신양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꿈은 정해진 루트만 잘 따라간다면 사람들의 좋은 시선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선택지다. 자신이 기준이 되는 꿈은 어느 정도 ‘적막함’이 전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오직 자신만이 자기를 인정하고 평가하는 상황이기에, 자신의 기준을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항상 무언가 부족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33리>의 생활과 꿈 사이의 줄타기도, <거기엔 랩퍼가 없다>의 절망도 모두 꿈을 꾸는 청춘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절망 아는 사람만이 희망을 꿈 꾸고 있는 거라고. 앞선 문장은 다시 이렇게 읽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