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는 이곳에 방문하기 전 분명히 출구 방향과 층수를 알아둘 것이다. 만약 출구 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고속터미널 플랫폼 계단을 올라서 숨을 크게 쉬어보면 된다. 특별히 강한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쉽게 꽃향기의 출처를 찾아갈 수 있다. 꽃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향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겠다.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꽃들이 모이는 중간 집합소다. 총 300여점포가 모여 농가에서 받은 꽃을 판매한다. 자정에 문을 열면 전국에서 모인 소비자들이 꽃을 사가고, 더러는 주문과 예약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오후 1시면 이 생화매장은 하루 영업을 끝맺는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자마자 눈 앞에 거대한 꽃잎 뭉치들이 보인다. 바로 입구부터 점포가 들어설 정도로 시장 안은 빽빽하다. 시장 특성상 식물의 가짓수가 많고, 재고도 쌓아놓기 때문이다. 통로는 가방을 멘 사람 둘셋만 있어도 혼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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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n

 

 

시장 안은 조화/꽃꽃이 용품을 파는 구역과 생화를 파는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생화를 구경하기 전 ‘몸을 푼다’고 생각하고 조화를 구경했다. 모양이나 느낌은 생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조화는 헝겊을 염색한 티가 철철 날 것’이라는 편견과는 확실히 달랐다. 예식용 꽃 등을 직접 고르고 꾸미거나, 센터피스를 직접 만드는 ‘꽃꽃이 인구’가 늘어나면서 조화 시장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블로그 등에 올라가는 사진을 경계하는 듯 조화와 소품 가게 곳곳에 촬영금지 팻말이 붙어있었다.

 

생화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꽃 바구니라도 놓치고 지나갈까 계속 주변을 둘러봤다. 물감 팔레트를 옮겨놓은 듯한 꽃들도 시선을 끌지만, 상인들의 분주함도 눈에 띈다. 모두가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판매와 함께 꽃을 끊임없이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호객에 열중하는것도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다른 일을 하는 동시에 손님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장미 상태가 좋다”, “구경하고 가라”는 식이었다. 여기에 꽃 포장까지 겸해야 한다. 일하는 직원, 특히 점포의 주인들은 대부분 중년이상의 연령대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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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시장이 그렇듯, 이곳도 현금거래가 활발하다. 이날 찾아간 오전 11시경은 꽃 가격이 점점 떨어지는 시간대다. 마감이 가까워오기도 하고, 새벽이나 오전에 비해 신선도가 감소해서다. 꽃의 신선도 연장을 위해 필수인 것이 바로 물이다. 생화구역 바닥 곳곳에는 물이 흥건하다. 물을 채울 수 있는 플라스틱 통도 많이 보인다. 중간 크기의 쓰레기통이 이와 흡사하다. 실제로 빈 쓰레기통을 활용하는 점포도 많다. 물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담기도 하고 통을 겹쳐놓는다. 농장에서 오는 꽃을 옮기기 위해서라도, 물통을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손수레는 필수다.

 

생화구역을 몇 번 돌다보면 ‘거기가 거기’ 인 듯한 데자뷰를 느낀다. 분명 한 바퀴를 돈 것 같은데 출발한 곳과 다르다. 천장에 상점의 이름과 호수가 적힌 팻말이 있긴 하지만, 초보자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가게 이름은 대부분 ‘OO원예’ 와 같은 식으로 지어져 있다. 초행이라 길눈도 어둡고, 대부분 비슷한 종류의 꽃을 떼오기 때문에 진열된 풍경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더 이상 꽃을 ‘고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눈앞에 보이는 점포로 가서 예쁘게 마르는 꽃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봤다. “드라이는 이게 예뻐요. 손님이 고르신 그건 드라이는 좀 별로긴한데, 한단에 5천원이에요.” 내가 눈독들인 꽃은 이미지 사진에서만 보던 핑크색 ‘퐁퐁소국’ 이었다. 연두색 퐁퐁에 비해 조금 비싼 이유를 물었다. “똑같긴 한데, 얘가 얼굴이 좀 더 큰거라서요.” 이곳에서 꽃송이는 ‘얼굴’로 불렸다. 일반인들은 꽃 이름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꽃 이름이 적힌 영수증을 받는것이 좋다. 현금으로 구매하더라도 간이 영수증 처리가 가능하다. 나 역시 가게로 다시 돌아가 꽃 이름을 물었다. “보통 종이꽃이라고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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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시장의 특성상 상점마다 비슷한 식물이 들어와 있다. 종류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달에 가장 ‘핫’한 제철 꽃 종류는 늘 구비되어 있다. 가을의 꽃시장은 맨드라미나 외래종 꽃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천일홍과 수국, 종이꽃, 장미의 축제였다. 연핑크색 천일홍에도 눈길이 갔다. 한 단만 달라고 하니, 상인은 곧장 “핑크가 아니라 천일홍 피치”라고 꽃 이름을 정정해줬다. “인기가 많아서 지금 딱 한단 남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꽃 시장 점포의 재고는 대부분 비슷하게 팔린다는 인상을 주었다. 특별히 한 점포에 손님이 몰리는 모습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여기서 더 저렴하게 주겠다”같은 시장의 일반적인 경쟁구도도 보기 힘들었다. 통로는 좁지만, 그래서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장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꽃 시장 손님들은 저절로 지갑을 열 수 밖에 없게 된다. 생화를 사고나서 자연스럽게 꽃병을 사고싶어지는 곳, 돌고 돌아 비슷비슷한 꽃 무더기가 보여도 바로 그 꽃 향기 덕분에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곳이 고속터미널 꽃시장이다. 

 

글/ 블루프린트 (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