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악플을 기대한다.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는 손 씻듯 지워지지 않는다.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지만 대일(對日) 트라우마의 징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특기할 점은 이 트라우마가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잔상은 계속해서 일본을 비교선상에 올려놓고 줄 세우기를 일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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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장면1> 장현수 선수가 일본을 상대로 골을 성공하고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은 시청률 14.2%(닐슨코리아 기준)로 9월 TV프로그램 전체 시청률 10위를 기록했다. 10위 안에 들었던 아시안게임 경기 중계는 이 경기가 유일했다. 8강 경기임에도 소위 ‘흥한’ 경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일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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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2014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

 

<장면2>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일본인이란 소식을 접하고 한국 현실을 개탄한다

언론에서 일본을 이용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10월 7일(현지시각),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은 언론의 좋은 기삿거리가 되었다. 많은 언론들은 수상 소식을 전하며 일제히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일본은 하는데 한국은 왜 못 하는가’에 대한 기사는 연일 화제가 되었다.

위의 두 장면은 일본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이지만 결국 하나다. 우월감과 열등감이란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론 일본에 대한 열패감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같은 열패감의 표출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않고 자극만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장면2>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채 공론장에서 물러났다. 결국 이러한 일본 열패감은 대부분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사라지는 결과를 맞는다.

열패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잘못된 내셔널리즘의 강화다. 얼마 전 일본 온타케 화산 폭발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일본 국민들은 천벌을 받아도 싸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한 자성의 댓글은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 있었다.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한국인 또한 한국이란 나라로 국한해 규정될 수 없고 개개인이 복잡다단한 성격을 가지게 것처럼,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일본과 일본 국민을 묶어서 비난하려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하나로 보고 싶은 내셔널리즘의 발현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물론 최근 반일 감정의 원인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 드라이브와 그에 따른 잘못된 역사 인식 발언 탓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웃 국가의 네거티브를 같은 방식으로 받아치는 것 또한 네거티브이며 비윤리적인 행태이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열패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만 상처를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