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악플을 기대한다.


지난 17일은 금요일이었다. 한 주 동안 고된 업무가 끝나는 날이었다. 주말이 온다는 생각에 퇴근길 발걸음은 가벼웠을 것이다. 때마침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발걸음을 붙잡았다.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높은 곳에 올라섰고, 발 몇 번 구르니 땅이 꺼져버렸다. 

ⓒ 고함20

공연을 보려다 환풍구에 올라선 16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일반사람들은 사망자들을 보고 ‘거기에 왜 올라갔느냐’고 질책을 했다. 사고의 책임은 퇴근길에 아이돌을 보러 굳이 환풍구에 올라간 개인의 탓이 되었다. 그러나 질책하는 사람들에게 환풍구 위를 한 번도 걸어보지 않았는지, 환풍구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느냐고 묻고 싶다.

서울시에 따르면 길거리에 환풍구는 7000여 개가 넘는다. 깊이가 판교참사가 일어난 곳처럼 20m인 것부터 1~2m인 것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서울시는 환풍구별 깊이를 정확하게 파악을 못 하고 있다. 위의 사고처럼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주의경고도 없다. 고작해야 경계 펜스 정도이고, 그조차 없는 곳도 많다. 알지 못한 위험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알려지지 않았다.

혹시나 알릴 필요가 없던 것이라면, 튼튼하게 만들거나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한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1,000㎡의 건물에는 환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말만 있다. 환기구가 몇 미터인지, 어느 재질을 사용할지 등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위험한 환풍구에 올라간 개인이 무조건 잘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개인의 부주의만 지적하다 보면 안전문제의 본질은 사라진다. 안전문제는 개인의 의식과 사회제도의 뒷받침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처럼 ‘위험한 곳에 올라간 너의 탓’이라고 매도하면, 안전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도 개인 탓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위험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이 당연시될 수도 있다.

ⓒ 페이스북 JTBC 환풍구 사고 뉴스관련 댓글 캡쳐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의 작가인 윤선영씨는 ‘사람 1명이 죽을 때마다 하나의 우주가 사라진다’고 했다. 지난 17일에 16개의 우주가 사라졌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자 직장의 동료였다. ‘네 탓이다’ 말하는 게 맘 편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의 잘못만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네 탓이다’라고 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지금도 길가에는 언제 우리를 빨아들일지 모르는 ‘환풍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에게 탓을 돌리는 것은 얼마든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