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3040이나, 90년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쟁이들이나 매스컴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신해철 라디오 커리어의 정점은 2000년대였고, 그때 꽤 많은 팬들을 모았다는 점이다. 그 팬들은 일명 ‘고스 세대’들이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들도 팬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스 세대는 솔로나 넥스트 시절 음악을 듣고 팬이 된 사람이 아닌, 2001년 이후에 방송된 고스트 스테이션을 듣고 팬이된 뒤, 역으로 그의 음악을 찾아들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신해철이 2000년대에도 10년 가까이 방송을 한만큼, 고스가 진행되는 동안 10대였던 사람들은 20대나 30대 초반이 되었다. 신해철과 함께 한 자신의 30~40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신해철을 추모하는 핵심 정서로 거론되지만, 실상은 라디오를 통해 신해철을 ‘추억 속 인물’이 아닌 ‘동시대의 인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꽤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그의 마지막 방송 JTBC의 <속사정 쌀롱>에서 아주 큰 위로를 받았으리라 짐작한다. 우리가 청소년기에 이 사람의 라디오를 들었던 게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받듯이 말이다. 
 
속사정 쌀롱의 ‘오늘도 참는다’라는 코너에선 32살 남자의 사연이 나왔다. 2살 위 형이 있는데 공무원 준비 한답시고 어머니에게 한 달에 용돈 40만원 받으며 놀고 있고, 또 용돈 중 20만원은 여자친구에게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주제를 풀어갈 때 신해철이 라디오에서 쌓아온 공감능력이 굉장히 빛났다. 모두가 저 백수 형을 비난할 때, 유일하게 그의 처지를 이해하는 말을 한 것도 신해철이었다. 
 
“이 형은 제 생각에는 자기 삶의 중심이 이미 형제 부모랑 살고 있는  이 가정이 아니라 자기 여자친구로 이동했어요. 이 두 명을 삶의 중심 유닛으로 보고 있는거예요. 내가 달랑 받는 수입이 엄마한테 받는 원조 40만원밖엔 아무것도 없지만 그거 ‘이거 반 너 준다.” 
 
“형한테 여자친구한테 20만원 주는 문제 얘기할 수 있는데 형의 경제적 능력과는 별개로 이야기해야해요. 만일 이 형이 한달 수입이 5000만원이에요 그런데 여자친구에게 자기가 번 돈인 수입 5000만원 중 2500만원을 줘요. 제가 보기엔 그것도 나빠요. 왜냐하면 사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백수 형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젊은이들’ 에 대한 논란으로 넘어갔다. 장동민은 “요즘에 취업 준비생들 많다는데 정작 일손을 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람이 없다. 우리 가게에 첫 날 나오고 다음날 나온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받아 진중권은 “이 분이 밖에 나가서 일하면 최소한 40만원은 벌게 된다. 그런데 요즘 ‘갓수’라는 말이 있다. 자기 지위를 벗어나야 할 상태로 보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건데 이 형도 좀 그런 케이스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해철은 이 두 명을 반박하면서, 그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직장이 없어서 난리난리다 하면서도 막상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라든가, 뭐 이런거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게 요즘 사람들의 정신력이 약하다, 이런식으로 봐서는 난 안된다고 생각하는게 예를 들어서 뭐 나가서 이 친구같은 경우도 일하면 40만원 벌 수 있지 않느냐, 벌 수 있겠죠. 그런데 내가 다른 계획을 세울수 있고 미래를 한 달뒤든 1년뒤든 생각할 수 있는 상태에서 오늘 땀을 흘리고 있는거와, 아무것도 디자인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늘 하루 힘든 일 하는거는 사람이 정말 달라요. 그러니까 내가 한 달 뒤나 6개월 뒤가 깜깜한 상태라면, 오늘 하루는 1m밖에 나가면 절벽인지 나발인지 모르는 어둠속에서 정말 나는 아무 의미없는 곡괭이질 하고 있는…(그런데) 그거라도 해라 지금 상황이라면. 할 수야 있겠지. 그러나 사람은 그게 몸이 힘들어서 못하는게 아니라고요. 보이지가 않으니까 못하는거지.”

 

 
허지웅이 중간에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일단”이라고 대꾸를 하자,
“그래서 운전하다가 기름 떨어져서 길에서 섰을때 보험사에서 최소한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을 넣어주듯이,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최악의 절망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복지잖아. 어쨌든 그런 주변 환경이나 사회 여건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데, 오늘 하루 당장이라도 뭘 해야 할게 아니냐고 몰아세우기엔, 그들이 정당하다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백수들에 대한 한가지 더 변명인데 내가 전혀 수입없이 작업실에 앉아서 무한정 나오지 않는 곡을 기다려요. 모든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가족들의 못난이가 되면서, 내 가족들이 나때문에 고통받으면,나도 당장 뭐… 나도 뒤질것 같아 힘들어. 그런데 내가 지금 여기서 벗어나서 무슨 사이비 잡이라도 하나 구하면 당장이라도 생계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여기서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다 좋은데 그 알바자리 한 번 하러 갔을 때 내가 이 작업실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라는 것은 아닌데 그 사람들 본인도 힘든데 나태한 자라고 몰아세우지 마라.”
 

신해철의 나이가 한국나이로 47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말야” 느낌의 꼰대가 됐으면 진작 됐을 나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을 정작 젊은이 본인들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 저들 중 가장 바쁜 20대를 보낸 이는 신해철일텐데, 좋은 말로 취업준비생인 ‘백수’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사실 예전에는 생전 놀아본 적도 없는 신해철이 ‘백수의 아침’이나 ‘백수가’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게 너무 이해가 안갔는데, 지금에 와서야 누구보다도 그가 ‘직업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나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신해철이 예전에 “예술인들은 잠정적 백수다. 그걸 매일 체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고스 세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위로와 공감의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게 정말 고맙다. 고스 세대 중에는 지금 취업준비 중이거나, 상황에 맞춰 취업을 했더라도 신해철 말처럼 ‘다시 작업실(원래의 꿈)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게으르다고, 할 줄 아는게 없다며 자학하고 있던 고스 세대들이 저 말을 듣고, 그때 우리가 즐겨 듣던 고스의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 을 들을 때처럼 다시 한 번 많은 위로를 받았으리라 믿는다.
 
“위 아 더 칠드런 오브 더 다크니스”라는 오프닝 시그널에 맞춰서 귀를 쫑끗 세우고 한 시간 내내 낄낄거리다가, 학교에 가서는 엎드려서 쿨쿨 잤던 고스 세대들은, “행복하게 살자”, “하고싶은 대로 해라”,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말자”와 같은 신해철의 레퍼토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신해철의 말처럼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래서 괜히 신해철에게 원망도 해보고 답답해할 때, 신해철은 우리에게 이렇게 한마디 던지는 듯 하다.
 
“너희들이 잘못한 게 아냐.”
 
이제 더이상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을 수가 없다. 나를, 그리고 우리들을 이해해줄 수 있는 한 명의 어른을 참으로 허망하게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