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3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자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하 투명가방끈)’의 대학 거부 선언이 예정된 날이다. 대학 거부 선언은 말 그대로 고3 혹은 대학 재학생들이 모여 ‘대학’을 ‘거부’한다는 선언이다. 투명가방끈은 11월 2일 일요일 마포 민중의 집에서 대학거부선언을 생각 중인 이들을 위해 설명회를 준비했다.

대학입시, 학벌주의 문제는 삶의 문제

거부의 목소리를 크게 내야


2007년 수능일,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박고형준은 수능 시험을 치는 대신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2009년. 간디학교 3학년이었던 김강산, 박두헌, 김찬욱, 이민안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건물 앞에서 수능이 아니라 수능 거부를 택한다. 이들의 메시지는 같았다. 우리는 경쟁교육을 상징하는 대학입시제도를 거부하겠다. 2010년에는 고려대 김예슬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남기고 자퇴했다. 그 해 수능 날엔 고다현이 자신의 수능 거부를 알리는 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2011년. 이러한 흐름이 모여 투명가방끈이 탄생한다. 그들은 그 해 수능날 청계광장에 모여 대학입시거부선언과 대학거부선언을 했다.


투명가방끈의 2011년 대학거부선언 모습 ⓒ뉴시스


투명가방끈 활동가 공현 씨는 이렇게 단체의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투명가방끈 이전에는) 대학거부선언을 하더라도 교육운동 단체 기자회견에 끼여서 1인 시위 한 번 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정도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투명가방끈은 거부자의 목소리를 따로 내는, 그야말로 우리의 운동을 만들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됐어요.” 그는 덧붙여 “현재 교육운동이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입시 문제와 학벌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단체가 되고 싶어요.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교육 정책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문제에요. 이 문제들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단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투명가방끈은 대학거부선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서열화의 본질적인 부분은 피해간다”며 고대총학의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투명가방끈



“잘못된 건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이 사회이다. 나는 이런 사회를 거부한다. 이런 사회에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져 있는 대학을 거부한다” 2013년 대학입시거부자 츠베


투명가방끈의 대학거부선언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교육상황에서 비롯한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로 이어지는 12년은 배우고 꿈을 꾸는 시간이라기보단, 남들과 경쟁하고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시간이다. 의무교육이 아닌 대학은 사실상 의무교육으로 인지되고 있고,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사회적 낙오자가 된다. 대학에 간다 한들 상황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는다. 대학 간판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마치 군대처럼 선배가 후배의 군기를 잡는다. 대학은 크게 배우는 것보단 스펙과 취업을 쫓도록 종용한다.


2011년에 대학거부선언을 했던 ‘시원한 형’ 씨는 자신의 거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사회학과 3년 다니면서 공부하는 건 좋았어요. 다만, 공부하고 암기식 시험을 보고 상대평가로 성적을 받는 반복되는 과정에 불만이 있었죠. 게다가 전 음악을 하는데 음악을 하는 저에게 졸업장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졸업장이 있다고 음악을 더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졸업장을 받게 된다면 사회에 순응해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내가 원치 않는 나로 살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거부하고 싶었죠.” 그해 가을, 함께 거부선언을 했던 서린 씨는 “졸업을 앞둔 상황이었는데, 그대로 졸업을 하면 이 체제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몇몇 사람들은 투명가방끈이 단체로 대학거부선언을 하는 것을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만두면 혼자 그만두면 되지 왜 굳이 모여서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단체행동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서린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거부선언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은 후배가 2010년에 대학을 거부한 김예슬 씨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옆에서 선배가 ‘네가 스카이는 돼야지’라고 비아냥거리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만약 나 혼자 그만두면 사회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원한 형’ 씨도 “많은 사람이 대학 교육에 대해 의문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차별이 많으니깐 쉽게 못 할 뿐이죠. 우리가 단체로 거부선언을 해서 많은 사람이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저희처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2011년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했던 김자유 씨는 “운동적인 이유 외에도 개인적으로 보면 대학거부선언을 통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 거부 선언을 해서 자존감을, 자기 존재를 지킬 수 있고, 같이 거부선언을 했던 친구들과 지속적해서 교류하는 게 도움이 되죠”라고 말했다.


2011년 대학거부선언 당시 보도영상 ⓒMBC <PD수첩>

거부선언은 삶의 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존중하려는 행동이다


이들은 대학거부선언을 하면서 강조한다. 대학을 거부해서 잘 살려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지 않으면 잘 살 수 없기에 거부하는 것이라고. 이들에게 대학거부선언은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 살 수 있을지를 의도한 전략적 행동이라기보단, 남의 기준만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존중하려는 행동인 셈이다.

이날 설명회에는 대학거부선언자뿐만 아니라 대학거부를 생각 중인 청소년과 대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사람이 참석했다. 고등학생인 딸과 함께 설명회를 들으러 온 학부모도 있었다. 학부모 이지민 씨는 “딸이 투명가방끈 운동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대학입시를 거부하면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 왔다”고 말했다. 일반인 이장원 씨는 “세상에 온통 좀비만 있는데 여기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투명가방끈 이날 참석자들이 내놓은 퍼포먼스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15학년도 대학수능시험일인 11월 13일 목요일에 거부 선언식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