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까지 시렸던 오늘 아침, 수험생들은 수능 시험장으로 향했다. 오늘이 지나면, 이 시큰거리는 추위도 그동안 고생했던 마음도 조금은 따듯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들과 달리, 고등학교 삼학년 김예림(라일락), 황채연(사카린),  함이로 씨는 수능 시험장 대신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후배들이 아니라 그들의 거부 선언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 속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꿈은 대학이 아닙니다.” 고함20은 이날 거부선언을 했던 3명의 거부자 중 김예림 씨의 목소리를 받아 독자들에 전한다. 


ⓒ경향신문 ‘내려놓은 가방’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거주하던 지역에서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교였고, 그 학교에서 나는 상위권을 차지하며 주변에서 큰 기대를 받았던 거 같다.


학교는 나에게 자부심과 성취감의 공간인 동시에, 폭력의 공간이었다. 여러 불합리한 규제와 체벌이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이 공간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당시 내 꿈은 의사였는데,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18살 때 우리나라 최고의 의대에 들어가는 게 목표였다. 나는 의사가 되어 있는 내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현재의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1프로를 차지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공부한 많은 의대생들의 수기를 보며, 나는 자극을 받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나는 더이상 의사가 되어 있는 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도 간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수능이 3개월 남은 시점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다른 진로를 찾아야 했다. 그래야만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부모님과 대화를 해보고 고민을 해본 결과, 사회학과에 가서 교수가 되기로 했다.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야니 좋은 대학에 가서 공부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도 인권과 사회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었고, 그런 방향으로 공부계획을 수정했다.


대학입시거부를 만난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한 순간도 대학을 안 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듯 나 역시도 대학은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하나의 필수 코스였고, 내 꿈은 대학에 맞춰졌다. 


내가 성적향상에서 느꼈던 성취감은 다른 이를 밟고 더 높은 등수를 얻은 데에서 생긴 감정이었고, 주위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 역시 내가 60만 수험생 중에서 앞장서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오늘 대학입시를 거부하며, 꿈꿔본다. 좋은 학벌과 찬란한 미래를 얻기 위해 줄 세우기 경쟁을 하며, 그 속에서 다른 이를 밟고 올라설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그런 대학 입시가 바뀌는 날을.


글.김예림(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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