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여러 언론이 서울대 이공계생의 63%가 실험데이터를 조작한 경험이 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이 이를 보도하며 인용한 소스는 서울대학교 자치언론 <서울대저널> 129호에 실린 “너무 진지한 것 아니냐, 다들 그러는데”의 기사 일부였다

서울대저널의 해당 기사는 이공계생 사이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데이터 조작과 실험보고서 표절 문제를 고발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1학년 학생들이 듣는 기초 실험과목에서 실험 결과값 조작과 ‘소스’(실험보고서를 정리한 것) 베끼기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는 윤리의식 부재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저널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인 윤리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학생들의 의식변화를 강조하는 어조로 기사를 마친다.  

과연 대학생의 충분하지 못한 윤리의식이 가장 큰 문제인가? 물론 연구 현장의 윤리를 도외시하고 성취만을 쫓는 행태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는 ‘황우석 사태’를 통해 온 국민이 경험한 바 있다. 실험윤리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윤리의식을 고취시키는 것 만으로 데이터 조작의 유혹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그렇다’고 답변하긴 쉽지 않다. 


<서울대저널>이 제기한 데이터 조작 논란의 해법을 단지 윤리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학부생의 실험수업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험과목의 수고로움에 비해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경대학교

대학생을 실험데이터 조작으로 내모는 첫 번 째 원인은 열악한 실험실 환경이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김보연씨는 낙후된 실험환경을 묻는 질문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대답했다. “폐수를 설계한 여과장치에 넣고 얼마나 물이 깨끗해지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폐수를 집어넣고보니 여과기 곳곳에서 물이 계속 샜다. 한쪽에선 실험을 진행하고 다른 한 쪽에선 나사를 조이면서 물이 새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물론 물이 조금만 새도 수득률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이같은 증언은 수많은 대학생들이 엉터리 실험기구 때문에 겪은 사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더 많은 고장난 실험기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공계열을 전공한 가까운 친구를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좋다.)

열악한 실험실 환경을 둘러싼 논란은 일부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대학에선 매년 이공계열의 실험환경 문제를 둘러싸고 학생과 학교의 갈등이 반복된다. 이공계열 학생들은 실험비 명목으로 인문사회계열 학생에 비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백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더 지불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험환경이 몇 년이 지나도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두 번 째 쟁점은 실험과목의 높은 난이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학점이다. 실험과목이 요구하는 공부량에 반해 학생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미흡하기 때문에 쉽게 데이터 조작의 유혹에 빠진다는 설명이다. 대학교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한 김희균씨는 문제가 실험과목 그 자체에 있다고 지적한다. “(실험과목이)시간은 많이 잡아먹는 반면 학점은 조금 준다. 한 학기 내내 정신없이 실험하고 보고서내고 실험하고 보고서내고를 반복한다. 실험과목이 요구하는 학업수준은 3학점 이상이지만 학점은 1,2학점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험과목의)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공계열 저학년 학생들은 매학기 한 두 개의 실험과목을 이수한다. 설사 실험 재현에 실패하더라도 실험의 의미를 생각하거나 그 원인을 분석할만한 충분한 시간은 없다. 실험 보고서를 보고 베끼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실험 보고서엔 그 실험에서 요구하는 이론적 배경에 대해 서술해야 한다. 매우 힘들고 귀찮은 과정이지만 채점 과정에서 조교들은 이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은 기계적으로 족보를 보고 실험과목의 이론적 배경을 옮겨적는 유혹에 쉽사리 빠진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보다 적절한 보상체계의 설계에 있다. 저개발국가를 여행하고 온 사람으로부터 부패한 하급공무원에 얽힌 에피소드를 듣기란 어렵지 않다. 공항에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출입국관리국 직원에겐 뇌물 몇 푼이 불편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다. 이들이 부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자국 내 다른 직업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월급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발전한 국가에선 공무원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선진국의 공무원이 제3세계의 공무원보다 덜 부패한 이유를 단지 더 탁월한 도덕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긴 어렵다.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적절한 보상이다사람의 도덕성은 잘 설계된 보상체계 안에서 더 잘 작동한다.

실험데이터 조작 문제를 대학생 개인의 윤리의식 문제로 환원해서 비판하긴 쉽다. 그러나 단지 도덕성을 지적하는 것 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실험수업을 둘러싼 두 가지 쟁점, 즉 낙후한 실험실 환경과 실험과목의 부적절한 보상체계를 논의에 포함시키지 않은 채 학생 개인의 윤리의식에만 논의의 촛점을 맞춘다면 데이터 조작 논란은 같은 지점에서 맴돌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