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1일, 합정동에서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의 주최로 <함께 말하면 비로소 변하는 것들>이라는 ‘출판산업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합 집담회’가 열렸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상부에 보고한다는 선택지는 보기 1번에서 10번, 어디에도 없더라.”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책은탁(가명) 전 마케터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사내 성폭력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전했다. 지난 2012년 9월, 그녀는 쌤앤파커스 이모 상무의 개인 오피스텔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책은탁씨는 “이모 상무는 중요한 인사결정권자였고, 그 날은 17개월의 수습직원 끝에 정직원 전환 발표가 있기 3일 전 이었다”며 사건 당시 저항하기 힘들었던 처지를 호소했다. 결국 그녀는 사건 이후 정신과를 다닐 뿐 신고할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책은탁씨가 사내에 폭로하기로 한 것은 후배가 이모 상무에게 같은 성추행 피해를 당한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그녀가 “내가 밝히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았다”며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그런데 순식간에 내부고발자로 몰려 조직적인 2차 가해가 이루어졌다. “너 하나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이렇게 됐다며 나무라는 동료들의 언어폭력까지 견뎌야 했다”며 책은탁씨는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결국 그녀는 올해 9월 회사를 그만두어야만 했다. 현재, 그녀는 정신적 고통으로 몸무게가 10kg이 줄어들 정도로 말라버렸으며 지난 22일 극심한 자살 위험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 미디어오늘


 


 


피해자가 홀로 견뎌내야 하는 진실의 무게


 
“얼마나 더 많은 증거가 있어야 ‘증거충분’이 되는 걸까요?”


 


‘증거불충분’이라는 다섯 글자 앞에서 책은탁씨는 수십 번 수백 번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설명했다. 그런데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이모 상무를 무혐의 처리했다. “민사소송을 진행할 예정이지만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피해자이고 쌤앤파커스와 이모 상무가 명백한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 받는 것”이라고 밝혔다.


 


책은탁씨는 “박시형 대표는 언론에 사건이 공론화되자 사과문을 올렸지만, 뒤로는 버젓이 가해자를 변호하는 진술서까지 써주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며 진실한 사과를 촉구했다.


 




행복한 노동이 좋은 책을 만듭니다
 


출판노조가 출판 노동 실태 파악하기 위해 지난 8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출판노동자 51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적인 언어 희롱’(99명)과 ‘의도적인 신체접촉’(65명)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답변이 있었다. 사건의 가해자는 주로 사용자나 상사가 (108명)가 제일 많았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이소희 활동가는 “1년에 들어오는 약 300여 건의 직장 성폭력 상담 중 반 이상은 상사가 가해자”라며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밝혔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또, 이 활동가는 “출판 노동자의 상담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 측에서 연락이 와서는 ‘우리 출판사는 페미니즘 서적도 낸 적이 있을 만큼 진보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지성인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리가 없다’고 한 적도 있다”며 표리부동한 출판계 현실을 지적했다.


 


출판노조협의회의 박진희 분회장은 “출판사는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사랑받는 책을 만들지, 도서정가제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밤새 연구한다. 하지만 정작 그 책을 만드는 출판 노동자들의 인권에는 어떤 관심조차 없다”며 출판 노동자의 처우에 대해 지적했다. 출판노조 협의회는 쌤앤파커스 사건 진상 규명과 진실한 사과를 촉구하며 서울 서교동과 파주 쌤앤파커스 사옥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쌤앤파커스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김미경의 <드림 온> 등의 대표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바 있다. 현재 쌤앤파커스 박시형 대표는 11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회사를 매각하고 대표이사에서 사임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