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카드지갑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폐와 동전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서, 장지갑의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온 이후부터다. 카드지갑에는 체크카드를 비롯해서 도장을 찍는 종이쿠폰과 적립카드만 단출하게 들어가 있지만, 그럼에도 소비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편의점, 음식점, 카페 그 어느 곳에서도 카드로 계산하는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편하다. 현금을 냈을 때 거스름돈을 정확히 챙겨 받아야 하는 여분의 과정이 생략되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조그마한 카드지갑 안에 꼬깃꼬깃 접은 지폐와 동전이 항상 엉켜 있다. 바야흐로 길거리 음식의 계절, 겨울이 왔기 때문이다.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기 시작하는 12월, 움츠러드는 몸과 다르게 길거리 상점은 천막을 활짝 펼친다. 나에게 겨울이 설레는 이유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하얀 눈도 아닌 추위를 즐기게 만드는 길거리 음식들이다. 주황색, 빨간색 천막 아래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길거리 음식이야 말로 겨울 풍경을 완성해주는 주인공이다. 노란 은행잎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공허함은 맛있는 냄새로 메워진다. 떡볶이, 순대, 오뎅의 조합은 언제 어디서 봐도 먹음직하고, 자글자글 구워지는 호떡, 고소하고 달콤한 향을 풍기는 붕어빵과 군고구마 등의 음식들이 길거리를 아우른다. 여름에도 먹으려 하면 먹을 수는 있지만, 이런 음식들은 겨울 추위 앞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제목_없음

추운 겨울이 되면 길거리 음식이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5분 남은 버스를 기다리며 또는 몇 정거장 전에 있는 지하철을 확인하고 사먹는 오뎅 국물은 꽁꽁 언 손을 녹인다. 두꺼운 옷에 가방을 끼고는, 오고 있는 버스와 지하철을 확인하며 먹는 오뎅 한 개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길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음식은 따뜻한 공기를 품어내며 추위에 빨라진 발걸음을 주춤하게 만든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서서 먹는 각종 꼬치와 떡튀순은 참 맛있다. 목도리에 묻힌 얼굴을 빼꼼 꺼내어, 빨개진 볼이 쉼 없이 움직이며 먹는다. 이때만큼은 하늘에서 더 맛있게 먹으라고 추위를 내려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가족의 손에 들린 음식은 또 어떠한가. 심심치 않게 부모님은 군고구마를, 동생은 호떡을 사온다. 예상치 못한 음식의 방문(訪問)은 닫혀있던 나의 방문(房門)을 활짝 열리게 만든다. 고구마가 너무 뜨거워 손에 제대로 잡지도 못한 채, 조금 까고 접시에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동생이 다 까놓은 걸 내 접시로 가져오고 채 못 깐 고구마를 넘겨주기도 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와 함께 먹고 있자면 그만한 꿀맛도 없다.

 

하루에 몇 번이고 마주치는 이 음식들을 ‘현금이 없어서’ 못 먹는 것만큼 아쉬운 일이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집에 흩어져있는 동전들에 눈길이 간다. 하나 두 개 챙기다 보면 어느 새 오뎅 몇 개 사먹을 돈이 나온다. 그렇게 모인 동전은 학교 근처 역 앞에 있는 포장마차 할아버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카드 단말기도, 금고도 없어서 손님들에게 받는 모든 돈은 할아버지 손을 거쳐 호주머니로 향한다. 또 누군가 와서 오뎅을 먹고 지폐를 내면, 할아버지는 호주머니 깊숙하게 손을 넣어 동전을 꺼내고 잔돈을 줄 것이다.

 

글. 아호(9208kj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