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난하는 여론은 거셌다. 속보 경쟁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만들어냈고 특종을 노린 과도한 취재는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에게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언론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신조어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최근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의 주인공 최달포(이종석) 역시 언론의 2차 가해로 인한 피해자다.

 

ⓒ SBS 드라마 ‘피노키오’ 

 

기사에서 ‘팩트’보다 중요한 건 ‘임팩트’?

 

소방관인 달포의 아버지 기호상은 공장 화재 진압 중에 목숨을 잃지만 다른 소방관들과 달리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기호상이 공장 안에 아무도 없는데 소방관들에게 들어가라고 지시했다”는 공장 직원들의 거짓 증언에다 피노키오 증후군(극 중에 나오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증후군)인 이웃이 사고 당일 달포의 아버지가 도망간 것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끝까지 남은 생명을 구하고자 했던 달포의 아버지는 기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무리한 화재 진압 지시로 소방관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해자’로 매도되었다. 13년 후, 공장에서 달포 아버지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는 거짓보도로 판명 났지만 이미 사회적 지탄을 받아 풍비박산 난 달포네 가족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면? 지난 1993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사고 당시, 침몰하는 배를 두고 달아난 백운두 선장(당시 56세)을 찾기 위한 소동이 일어났다. 백 선장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증언을 <한겨례>가 단독 보도하면서 다른 언론사들도 책임을 피하려고 도주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를 앞다투어 내보냈다. 당시 사법당국까지 “그가 살아있을 확률이 98%다”라며 지명수배를 내린 지경이었다.

 

 

ⓒ 한겨례

 

그러나 사고 닷새 만에, 백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의 유해가 통신실에서 발견됐다.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구조 요청을 하려고 변을 당한 것이다. 승무원 최연만씨의 유족은 “이제야 모든 누명을 벗었다”고 전했고 백 선장의 유족은 “끝까지 배를 떠나지 않은 사람을 비겁한 도망자로 몰아온 수사기관과 언론이 원망스럽다”고 울부짖었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사건에서도 이런 자극적인 보도 관행은 여전했다. 검찰이 유병언 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 언론은 해경의 구조과정이나 정부의 대응 방식을 문제 삼기보다 유병언 관련 보도에 집중했다. 채널A는 “유대균, 소심한 목소리로 뼈 없는 치킨 주문”이라는 단독보도를 내보냈고, 유대균과 호위무사로 알려진 박수경씨의 내연관계를 의심하는 가십성 기사도 연일 이어졌다. 이외에도 사실 확인이 부족한 기사가 난무해 구원파는 지난 10월 1,000여 건을 언론중재위에 제소했고 일부 언론사에선 정정보도가 나가기도 했다.

 

ⓒ 채널A

 

서해훼리호 참사에서는 백 선장이, 드라마 ‘피노키오’에서는 기호상이, 그리고 세월호 사건에서는 유병언 일가가 언론의 표적이었다. 물론 유병언은 앞의 두 사례와 달리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지만, 문제는 언론의 물타기식 보도로 세월호 사건의 본질이 왜곡됐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 특종을 위해선 물불 안 가리는 송차옥 기자(진경)는 이런 언론계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녀는 기호상을 범인으로 모는 왜곡보도에 후배가 반문하자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시청자들한테 먹히는 건 팩트 보다 임팩트야. 소방대원이 아홉이나 죽었어. 그 원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게 무리한 화재진압을 한 기호상이야.”

 

 

드라마 ‘피노키오’, 언론계에 묻다

 

“마이크와 카메라를 완장인 양 차고 나대는 인간투성이인 곳에 다시 오는 게 죽기보다 싫다”며 누구보다 기자를 증오하던 주인공 최달포는 아버지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방송사 수습기자가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이 가장 증오했던 기자의 모습을 똑같이 반복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헬스장에서 사망한 한 여성을 미용을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라고 보도했으나, 실제로는 딸에게 간이식을 해주기 위한 다이어트였기 때문이다. 사망한 여성의 장례식장에서 달포는 자신의 왜곡보도에 상처 입은 딸을 보고 망연자실한다.

 

달포처럼 기자 개인은 진실을 알리고 싶었으나 결국은 ‘기레기’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후 언론계는 △데스크의 현장 기자에 대한 무리한 취재 압박 △연차 낮은 기자의 투입 △무리한 취재 경쟁 △정부 출입처 브리핑 ’받아쓰기‘ 관행 등에서 원인을 찾았다. 무분별한 보도 관행 개선과 언론계의 적극적인 연대 없이 기자 개인의 양심에만 맡기기엔 힘들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후 지난 9월 언론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재난보도준칙’이 발표됐다.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가이드라인 정도만 만들다가 여론의 관심이 사라지자 결실을 맺지 못했었다. 당장 내년에 이런 참사가 또 발생했을 때, 과연 언론은 보도 준칙을 제대로 지킬 준비가 되어있을까? 드라마 ‘피노키오’는 언론인의 본질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쉽사리 정답을 내기 힘들지라도 언론인 스스로 묻고 또 되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