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다던데? 진짜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고 말할 때마다 가장 많이 돌아온 역질문이었다. ‘…나는 사정했다’는 문장이 하루키 문학에 대한 요약으로 대표되니 그럴만하다. 에세이에서는 섹스 얘기가 덜하다는 부연이나 “나의 하루키는 이렇지 않아!”라는 항변은 촌스러운 동시에 ‘노잼’일 수밖에 없다.

 

농담을 그대로 옮겨와보자. 스토리를 사정행위만으로 끝내버리는 이 작가는 왜 이렇게 인기가 높을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걸까? 노벨문학상 탈락작가, 이성을 꼬실때 파악해야 하는 책, 베스트셀러라서 읽는 작가 등 이런저런 이미지 때문에 하루키라는 사람에게 접근하기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반도의 흔한 하루키 팬이 준비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나도 하루키 책 전부 읽은 건 아니다. 이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아주 주관적인 안내다. *주의 : 스토리 분석 없음! 알찬 서평을 원한다면 뒤로가기

 

하루키 글의 투톱, 음식과 고양이

 

읽는 사람도 체하게 만드는 위급한 상황의 식사가 아니라면 음식 이야기는 늘 읽기좋다. 하루키의 글에서 무한반복되는 식품의 종류만 나열해도 한 상씩 세끼를 식탁이 꽉 차게 차릴 수 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해도 맥주, 두부, 샐러드, 스파게티, 미역, 굴튀김, 도넛, 크로켓, 우동, 장어… 각종 식품과 요리에 대한 찬양은 에세이와 소설을 넘나들며 각색된다. 하루키를 처음 접했던 소설 <해변의 카프카>속 주인공은 집을 나온 청소년인데도 다행히 잘 먹고다닌다. 막 가출한 내 또래 남자애는 뭘 먹으면서 다니는지 궁금했다. 하루키는 이렇게 답한다.

 

‘작은 배낭에서 준비해 온 밀가루와 달걀과 우유 팩을 꺼내, 프라이팬을 덥힌 후 팬 케이크를 만든다. 버터와 시럽을 바른다. 양상추와 토마토와 양파를 꺼낸다.’

 

‘달걀과 피망과 버터를 꺼냈다. 그리고 피망을 씻어서 잘게 썰어 볶은 후 달걀을 그릇에 깨 넣고 젓가락으로 저었다. 적당한 크기의 프라이팬을 골라 익숙한 솜씨로 피망이 든 오믈렛을 두 개 만들었다.’

-해변의 카프카 중

 

앞에 순번만 달면 레시피와 다름없는 문장이다. 왜 이 특별할 것 없는 묘사가 좋은지는 아직도 분명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확실한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비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설명과 기묘한 사건 사이에서 먹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점이다. 아무런 장식도 없다. 가끔은 그런 일상성이 다음 장을 넘기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이 아저씨는 취향의 완성을 위해 아예 한 가지 음식을 찾아 여행한 적도 있다.

 

‘계속 우동만 먹어대니까 아무리 우동을 좋아한다고 해도 점점 뱃속이 이상해졌지만, 다음 차례인 ’가모 우동집‘으로 향했다. (중략) 이를테면 카레라이스 같은 걸 먹고싶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우동을 먹겠다는 목적으로 취재차 시코쿠까지 왔으니 후회해봐도 이미 때는 늦었다. 이렇게 된 이상 위장이 받아들이는 한 계속 우동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침 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날씨도 좋고 우동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중략)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동이라는 음식에는 뭐랄까,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다.’

-하루키의 여행법 중

 

 

Haruki Murakami

 

무라카미 하루키 ⓒ the guardian

 

하루키의 이야기에서 가끔은 사람보다 고양이의 동태를 묘사하는 것을 더 즐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말은 하지않지만 주연급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동물. <태엽감는 새>에서는 제목에 있는 새보다 더 존재감이 뛰어날정도. 애교도 없고 도도한데, 인간보다 똑똑하다. 다른 소설에도 양이나 그의 소설에 대한 비평에서 열쇳말로 등장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프랑스 대사가 키우던 암고양이 카트린(가명)은 분명히 대단한 미인이었을 것이고 자존심도 아주 강했을 것이다. 프라다 목걸이밖에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래서 이웃 수고양이 타마(가명)는 마음먹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중략) ‘백만년이 지나도 너 따위와 함께 살 일은 없을거야.’하고 카트린이 차갑게 거절하자, 실망해서 돌아왔겠지. 인간세계에서는 흔히 있는 이야기이다.’

-무라카미 라디오 중

 

‘하지만 설령 농담조로 부른다 해도 와타야 노보루라는 이름은 너무나 부적당한 것이었다. (중략) 나는 고양이의 귀 뒤쪽을 어루만지면서, “알겠니, 너는 이제 와타야 노보루 따위가 아니라 삼치야” 하고 가르쳐 주었다. 나는 가능하다면 이를 온 세상에 큰소리로 외치며 돌아다니고 싶었다. 저녁때까지 나는 툇마루에서 고양이인 삼치 옆에 앉아 책을 읽었다.’

-태엽감는 새 중

 

 

 

블루프린트의 두서없는 하루키 타임라인

 

<더 스크랩> ‘미국 영화에서의 여행의 사상’. 책 이름이 아니라 하루키가 연극과를 졸업하면서 작성한 논문제목이다. 병맥주를 들고 알 수 없는 여자들을 만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무국적의 환상 속 인물같지만, 들춰보면 생활 방식부터 음악 취향까지 ‘아메리칸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의 소설은 ‘아시아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도 받지만 세상 모든 이야기가 역사를 말할 당위는 없다. 빼곡하게 녹아있는 하루키의 미국 문물에 대한 내공을 알 수 있는 책. 초심자 가운데서도 미국문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더 쉽게 있을 수 있는 에세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다소 찌질한 불평은 덤. 스크랩북 펼치는 느낌으로 야금야금 읽기 좋다.

 

“그런데 폴 스튜어트에서 셔츠를 샀더니 설문지가 들어있었다. 쓰려고 보니 직업란에 자영업이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다. 1) 지적 서비스업 2)물적 서비스업 3) 기술 서비스업. 1)로할까 3)으로할까 무척 망설였다. 셔츠 한 장 사는데 그런 어려운 질문은 삼가면 좋겠다.” -더 스크랩

 

귀여운 책디자인지수 ★★★★★

처음보는 노래제목지수 ★★★★

 

 

scrap

 

한국에서 출판된 더 스크랩. 왼쪽 귀퉁이가 잘린 디자인이다.

 

 

<태엽감는새 2> 태엽감는새 시리즈 중 가장 두꺼운 세번째 책. 우습지만 나는 한꺼번에 전권을 살 여력이 안되는 20대로, 이 장편은 다 사기는 아깝고 안사기는 아쉬운 책이었다. 1권은 서점에서, 나머지는 도서관 책으로 다 읽었다. 단조로운 ‘태엽감는 새’의 동네가 스토리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는 순서이기도 하다.

 

“전부 잊어버리세요. 잠을 자듯이, 꿈을 꾸듯이, 따뜻한 진흙 속에서 뒹굴듯이. 우리는 모두 따뜻한 진흙 속에서 나와 따뜻한 진흙 속으로 되돌아가요.” 

 

서스펜스 지수 ★★★★

고양이 지수 ★★★★★

국어책에서 배운 액자소설지수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 얘기를 해보자. 물론 그의 소설중에는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더 긴 제목의 단편도 있다. 책 제목이 영화 티저처럼 돌아다닐 때, 나는 ‘그’가 쓰쿠루가 아닌 또다른 인물을 지칭하는 줄 알았다. 순례를 떠나는 사람이 두 명으로 착각한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는 이렇게 오해한 사람이 한 명 정도는 더 있지않을까. 한국 출판 마케팅의 힘이 극대화된 소설인것 같다. 긴 제목이 오히려 출판에 도움을 줬다고 느껴질 정도다. “하루키 소설 나왔어? 뭔데?” “아..색채..다자키 스쿠루..아무튼 그거”라고 더듬거리면서 ‘하루키 신작’은 뇌리에 계속 남는것이다. 참고로 고양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 의미불명 지수 ★★★

 

 

<해변의 카프카> 두 권짜리 장편소설. 양장본이 아닌 얇은 표지의 책으로 읽었다. 집중력이 약했던 고등학생을 붙들고 있을 수 있게 해준 환상의 연속이다. 자극적인 이야기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끝까지 다 읽었다. 징그러운 묘사가 단지 징그러운 것을 넘어설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지수 ★★★★

 

 

<1973년의 핀볼> 한국에서는 2004년에 양장본으로 재출판됐다. 기자는 원본의 표지가 더 마음에 들어 인터넷 중고서점을 공략해 절판본을 구입했다. 97년에는 5천원이던 이 책은 2012년 만 원에 내 손에 들어왔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쫓는 모험>과 함께 ‘쥐 3부작’으로 불린다. 쌍둥이 자매와 남자주인공. 이 소설을 등장인물들을 내세워 홍보한다면 도서관 대출순위 1위는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환상 속의 여자지수 ★★★★★

 

 73pin

 

 

<1973년의 핀볼> 개정판(왼쪽)과 초판 표지디자인의 차이 알라딘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라디오> 얼핏보면 ‘유복한 중년남성의 음식일기’ 정도로 착각하기 쉽다. 주로 패션지 등에 토막글로 연재된 그의 에세이 모음. 주로 사유보다는 사물 자체에서 출발한다. 음식이나 특정 음악, 영화를 그대로 글감으로 만든다. 방송 인터뷰를 꺼리는 그의 취향을 팬들이 다 꿰고 있을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배고픔지수 ★★★

 

<언더그라운드> 하루키가 기자였다면 어떤 기사를 썼을까? 도쿄 지하철의 사린가스 살포 참사에 천착해 그 피해자들을 취재한 르포르타주 이다. 이 책은 사건의 경과와 수치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취재원을 구성하는 모든 것 -고향이나 직업, 취미, 습관 등-을 듣고 적는다. 그러다보니 분량도 웬만한 소설보다 길다. 애써 삭제하지 않는 그의 집필방식이 이 르포에도 적용된 듯 하다.

 

참언론지수 ★★★

 

 

부록 – 하루키 ‘입문서’가 된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

 

원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 소설 중 비교적 인지도가 높다. 긴머리-단발머리를 한 두 명의 여주인공과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듯 보이는 남주인공. 여기에 감상적인 한국판 제목까지, 스테디셀러의 조건을 나름대로 갖췄다. 일본문학을 도맡아온 번역가 양억관의 손을 거쳐 지난해 원제목으로 재출판되었다. 기자의 취향으로는 개정판의 표지가 훨씬 ‘상실’의 감정을 자극하는 듯하다. 하루키의 다른 몇몇 소설과 더불어, 구성이 그저 ‘야한’ 장면을 위한 병풍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반박해야겠다는 생각도, 팬으로서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 구미를 당기게 하는것도 작가의 능력이라면 능력인 것 같다. 동시에 실제로 하루키가 야한 장면에 공을 들였다는 생각도 든다. 책은 안 읽겠지만 스토리는 궁금하다는 사람에게 설명해줄 명분이 될지도 모르겠다.

글/ 블루프린트 (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