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빼빼로데이라고 하기에는 1 하나가 부족한 그런 날이었다. 1월 11일에는 대신 ‘굴뚝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굴뚝데이는 배우 김의성 씨가 트위터(@lunaboy65)를 통해 현재 굴뚝에 올라가 있는 쌍용노동차 해고 노동자 이창근과 김정욱을 응원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1월 11일, 동시다발적으로 각 지하철역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것이 굴뚝데이의 ‘이벤트’였다. 

 

배우 김의성 씨의 트위터 갈무리

 

내가 쌍용자동차(이하 ‘쌍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쌍차는 사회적 화두였다. 지금은 대한문 앞에 화단이 있지만, 그때에는 영정이 있었다. 해고된 후 돌아가신 쌍차 노동자들의 영정이 있었고, 그들의 동료들은 영정을 지키며 대한문 앞에서 잠을 잤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며 정당한 자신의 일할 권리를 외치기 위해 추운 날 길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당시 나에겐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 후로도 많은 일이 있었다. 철없는 대학교 새내기는 쌍차를 보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대한문 앞의 영정들이 강제로 철거되고, 화단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어 스크럼을 짜서 누워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는 것을 봤을 때는 먹먹했다. 공지영처럼 유명한 작가가 쌍차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고, 연예인 이효리 덕분에 시사인의 노란 봉투가 이슈가 되는 등 쌍차가 조금이라도 알려지는 일이 있으면 희망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쌍차 문제의 해결은 요원했다. 단지 공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인 그들의 단순한 요구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작년 대법원 판결에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적법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소망은 다시금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도, 공부가 바쁘고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쌍차를 점점 잊어만 가고 있었다.


지난달 13일, 추운 겨울 새벽에 해고 노동자 두 명은 70m 높이의 쌍용자동차 공장 굴뚝에 올랐다. 그렇게 쌍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 중 또 한 번의 시도가 시작됐다. 그들의 트위터와 굴뚝 농성 소식을 전하기 위한 ‘굴뚝일보’ 계정을 통해 전해지는 사진들은 보고 가슴이 아팠다. 굴뚝에는 새벽마다 팔뚝만한 고드름이 자랐고, 그들은 그런 곳에서 잠을 잤다. 회사는 도시락과 필요한 물건을 올려보내는 그들의 동료들을 방해했고, 퇴거를 요구하며 하룻밤에 100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강제금을 매기려고 했다. 그 모순들을 보며 다시금 쌍차를 기억하고자 했다.


1월 11일 아침, 집을 나서며 김의성 씨의 트위터에 멘션을 했다. 11일 이태원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약속 시각보다 일찍 나가서 한 시간 정도 서 있겠다고 약속을 했다. 김의성 씨는 나를 응원해주었고, ‘인증샷’을 부탁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각 역에서 1인 시위를 약속하는 멘션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1월 11일 굴뚝데이에, 각자 다른 역을 지키는 ‘역전의 용자’가 됐다. 다른 이들이 아니라, 해고된 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든 티볼리(쌍용자동차에서 출시 예정인 신차 모델명)를 타고 싶다는 소원을 빌며.


이태원역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손팻말에 영어를 적어 갔다. 오랜만에 매직으로 큰 글씨를 쓰느라 글씨체도 엉망이고,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손팻말이 부실해보였다. 열한 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 이태원역 출구에 서서 가방에 넣어 둔 손팻말을 꺼내 들고 섰다.

 

이태원역 앞에서 #역전의용자 1인 시위 진행중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그동안 잠시 쌍차를, 정당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을 잠시 잊었던 나를 반성했다. 일요일 오전 시간이라 붐비지는 않았지만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손팻말에 쓰여있는 문구를 읽을 때마다, 민망함은 자꾸 줄어들었다.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겨울이기 때문에 밖에 서 있기에는 조금 힘들었다. 특히 손팻말을 들고 있어야 해서 손이 가장 시렸기 때문에, 장갑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지나가는 외국인이 “What is TIVOLI?” 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고, 더듬더듬 영어로 대답을 하다 보면 추위를 잊을 수 있기도 했다.


약속 때문에 더 오래 서 있을 수 없어서 못내 아쉬운 1인 시위가 한 시간쯤 후에 끝이 났다. 손을 녹이러 들어간 카페에서 트위터를 켜 보며, 속속들이 도착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증샷을 봤다.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쌍차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채 각 지하철역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정다웠다.


지하철역 앞의 사람들도, 대한문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굴뚝의 두 명도, 모두 따뜻한 굴뚝데이였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당하게 해고된 이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를, 진정으로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