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짓고. 매일 변하는 서울은 사뭇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를 연상시킵니다. [심시티:서울]은 모든 건물이 수치화되고 오로지 건물주의 시점에서 개발되는 대한민국, 서울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기억이 갈 곳을 잃은 채 떠, 돌아, 다닌다. 잦은 재건축은 공간의 맥락을 쉽게 단절시킨다. 공간과 그에 대한 기억은 함께 붙어 있다. 그런데 공간이 없어지면 그에 대한 추억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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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나는 홍익대학교에 입학했다. 평일 아침마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의 계단을 올랐다. 홍대앞에 딱 한 번밖에 안 가본 나에게 ‘홍대앞’ 은 두 단어로 엮여있었다. “홍대앞은 맛집 많고 버스킹 공연하는 곳이죠?” 나에게 홍대앞은 인디씬, 클럽과 라이브 홀, 유명한 맛집 혹은 특이한 카페가 있는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근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9번 출구의 계단을 오르는 나에게 누군가 ‘홍대앞’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다. “홍대 앞은 이별의 공간이에요.”

 

홍대앞 맛집을 다 가보겠다는 농담은 시간과 돈이 있어도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발걸음이 뜸해지는 방학을 지나 돌아온 홍대앞은 늘 변해있었다. 9번 출구에서 나가 삼거리를 지나 언덕을 올라가는 익숙한 길. 길 자체는 익숙했지만 그 길의 풍경은 자주 변했다. 변화는 적나라했다. 헌 간판이 내려가고 몇몇 인부들이 오간 뒤엔 새 간판이 달려있었다. 먼지가 쌓이기도 전에 버려진 간판도 여럿 있었다. 어떤 경우는 간판이 아니라 건물이 내려갔다. 헌 건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 건물은 깔끔하고 결점 없는 새 건물이 됐다.

 

2012년, 나는 ‘리치몬드 제과점’이 1월 31일부로 홍대앞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때이기도 하다. 당연히. 나는 리치몬드 제과점의 폐업 소식에 동요되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나’와’ 홍대앞 어느 가게 폐업 소식 사이에 접점이 생겨나기 시작한 때는 ‘레코드 포럼’의 폐업소식부터다. 레코드 포럼은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상수역으로 걸어가다 보면’들을 수 있는’ 가게였다. 도보 구석에 있던 그 레코드점은 눈에 띄는 가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성능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주었던 탓에, 나는 레코드포럼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레코드포럼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재즈 레코드점이라고 기억한다(안타깝게도 레코드 포럼에 들어간 본적은 없다. 레코드 포럼 방문은 그 가게가 이전한 뒤에나 이뤄졌다). 그 곳의 의미를 음악 장르로 비유해도 역시 재즈였다. 가게는 낮이라 해도 사람도 별로 없고, 여백도 많아서 삭막한 골목에서 뜬금없이 분위기라는 걸 만들어줬는데 이게 마치 예상하지 못한 코드진행을 구사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같았다.

 

레코드포럼의 폐업소식이 들려왔지만, 다행히 가게는 홍대앞에서 완전히 쫓겨나지 않았다. 가게는 정말 예쁘고 느낌 있는 카페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데이트하기 좋은 카페 옆에 위치하게 됐다. 카페골목은 술기운이 잔뜩한 주차장 거리와 다르게 낮과 밤 구분 없이 항상 ‘느낌’이 있다. 분위기 가득한 카페골목과 레코드포럼의 플레이리스트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렇기에 더 이상 레코드포럼을 재즈적인 공간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나는 공간 하나를 잃었다. 공간을 둘러싼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 됐다.

 

레코드포럼은 운이 좋았다. 원래 건물주는 레코드포럼의 가치를 알아보고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레코드포럼이 가게를 빼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같은 동네에서 카페를 하던 사람이 찾아와 레코드포럼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줬다. 공간을 둘러싼 맥락은 변했지만 어찌 되었든 레코드포럼은 홍대앞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공간들이 이처럼 좋은 운을 타고난 건 아니다. 대게의 경우 리치몬드 제과점처럼 사라져, 버린다. 학교보다 먼저 보이던 카페 에스파냐는 건물 채로 없어졌다. 건물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작업은 생각 외로 금방 이뤄졌다. 건물은 한 학기가 채 안 돼서 완공된 것 같다. 새 건물은 애초부터 프랜차이즈 카페를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합정역 지점과 거의 똑같이 생긴,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에서 고유한 기억이나 의미를 만드는 일은 어려웠다. 그곳에 아무리 자주 가도 그곳은 그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능적인 곳에 불과했다. 에스파냐뿐만이 아니다. 홍대앞에 있을수록 “없어져 버렸네. 옛날엔 여기에 그게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횟수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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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36.5°c 여름은 왜 없어졌을까? 

 

 

학교도 안 나가는 여름방학, 나는 똥집 튀김으로 유명한 카페거리의 ‘똥집맛나’를 인터넷에서 볼 수 있었다. 폐업소식 때문이었다. “그동안 똥집맛나를 찾아주신 분들께 무한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2년간 배불리 살았습니다. 건물주가 가게를 빼고 나가라고 해서 똥집맛나는 부득이 쫓겨나게 되었네요.” 이상했다. 가게가 잘 안돼서, 폐업한 게 아니라고?

 

몇 주 전 개봉한, 두리반 투쟁을 담은 ‘파티51’을 봤다. “영업을 시작한 지 아직 3년도 안 됐을 때인 2007년 12월, 아내의 우물인 두리반을 빼앗으려는 자들이 불시에 나타났다. (중략)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건설사가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두리반 역시 장사가 잘 안돼서 폐업한 게 아니었다. 장사가 안 된다는 건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기억 속엔 있지만 현실 속에서 없어진 공간들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들의 끝을 다시 확인해봤다. 무언가가 잘못되었었고, 무언가 잘못되었다.

 

홍대 앞은 이별의 공간이다. 이별들 뒤엔, 이별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제도가 있었다. 자본은 공간의 기억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매력적인 장소가 매력은 없지만 돈 많은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하는 일련의 과정은 거부할 수 없는 도시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그 흐름은 더욱더 쉽고, 빨리 진행된다. 오늘도 홍대앞을 비롯한 매력적인 공간은 맥락이 제거된 채로, 전국 어딜 가든, 세계 어딜 가든 똑같은 지역으로 변모 중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 흐름을 천천히 늦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채림 <사막의 우물 두리반>

 

[심시티:서울] 시리즈

① 홍대앞, 떠도는 기억들

② 서울 시티, 최적의 개발환경

③ “몫 없는 자들”의 반격

(디럭스ver.) 대학생, 상가재건축분쟁에 ‘이제는’ 나서야 하는 이유

글. 릴리슈슈(kan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