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반, 용산참사를 함구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치한 시청역 대한문 앞에 고속버스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다. 버스 앞유리창에는 ‘모란공원, 10시 30분’이라고 적힌 작은 종이가 붙어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이기로 한 버스다. “이를 어째, 자리가 없는데” 버스는 만석이었다.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었다. 원래 신청했던 인원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자리가 없다고 난감해 하면서도 빙그레 웃으며 “함께 가자”고 했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연락하던 끝에 ‘봉고차’ 한 대를 마련했다. 그렇게 50명이 넘는 사람들은 용산참사에서 희생된 이들이 잠든 곳,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함께 울고, 주저앉을 때 그 곁을 지키는 이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란공원 묘역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5명의 잠든 이들을 위한 제사음식이 차려졌다. 고인의 영정사진이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안쓰러운 마음에 묘에 쌓여있는 눈을 털어주는 이도 있었다.


추모제가 끝나갈 무렵, 검은 옷을 입은 희생자의 부인 중 한 명이 울음을 터트렸다. “어쩌자고…막내 사위랑!” 추모제를 촬영하던 카메라들이 일순간에 그녀를 비추기 위해 몰려들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도 카메라 셔터 소리에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런 그녀를 와락 안아선 것은 다름 아닌 함께 싸웠던 사람들이었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그들의 품에서 그제야 입을 열었다. “친정엄마가 방금 돌아가셨대. 원래 많이 아프셨어. 오늘, 내일 하셨거든. 내가 엄마한테 부탁했어. 오늘 남편 기일인데, 오늘 엄마마저 그렇게 되면 난 어떻게 하느냐고. 하루만 더 버텨달라니까…” 주변에서 그녀를 다독이던 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아이고 어떻게 하면 좋아” 서 있을 힘을 잃은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은 그녀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자고…


벌써 6년째다. 이명박 정부 이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철거민의 망루 투쟁이 왜 ‘테러’로 규정됐는지, 그토록 무자비한 진압을 한 이유는 무엇인지 심지어 철거의 긴박함과는 다르게 재건축이 몇 년째 시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용산참사를 잊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용산참사가 주는 교훈을 매년 되새겼다. 자본을 최우선하는 사회가 되는 것을 경계하자고 목소리 높였다. 사람보다 자본이 우선인 사회에서 누구든 자본의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갖자고 했다. ‘기억’하자고 했다.


추모제가 모두 끝나고 식당으로 향했다. 50여 명으로 출발한 추모 인원은 어느새 70명이 넘어섰다. 커다란 식당 한 층이 모두 찼다. 용산참사가 철거민을 향한 국가폭력 사건이니만큼 철거민,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단체들도 함께 했다. 6년째 보는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국밥을 함께 했다. 유가족이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어서면서 박스도 함께 들고 왔다. 아까 묘역에서 차렸던 제사음식이었다. 일회용 그릇에 분주히 나눠 담곤 테이블마다 “이것 좀 드세요”하고 돌렸다. 모란공원의 추위에 차가워진 음식이지만 사람들은 ‘맛이 좋다’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유독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중년 남성에게 유가족들이 인사를 하러 왔다가 가길 반복했다. 그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는 사제였다. 용역들이, 경찰들이 유가족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사제로서 그들의 곁에 섰다. 거리에서 추우나 더우나 유족들과 함께했다. 경찰들로부터 바짓단을 잡힌 채 질질 끌려나가는 수모도 여러 번 겪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움을 함께한 신부는 용산 유가족에게 ‘가족’과 같은 사람이었다. “친정어머니 돌아가셨다는데 화환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신부는 추모제에서 울음을 터트린 희생자의 부인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한참을 화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화환을 주문한다고 했다.


신부가 나간 후 곁에 남아있던 천주교 빈곤사무회 사람들은 빙그레 웃으며 국밥을 먹었다. 거리에서 험한 일을 많이 겪은 신부를 걱정하는 마음이 나오기도 했다. “신부님이 오죽 힘드시면 어느 날 그러시더라고요. ‘나를 위해 기도해줘’라고”

용산참사 6주기 추모제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다시 시청역 광장으로 돌아왔다. 시청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광장에서는 철거민을 위한 투쟁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웅장한 음악과 철거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광화문으로 향하는 곳에는 노란 리본이 보였다. 침몰한 진실을 규명하고자,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함께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에 진실이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용산참사는 2009년에 멈춘 채 진행 중이다.

[용산2015] 시리즈

① 다시 찾은 용산 :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② 용산참사 추모제 스케치 :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