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짓고. 매일 변하는 서울은 사뭇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를 연상시킵니다. [심시티:서울]은 모든 건물이 수치화되고 오로지 건물주의 시점에서 개발되는 대한민국, 서울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심시티:서울(디럭스 ver.)]은 델마르 사건에 참여한 권순민(2014’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집행부) 씨가 보내온 편지를 전합니다. 

 

 

대학생이 왜 상가재건축분쟁에 나서야 하는지에 의문을 갖고 계신 당신에게

2014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여러 가지 ‘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습니다. 저 역시도 그 일원으로서 바쁘고도 뜻깊은 한 해를 보냈는데요. 많은 사업 중에서도 ‘안암 상가재건축분쟁’ 연대사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언론에 대서특필된 사건도, 대단한 성과를 낸 사업도 아니지만, 저는 지난 한 해 동안 했던 가장 뜻깊은 일로 이 사업을 뽑고 싶습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는 2014년 10월 ‘안암동 상가재건축분쟁’에서 학생들이 상인들의 편에 서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안암역 인근에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 17개를 게시했다.

(위)‘안암 상가재건축분쟁’ 연대사업 현수막 사진 ⓒ 구메

 

상가재건축분쟁이란 무엇인가

 

상가 재건축 분쟁은 세입자가 자신을 부당하게, 그러나 합법적으로 쫓아내려는 건물주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밥집, 카페, 술집처럼 우리가 ‘가게’라고 부르는 것을 법에서는 ‘상가(商街)’라고 부릅니다. 상가를 여는 데는 많은 노력과 함께 막대한 초기비용이 들어갑니다. 이전에 그 자리에서 영업하던 사람에게 주는 권리금도, 각종 인테리어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상가의 임대차 계약을 보호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상임법)’은  최소 5년만큼은 영업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최소 5년의 영업기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섣불리 장사를 시작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이 경우 세입자가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이를 보장받지 못하는데, 그중 하나가 ‘건물주가 재건축을 통보할 때’입니다. 현행법에서는 상가건물의 기본적인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되 최소 5년간은 이 계약이 계속 연장될 수 있게 보장하는 방식으로 세입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계약을 할 때건(이때 재건축을 통보한다면 99%의 세입자는 계약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세입자가 1년을 영업한 뒤 재계약을 요구할 때건, 건물주가 건물을 재건할 것이라는 통보를 한다면, 세입자는 5년의 계약기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안암동에 있던 카페 콩진호는 영업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건물주로부터 “재건축을 할 테니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최초로 1년 계약을 한 뒤 다음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건물주가 재건축을 통보했기에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정식 영업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쫓겨날 신세가 된 것입니다(위에서 말한 개정된 법이 아닌, 이전 법의 적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법에 따르면 건물주가 재건축 통보를 하면 세입자는 기존의 계약기간만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콩진호는 ‘부당하게, 그러나 합법적으로’ 쫓아내려는 건물주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고, 안암 상가재건축분쟁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업장으로 회자됐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네가 말한 이게 대체 대학생과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사업을 진행할 당시 고려대학교 커뮤니티 ‘고파스’에서는 이런 반응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회가 학교 내의 일이나 잘하지 왜 이런 걸 하고 나서는 건가요?”

“저 가게 사장님들한테 돈을 좀 받은 게 아니고서야 학생회가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오늘 제가 글을 쓴 이유도 바로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학생이 상가재건축분쟁에 ‘이제는’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크게 세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추억이 사라진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인데 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은 대학생의 의무다 등 가장 중요할 수도 있을 이유지만, 쉽게 예상 가능한 이유는 과감히 생략하겠습니다)

 

 

늘어나는 재건축, 오르는 학교앞 물가

 

첫 번째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상가재건축분쟁을 통해 재건축되는 건물이 대학가에 늘어날 경우 학교 주변의 물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스스로 ‘건물주’라는 가정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건물을 재건축하여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 했습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세입자들 때문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간의 상가임대차분쟁을 겪게 됐지만, 변호사를 쓰고, 법의 도움도 받아가며 드디어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동안 은행의 대출이자도 차곡차곡 쌓였고, 채권자들의 독촉도 받았지만, 이제는 이전보다 더 넓고, 높은 그리고 새로운 감각으로 지은 상가를 갖게 되었죠. 

당신은 이 건물을 분양할 때 당연히 기존 월세와 보증금보다 높은 금액을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들어간 돈도 많고 건물도 더 좋아졌으니까요. 새롭게 입주하려는 사람들도 새로 지었고, 권리금도 없는 이 건물에 기존 월세와 보증금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서라도 입주하려고 들것입니다. 

 

상가 재건축, 특히 기존의 세입자를 무리하게 몰아내고 이뤄지는 재건축은 이런 과정을 통해  가게 임대료를 높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 서비스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대학생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지역상권과 단편적인 관계를 넘어서

 

정치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상가재건축분쟁에 대학생이 나서는 것은 현재 대학생과 지역상권의 관계 재건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생과 지역 상권과의 관계는 매우 단편적입니다. 학원가나 회사 밀집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관계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당연한, 또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관계일까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캠퍼스’는 ‘교정(校庭)’과 같은 의미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공부하는 대학의 건물과 땅이라는 단순한 의미죠. 하지만 이 단어엔 지역사회와 대학의 연계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들판을 뜻하는 라틴어 ‘CAMPUS’에서 유래한 ‘캠퍼스’라는 말은 미국에서 남북전쟁 이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전까지 대학은 대학을 뜻하는 ‘university’가 연합체를 뜻하는 라틴어 ‘UNIVERISITAS’에서 온 것처럼 학생과 교수의 연합체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1862년 미국에서 제정된 ‘모릴 법’을 통해 대학이 주정부의 토지를 무상으로 빌릴 수 있게 되었고, 그 토지를 ‘campus’로 부르게 됐습니다. 그 땅 위에 교수와 학생을 위한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캠퍼스 개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개념과 역사를 한국의 대학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의 캠퍼스는 그 기원부터 지역사회와는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지역사회로부터 토지를 받는 대신 그 지역의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캠퍼스가 등장하게 된 배경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대학과 지역 상권은 결코 떨어져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역 상권도 대학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대학생들도 만약 학교 인근에 상권이 없다면 크나큰 불편을 겪을 것입니다. 

 

대학생이 상가재건축분쟁에 나서는 것은 대학생과 지역상권의 관계를 재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집단과 다른 집단이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해관계나 명분이 일치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인과 대학생이 각자의 이해관계나 명분을 일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거의 유일한 방법은 대학생이 상가재건축분쟁 문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입니다. 월세-물가가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상인과 대학생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뿐만 아니라 ‘불의에 저항한다’는 명분 역시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재건된 관계는 다시 소비자와 판매자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연쇄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지역상인의 입장에서 대학생들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내가 어려울 때 나를 위해 나서준 소비자이자 ‘이웃’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추후 대학생들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많은 대학들이 기숙사 신축을 둘러싸고 임대업자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데, 원룸업자들과 달리 지역상인들은 기숙사 신축을 내심 반긴다고 합니다. 연대사업을 진행하며 만난 여러 상인들께서는 “기숙사 신축에 반대한다고 나선 상인들은 거의 다 원룸업자들”이라며, 자신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은 기숙사가 신축되면 훨씬 더 장사가 잘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숙사 신축을 통해 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이 원룸 입주 등에 비해 줄어들면 학생들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고, 기숙사 입주생이 많아지면 지역 상권에 상주하는 인구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학생과 지역상권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긴밀하게 조성되어 있었다면 기숙사 신축 반대 시위를 벌이는 원룸업자 맞은편에서 시위를 벌이는 지역 상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정치성 회복은 일상에서 부터

또 다른 정치적 이유는 대학생의 정치성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대학생이 정치성을 상실했다”는 말이 정치성을 상실한 상투적인 말이 되었을 정도로 대학생은 정치성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정치성의 상실이 뭐 어떠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의 삶에 밀접한 취직, 주거, 등록금 문제는 모두 ‘정치’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대학생이 계속해서 정치성을 상실해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성, 운동성의 재건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국정원 선거개입이나 통진당 해산처럼 입장이 첨예하고 갈리고(개인적으로는 입장이 갈린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하게 여겨지긴 합니다) 일상의 영역과는 거리가 먼 여의도 정치 의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부터 가능할까요? 아닙니다. 그런 행동들 역시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고, 매우 중요하지만 정치성 회복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오히려, 대학생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만 만듭니다.

우리는 여의도에 다가가기 위해서라도, 대학 근처 지역 사회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정치성의 회복은 ‘일상에서의 정치’를 통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던 밥집, 카페, 빵집이 부당한 이유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학생들은 정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더 보수화되어가고 탈정치화되어가는 대학사회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여의도에 다가가기는커녕 대학 인근 지역에서도 물러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비극적이게도 인근의 상가재건축분쟁에 연대하는 것이 대학생 운동의 마지노선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러한 사건에 대학생이 나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도 물러난다면 대학생의 정치성은 정말로 ‘멸종’되고 말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을 쭉 읽으신 뒤의 소감은 어떠십니까. 이제 대학생이 상가재건축분쟁에 연대해야 하는 이유에 조금 공감하실 수 있나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과연 대학생들이 나선다고 건물주들이 꼼짝이나 할까?”

 

네. 경험을 해보니 ‘꼼짝’은 했습니다. 안암 상가재건축분쟁에서 제대로 된 협상에 나서지 않던 건물주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으로 안암역 일대가 뒤덮이자 고수하던 합의 조건보다 상향된 액수가 적힌 합의안에 동의했습니다. 비록 만족할 수는 없는 결과이긴 하지만(상인들은 “5년의 영업기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학생들이 나서기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대학에서 이와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시작에 이 글이 아주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집행부 권순민 드림

[심시티:서울] 시리즈

① 홍대앞, 떠도는 기억들

② 서울 시티, 최적의 개발환경

③ “몫 없는 자들”의 반격

(디럭스ver.) 대학생, 상가재건축분쟁에 ‘이제는’ 나서야 하는 이유

글. 권순민(presbyteriu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