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창 밖에서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 속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설익은 르포]는 당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혹은 잊고 지낸 세계를 당신의 눈앞에 끄집어낸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자.  

 

경복궁 서쪽 돌담길에 80여 년의 세월을 품은 여관이 있다. 아니, 이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보안여관’이 있다. 보안여관은 1930년대부터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운영됐지만, 계속되는 적자로 문을 닫은 곳이다. 이후 낡은 여관 건물은 문화그룹 메타로그 최성우 대표에게 넘어갔다. 그는 건물을 허물고 다채로운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건물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여관을 수리하기 위해 천장을 뜯었을 때 풀썩 떨어진 80여 년 묵은 먼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80여 년의 세월이 가진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면서, 여관에 다시 숨결을 불어 넣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보안여관은 외양을 유지하는 동시에, 오래된 시설물들을 보수하면서 건물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즉 공간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옛 모습을 그대로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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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 입구

 

2007년부터 복원된 공간 안에는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객실에는 투숙객이 아닌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한 갤러리와 소소한 카페들이 밀집된 서촌에 들린 이들은 으레 보안여관에 들어섰다. 벽돌이 앙상하게 드러난 벽, 그 벽에 언제 박혔는지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못, 그리고 지붕을 지탱하는 철골구조가 온전히 보이는 천장, 바닥에 대충 깔려져 있는 장판까지. 여느 갤러리처럼 깔끔하고 세련되게 방문객을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보안여관에 입장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야”라고 묻는 듯한 어리둥절함이 풍겨졌다. 외관과 간판도 일반 여관과 다를 바가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쉽게도 그 호기심은 금방 지루함에게 자리를 내주었는지, 몇몇 방문객들은 전시된 작품들과 사진을 몇 번 찍고는 10분도 안 돼 나가기도 했다.

 

쉽게 발걸음을 돌렸던 방문객들은 알았을까. 그들의 눈에 담긴 여관 내부가 1930년대의 모습 그 자체이며, 지난 80여 년의 세월 동안 그곳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말이다. 보안여관은 청와대 앞길에 위치하여 문화재청과 청와대 공무원들이 자주 찾는 기숙사 같은 곳이었고, 그보다 더 앞선 시간부터 문인의 동네였던 서촌에서 수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의 쉼터였다.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의 작품에 등장한 ‘막다른 골목’이 묘사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고, 시인 서정주가 장기 하숙하면서 ‘시인 부락’이라는 문학동인지를 탄생시킨 곳도, 이중섭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다른 예술인들과 교류한 곳도 이곳이다. 이외에도 보안여관에서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장기 투숙하며 신춘문예를 준비했으며, 윤동주, 함형수,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의 문인들이 보안여관을 스쳐갔다. 예술가들로 방이 가득 찼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뜨내기손님을 받던 일반여관의 시기도 거친 보안여관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쇠락했다. 아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흔적도 그곳에 서려있을 것이다.

 

과거에 그들이 밥을 먹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인생을 논하고, 누워서 잠을 잤던 공간은 그 모습을 변함없이 간직한 채 존재하고 있었다. 옛 종로 경찰서에서 나눠준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서도 안 됩니다”라는 효력을 잃은 푯말, 방문마다 붙어있는 방 번호, 그때는 가장 최신의 것이었을 촌스러운 꽃이 그려진 분홍벽지, TV에서나 볼법한 불을 켜는 옛날식 스위치 등. 켜켜이 쌓인 먼지만큼 느낄 수 있는 80여 년의 흔적들 위에 서있자니, 그 기분이 참 묘해 우두커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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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매니페스토 2014’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보안여관 내부

 

마침 그날 보안여관에서는 서울의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제안을 담은 ‘어반 매니페스토 2024’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생각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도시 선언이 영상, 이미지, 텍스트 형태로 여관 전체를 가득 매웠다. 영상에서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서울의 미래를 어루만지는 고민이었고, 그것이 80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상징적 공간 안에서 채워지고 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상호 연결된 집합체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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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느 시점에 붙였을 푯말과 방번호

 

보안여관처럼 오랜 건물을 보존하여 새로운 용도로 사용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을 훼손하지 않은 채 옛것과 맞닿아 있는 현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공간재생’이라는 개념으로도 불리는 개발의 한 형태다. 공간을 재생한다는 것은 급격하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대항하는 일이다. 시간을 멈춘 채 사회의 기억을 저장하며, 매일 변화하고 사라지는 도시를 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시 재개발이 짧은 주기로 반복되고, 역사적인 장소와 일상적 삶의 터전이 쉽게 파괴되는 도시일수록 공간재생의 가치는 두드러진다. 10년 전의 황무지에 높은 빌딩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른 서울 안에서 보안여관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경험하지 못 했던, 혹은 잊혀가는 과거를 느낄 수 있다. 80여 년의 세월이 머금은 무수히 많은 서사를 느끼고 싶은 자, 이번 주말에는 경복궁 서쪽 돌담길을 거닐며 보안여관에 들리는 것이 어떠한가?

 

 

글. 아호(9208kj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