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관.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Save the museum)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신진·청년 작가들을 위한 프로젝트 공간인 ‘청년관’을 요구하자는 연대체다. 미술계 언저리에서 청년관이라는 상징어를 내세워 미술관 제도 전반의 합리적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작년 연말부터 보였다.

 

청년관(靑年館)[명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신인∙청년 작가들을 위한 프로젝트 공간을 신설하는 것을 비롯해 미술관 제도 전반의 합리적 개선을 요구하는 상징어”

 

시작은 지난 12월 28일 대안전시공간 ‘교역소’에서 열린 ‘안녕2014, 2015년 안녕?’ 대담회부터였다. 2014년도 대안전시공간들의 작업을 회고하고 2015년을 전망하기 위한 자리였다.

 

a0011285_549d66de3cc56

 

기획, 비평 그룹 ‘유능사(최정윤+안대웅)’ 주최로 마련된 ‘안녕2014, 2015년 안녕?’는 교역소(김영수+정시우+황아람)를 비롯한 대안전시공간들

 케이크 갤러리(윤민화), 커먼센터(함영준), 반지하(돈선필+박현정), 시청각(현시원) 운영자들이 패널로 참석했다.

 

청년관을 위해 모인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청년관 의제가 나왔다. 좌담회 말미에 사회자인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가 ‘국립현대미술관의 개혁안을 마련하고 공표해 청년미술인들을 위한 변화를 촉구하자’고 제안한 것을 필두로 청년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014년 작업들을 되돌아봤을 때 세대교체는 확인됐지만 미술계 기성작가들과 제도는 여전히 그를 모르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나온 얘기였다.

 

논의는 활발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청년관 의제를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체를 만들거나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일종의 연대체 형태로 행동해보기로하고 자세한 논의는 트위터에서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확장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참가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트위터를 통해 의견을 활발하게 주고받았다.

 

‘안녕 2014, 2015안녕?’ 좌담회로부터 근 한 달 후. 사람들은 지난 1월 24일 토요일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의 ‘청년관을 둘러싼 문제들 : 기대감소 시대의 예술행동’ 강연을 듣기 위해 홍익대학교 조형관(E동) 103호에 모였다. 홍보기간은 일주일이 채 안 됐고, 홍보창구는 거의 SNS뿐이었지만 강연 장소는 꽉 찼다. 의자가 부족해 사람들은 계단에 앉거나 강의실 뒤편에 서 있었다. 청년관 의제가 온라인을 넘어 본격적인 공론장을 끌어들이기 위한 릴레이 강연의 첫번째 시간이었다. 주최 측은 특정한 단체가 아니었다. 여전히 청년관을 위한 정제된 조직은 없었다. 다만 청년관이라는 공동의 관심으로 모인 느슨한 연대체가 있었다.

 

 

 

150124_01  

 

세대교체 외면하는 ‘영원한 청년’ 386 작가들

 

강의는 “오늘 준비한 내용은 행동강령에 대한 것은 아니다. 도대체 왜,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관을 비롯한 개혁안을 요구해야 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상황에 대한 거다”라는 말로 시작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비롯한 개혁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지 불황이어서야 아니다. 현대 미술 자체가 역사적으로 큰 패러다임 변환을 맞이했고 지금은 청년 여러분이 왕년의 구세대가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청년은 진보가 되어 세대교체가 되는 순환구조가 완전히 깨져버린 세대다.”

 

강연은 총 네 파트로 진행됐다. 임근준 평론가는 그날 강의의 핵심인 청년관을 언급하기에 앞서 현재 현대미술계의 상황을 설명했다. 미술계가 팽창하리라는 기대가 아스러지는 ‘기대감소의 시대’라는 현황과 청년관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현대미술은 ‘세 차례의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재현회화의 죽음, 모더니즘의 종말에 이어, 포스트모더니즘도 끝났다고 평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미술계가 팽창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미술 대학, 미술관, 컬렉터들이 끊임없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 팽창의 구조는 2008년에 끝났다.”

 

그는 현대미술계가 난생처음으로 ‘기대감소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한국현대미술계는 이러한 변화를 인지 못한 채 퇴행의 징후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한국인 작가들이 이 새롭지 않게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R750x0

 

2014년 청년작가의 전시인 강정석 개인전 ‘베이포-X와 홈비디오’에서 새로운 시각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사미술공간

 

 

그는 2014년의 전시들을 언급하며 작년에 인적으로도, 방법론적으로도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고 평한다. 즉 한국현대미술계에 ‘세대교체’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현대미술계에서 세대교체는 인적으로도 방법론적으로도 이뤄졌다. 주요 인물들의 생년을 정리해보면 기획자들은 1970년대 후반생이고 작가들은 대개 1980년대생이다. 여태까지 주축세력이 1970년대 초·중반년대생에 몰려있었다가 갑자기 1980년대생으로 확 뛰어넘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지적하는 건 현실과 괴리된 미술계 기성세대다. “기성세대가 이러한 세대교체의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관 문제는 곧 미술관을 구해내는 문제(Save the Museum)

 

청년관 문제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이해다툼 문제 이상이다. 그는 청년관이 만들어져 작가들에게 실험적 신작 제작의 기획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현대미술관의 본질적 기능인 ‘예술 실험실’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술관은 너무 커져서 작가보다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미술관 건물 자체가 부각되고, 재원 마련을 위해 불러 모은 이사진에 따라 미술관 운영이 좌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늘날 미술관에서 신작을 전시해야 할 작가들은, 먼저 이사진을 제 편으로 만들고 관장과 학예실장을 구워삶은 다음, ‘뉴 프로덕션’ 기금을 추가로 유치하고, 신규 프로젝트를 전개하면서, 스스로 작품이 되기를 희망하는 미술관 건축과 맞서 싸워야 하는 전대미문의 난관에 부닥치게 됐다. 이는 젊은 작가가 도전할 수 있는 목표치에서 한참 벗어나는 것이다.

 

브랜드가 된 법인형 중장년 작가들이, 초대형 미술관에서 대형작업으로 세속적 성공을 누리는 사이, 방만한 대학 제도를 통해 과잉 공급된 20-30대 젊은 미술가들은, 골방과 각종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전전하며 불확실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암울할 뿐만 아니라 몹시 불길한 대조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미술관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다간 “어떠한 유의미한 실험도 일으키지 못하는” 문화적 사막으로 변질될 거라는 우려를 표했다. “문화적 사막화란 서울의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지역의 기존 상권 붕괴 이후 프랜차이즈 업종 유입, 그러니깐 카페베네가 들어오는 현상이다. 동시에 그로 인한 실험적 문화 예술 공간의 폐관과 변두리 이전, 그리고 비평적 관객층 실종으로 인한 미술관의 관광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2010년대 현재, 현대예술의 중심지를 자처했던 뉴욕, 파리, 베를린, 도쿄 어딜 가든, 비평적 관객은 사라지고 목적 상실의 문화 예술 비즈니스만 남은, 문화적 사막화의 광경이 따로 똑같이 펼쳐지고 있다.”

 

 

fa6703ffc18b470d8f2453c661c12612

 

강연자는 뉴욕 첼시 화랑가가 물에 빠진이후 완전히 침체됐다고 말했다. “문화적 사막화가 가장 심각한 곳은 완전히 맛이 간 뉴욕 첼시 화랑가에요. 

겉이 번드르르한 전시가 쉼 없이 이어지고 무의미한 리뷰가 ‘아트포럼’지에 실리길 반복하지만, 전시를 보고 의제를 만들어낼 청년 관객층은 사라지고 없어요”

홍수난 첼시 화랑가Linsay Howard(ArtJournal)

 
 

“청년들의 실험적 예술은 계속 변두리로 밀려나야 할까? 서울의 현대예술계엔 대략 2-3천명의 비평적 청년 관객층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영등포 ‘커먼센터’까지 힘들게 오시는 분이 딱 2천5백 명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서울의 현대예술계는 지금 기회를 놓치면, 곧 문화적 사막화가 진전돼 비평적 청년 관객층을 잃고 말 것이다. 일단 한 번 망가진 문화예술 생태계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인구통계 그래프를 독해해 봐도 1980년대생 예술가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문화예술계의 마지막 세대교체에 동참할 주역은 지금 대학교 다니는 1990년대 초중반생들까지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생 작가들이 전선을 잘 돌파해줘야, 1990년대 초중반생 작가들까지 잘 살아남을 수 있다. 80년대생들이 망하면 90년대생들은 나와 보지도 못하고 망한다. 1990년대 초중반 이후론 머릿수가 너무 적어서 대대적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청년예술인들에게 제안하는 해법은 총 두 가지였다. 청년예술인 연대체 명의로 국립현대미술관 신임관장 선출을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하도록 요구하는 것. 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들을 위한 프로젝트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요구할 것. 이외에 그는 “왜 청년은 언제고 심사 대상이 돼야 하는가?”라며 각종 심사 과정에서 심사 위원 구성에 30대 이하의 청년 심사위원을 포함시킬 것을 청년예술인들이 요구할 것을 제안했다.

 

임근준 평론가의 몰아붙이는 질의응답 시간 후에, 그의 나름의 당부로 강의가 끝났다. “내가 하는 답변은 의미 없다. 위기 상황과 인식에 대한 현황 파악, 드릴 수 있는 해법에 대한 제안은 다 했다. 이제 여러분들끼리 이합집산할 차례다. 다만 꼭 강조하고 싶은 건 그룹을 만들라는 거다. 개개인은 모자라 보여도 모이면 아이돌 효과, 락그룹 효과가 있어서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실체는 없어도 되니까 이름을 멋지게 만들어라. 플럭서스 그룹(FLUXUS Group; 1962년대에 결성된 예술가 그룹)처럼. 호명효과는 엄청나다. 그룹을 만들어 2017년 전까지 출사표를 던지고 2020년대 대혼란의 시대에 생존하시길 바란다.”

  

150124_04

 

라운드 테이블 중

 

 

강의 뒤엔 라운드 테이블이 마련됐다. 장소는 한시적인 대안공간 727NOW! 맞은편인 홍문관(R동) 724호였다. 라운드테이블은 그날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기소개와 더불어 청년관을 위한 의견을 조금씩 교환하는 자리었다. 강연이 있었던 24일 이후 청년관을 위한 회의가 25일과 27일에 있었다. 그 회의 역시 누구나 올 수 있는 개방적인 모임이었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상태로 진행 중이고, 매일매일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을 단 새로운 트윗도 올라오는 중이다.

 

123

 

1월 27일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 참가 신청 화면 캡쳐

 

 

※ 다음은 질의응답 시간에 나왔던 9개의 질문들 중 일부입니다

 

청중3 안녕2014, 2015안녕?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세대교체된 청년예술가의 주류로 여겨지고, 만약 청년관에서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들이 프로그램을 주도할 것처럼 보인다. 혹은 이들이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을 기획하고 주도할 것처럼 보인다. 이게 맞는 건가?

 

임근준 좌담회에 불러 모았던 분들은 2014년도에 두각을 나타냈던 분들은 모은 것뿐이다. 청년관 안에서의 예술적인 방법론이나 비전은, 기본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일종의 자율적인 판단유예의 공간을 향유할 수 있으면 그 안에서의 경쟁을 통해 추후에 해결할 문제다. 또한 그들이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에서도 앞장서서 행동을 하실지 말지는 잘 모르겠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활동방식에 대한 합의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건 기회와 장소를 얻어내는 거다. 그리고 이게 조직이 아닌 연대체의 형식으로, 누구나 들어와서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만들면 파벌과 밥그릇 싸움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주체나 이런 것들이 아예 형식적으로 규정되지 않았으면 한다.

 

청중4 국립현대미술관을 개력하는 주체는 파악하겠는데, 우리가 요청을 해야 하는 상대는 누구인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없는데, 미술관의 운영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부재한 상태가 아닌가?

 

임근준 ‘상대’는 당연히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관광부 산하에서 운영하고 있는 조직이니까 관장이 부재하더라도 당연히 주체가 존재한다. 게다가 관장이 부재할 때가 오히려 더 찬스다. 관장이 정해지면 오히려 개혁을 요청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지금 관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연대체의 이름으로 관장은 누가 되야 할지, 미술관의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개혁을 요구해보는 거다. 솔직히 관장 선정의 경우, 우리가 의견을 모아 지목한 사람이 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관장 선임 과정을 공개하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 관장에게 서울관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런 요구를 하기에는 관장이 선임되기 이전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청중5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이 성공하면 아름답겠지만 어려운 점들이 더 많이 보인다. 제안한 서명을 통한 연대가 효과가 있을까?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까? 만약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이 실패할 경우는 어떻게 조망하고 있나.

 

임근준 서명은 만 명 정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 사람들 서명 받아서 청원서를 올리는 건 분명히 압력효과가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단체들은 민원에 대단히 약하다. 여러분이 한 번도 민원 제기를 안 해봐서 모르는 거다. 구청에만 가도 고작 세 명이 가서 단체의 이름을 걸고 따지면 공무원들은 움직인다. 그러니까 개인 단위로 움직이지 말고 그룹 단위로 활동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형식이다.

 

실패하면 어떡하나? 그래도 괜찮다. 청년예술계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성 미술계에 알려질 거고, 기성세대들은 청년세대의 눈치를 볼 거다. 심사위원이나 그룹전에 청년쿼터를 고려할 거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당장 움직여야 한다. 생각보다 상황이 굉장히 안 좋다.한국현대미술계가 완전히 파탄날 수 있는 상황이다.

 

기회는 2015-17년이다. 새로운 창작방법은 1997-98년 이후에 처음 보는 거다.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게 주류 미술계가 아니다. 교역소, 시청각, 커먼센터 등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가난뱅이 공간들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버틸 것 같나? 오년 버티면 다행인데, 오년 뒤에는 더 좋은 세상이 오느냐? 아니다. 대선때 문화예술 의제가 묻히고, 올림픽 개최로 동아시아 경제가 거덜나기 전에. 미술계 쪽으로는 아시아를 통괄하는 첫번째 아시안 뮤지엄이 개관하고, 아시아 현대미술의 장이 만들어지기 전에. 한국 현대 미술계를 지탱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이 고갈되기 전에 일을 벌려야한다.

 

2015-17년 사이에 출사표를 던져야하는데 경제가 나빠질 게 확실한 2020년대에 대불황의 시대에 생존할 수 있는데, 현재는 젊은이들이 자연적으로 주류미술계에 편입되는 구조가 정상작동 하지 않는다. 인위적인 보정을 가하지 않으면 절대로 여러분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거다. 지금 당장 움직여서 뭔가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한국 현대 미술계는 동면이다. 이미 일본은 젊은 미술가들은 완전 멸종해서 사라졌다. 무라카미 다카시, Mr.를 마지막으로 다음 세대 작가는 완전히 사라졌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패턴은 똑같다. 일본에도 서바이벌을 위한 아트 운동이라고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 같은 사례가 있었다. 그렇지만 다들 서바이벌에 실패했다.

 

청중7 미술계의 진출할 기회도, 따라서 부패할 기회가 없었던 이러한 1970년대 후반 출생자들 이러한 에너지의 집결이 기회와 장소를 만드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새로운 변화와 약진의 근거지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부인 청년관을 호출하는 것이 최선인가? 세대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면 그 연대의 방향성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청년관이어야 할까.

 

임근준 다른데 가서도 놀아도 된다. 그런데 우리가 목소리를 내기에 가장 편안한 곳은 국민 세금으로 돌아가는 공간이고, 그 중에서 가장 넓고 프로그램이 가장 미완성인 공간이 서울관이다. 지금의 서울관은 운영 프로그램이 없어 텅텅 있다. 그 비어있는 젊은이들이 콘텐츠로 치고 들어가는 것은 전략적으로 꽤 유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서울관이 되게 넓다. 거기에 들어가서 놀 수 있는데, 왜 멀쩡한 대로를 두고, 뒷골목으로 다녀야되나. 젊은 예술가들에겐 대안공간도, 비엔날레도 없다. 문예예술기금이 2년 뒤면 고갈될거니 기금도 없다. 나라 경제가 힘들어지는데 나라가 그 기금을 채워줄 거 같진않다. 마지막 기회다. 내가 볼 땐 서울관이 노아의 방주다.

 
※ 강의안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