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도 청년과 20대들에 대한 담론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청년연구소는 2월 한 달 동안 해외 청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공부합시다!

 

니트(NEET)는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영문 철자의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교육 받지도 않고 취업하지도 않으며, 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이”를 지칭한다. 청년문제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뉴스를 꼬박 꼬박 챙겨 보지 않더라도 ‘니트족’은 한 번 쯤 들어봤을법한 단어다. 우리에게 니트족은 더 이상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니트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번 청년연구소는 일본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한국이 2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일본이 겪은 위기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은 일본이 미리 겪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청년연구소는 2부에 걸쳐 일본 청년노동의 모습을 살펴본다. 오늘 1부에서는 김기헌의 글 ‘일본 청년니트의 현황과 과제‘와 아마미야 가린의 책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을 통해 니트족을 둘러싼 일본 청년 노동의 현실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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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문고

 

니트 이전의 골칫거리, 1990년대의 ‘프리터’

 

‘프리터’는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후 두 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1990년대 후반, 일본은 부동산 버블 붕괴로 경기 침체기에 접어든다. 그러면서 프리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리터가 처음 등장한 1990년대만 해도, 프리터는 사회문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직업생활을 영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겨졌다. 특히 음악, 미술 등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내가 프리터였던 1994년부터 1999년 정도까지는 프리터의 이미지가 지금만큼 나쁘지 않았다. 그 때는 회사에 매여 매일 만원 전차에 오르고,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날을 보내다가 일생을 마치는 ‘샐러리맨’의 삶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 때 ‘프리터’라는 것이 주목받았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지받았다. 당시 프리터 대상 구인 정보지에는 “아침에 못 일어나겠다”, “만원 전차가 싫다”, “평일에 쉬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같이 프리터 생활을 옹호하는 듯한 문구가 여기저기에 씌어 있었다. 

– 야마미야 가린

 

하지만 프리터는 곧 골칫거리가 되었다. 처음엔 꿈을 안고 프리터 생활에 뛰어들지만, 집세와 생활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고, 한 마디 통보도 없이 당일에 해고되는 일도 예사였다. 프리터 역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만,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경우 “너 대신 일할 사람은 많아”라는 말과 함께 해고되기 일쑤다. 이런 상황의 반복으로 프리터는 ‘의욕저하와 무기력증을 호소하면서 아르바이트 생활로 겨우 생계만 이어나가는 젊은층’에게 붙여지는 형벌 같은 이름이 되었다.

 

프리터에서 니트로

 

2000년대 이후로 넘어오면서 프리터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다. 바로 니트족이다.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무언가 더 배우는 것도 아닌데 일도 하지 않는다니. 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취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던 일본의 전통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었을 것이다.

 

니트족이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지는 이유도 일본의 전통적 사고방식이 완전히 부정당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경기침체에 들어서기 이전엔 ‘1인 1사주의(1人1社主義)’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과 학교가 연계된 독특한 채용 관행으로 졸업 전에 직장이 내정되는 제도를 말한다. 1인 1사주의 덕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할 수 있었지만, 니트족이 큰 사회문제가 된 지금은 그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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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생노동성 노동경제백서의 분류를 따름

 

프리터는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있지만, 니트족은 아예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니트족을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만들기 충분했다. 프리터는 취업자에 속하고 일본 통계지표 상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지만, 니트족은 대부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니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니트족이 전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기도 하고, 일부는 경제활동인구에 속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청년 니트에 대한 공식적 통계치를 처음 제시한 보고서는 2004년 후생노동성의 ‘노동경제백서’이다. 후생노동성은 당시 청년 니트를 “비경제활동인구 중 연령이 15~34세이며 가사 및 통학을 하지 않는자”로 정의했다. 이 정의에 의하면 니트족은 전부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다. 한편 내각부의 정의를 기준으로 하면 청년 니트의 일부는 통계 상으로 경제활동인구다. 내각부는 청년 니트의 범주에 실업자를 포함하는데, 실업자는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일본 청년 니트, 그들은 정말 일하기가 싫은걸까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니트를 정의할 때 젊은층을 15~24세로 정의하지만, 일본이 정의하는 젊은층에는 30대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일본 청년들의 고학력화로 취업, 결혼 및 출산이 늦어지는 현실에서 30대의 사회경제적 연령이 사실상 20대와 큰 차이가 없는 일본 청년의 현실을 반영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또 다른 이유는 젊은층의 연령 정의를 프리터의 연령층과 같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니트와 프리터가 개념 상으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니트를 정의할 때 프리터의 연령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실업자를 니트에 포함하는 내각부의 정의에 따르면, 프리터와 니트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프리터는 끊임없이 취업과 실업의 상태를 반복한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터는 부분적으로 니트가 된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프리터는 20대 후반 즈음에 비자발적인 니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후에도 비슷한 곳에서 일했다. 그다음 가게는 할당량도 엄격했고,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잘리곤 했다. 오늘 지명되지 않으면 내일 출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나날. 게다가 24세가 된 나는 캬바쿠라(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주로 남성들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지명해서 술을 마시는 클럽) 세계에서는 퇴물, ‘최고령’으로 분류되었다. 그러자 ‘도모호른링클’(주름개선 화장품 브랜드) 따위의 이름을 얻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 야마미야 가린

 

김기헌의 논문은 위와 같은 가능성이 그저 가능성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일본 내각부가 2012년에 발간한 ‘자녀․청년 백서’에 따르면, 청년 니트는 점점 고령화되고 있다. 특히 연령집단 중 35~39세는 2000년 15만 명에서 2010년 21만 명으로 6만 명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5~39세의 연령은 프리터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연령에 속한다. 이는 프리터 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고령의 청년층 등 비자발적인 니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자발적인 니트의 존재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는 가정 형편에 관한 지표이다. 청년 니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잘 산다”고 응답한 비중은 14.2%, “보통”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46.4%였다. “못 산다”는 응답은 39.4%로 나타났다. 흔히 ‘니트’라고 하면 부유한 집에서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청년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잘 산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의 14.2%에 불과하다. 니트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미디어에 의해 만들엊니 편견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니트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고’ 있을 가능성이 드러난다.

 

일본 내각부 역시 비자발적인 니트가 증가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내각부의 자료에 따르면, 취업 자체를 희망하지 않는 ‘비희망형’보다 취업을 희망하지만 구직활동은 하지 않는 ‘비구직형’이 훨씬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논문은 “비자발적인 무업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로 청년 니트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