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쉽게 YES를 외치는 이는 몇 없을 것이다.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을 이야기하던 이들조차 “당신은 페미니스트냐”는 물음에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기 일쑤다.

페미니스트의 사전적 정의는 ‘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즉, 성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성평등주의자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말은 “나는 성에 따른 차별을 묵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사전적 정의와 다른, 부정적인 사회적 함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 착한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

 

최근 트위터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벌어졌다. 페미니즘을 경계하는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고자 시작된 선언이었다. 이와 관련해 배우 김의성 씨의 트윗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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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차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호소하던 그가 여성주의 문제에 관해서는 “페미니즘 선언으로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보수적인 성향의 남성은 물론 진보적인 남성의 대다수도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을 지배한 페니스(가부장제의 권력)에 도전한 페미니즘은 페니스들에 의한 반발과 ‘가격 후려치기(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워서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에 시달렸다. 후려치기 당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매도되었다. ‘드세고 사나운 여자’, ‘소리 꽥꽥 지르며 성가신 얘기를 하는 여자’ 등과 동일시된 현대 페미니스트들의 이미지는 일명 ‘꼴페미’로 수렴하기도 한다. 편견 가득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고백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이란 단어에서 쉽게 연상되는 공격적인, 드센, 소리나 꽥꽥 지르는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다. 설령 어떤 페미니스트가 공격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자기주장을 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떤가? 문제는 시끄럽다고, 듣기 싫다고 귀를 막은 채 무시하는 자세이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남성들이 말하는 ‘무뇌아적인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현재 그 실체를 찾기 힘들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수많은 이론과 주장이 존재한다. 그중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조차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던가, 남성들을 모두 짓밟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진 않는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비판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일 뿐이다. 페미니즘과 여성 우월주의는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여 페미니즘이 무뇌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뇌아적이라는 표현은 자체가 페미니즘을 매도하기 위해, 일부에 의해 설정된 개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무뇌아적 페미니즘은 역차별에 대한 논란과 맥락을 같이 한다. 군 가산점을 반대하거나, 남성의 자리에 여성이 올라가려 하는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여성가족부를 증오한다. 오히려 남성들이 역으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군 가산점 문제는 남녀로 나뉘어 대립할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문제로 이해해야 하며,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고루 들어보아야 한다. 여성가족부에서 논란이 일 때마다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환경부가 잘못한다고 환경운동이나 환경운동가를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가족부와 페미니즘은 동일시할 수 없다. 또한,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것은 성평등이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의 지배하에 차별받는 일이 생긴다면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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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왓슨 UN 연설 장면

 

결국,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이들이 바라본 페미니즘에는 진짜 페미니스트들의 소리가 없다. 그들의 시각에서 물어뜯기 좋게 설정된 가상의 적만 있을 뿐이다. 그녀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채 제 입맛에 따라 페미니즘을 ‘괜찮은 페미니즘’과 ‘무뇌아적인 페미니즘’으로 규정하고, 억지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굴레를 씌우는 것은 거슬리는 페미니스트들의 입을 막고 페니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그 저변에는 거세공포(여성들이 내 성기-가부장 권위의 상징-를 물어뜯을 것이라는 공포), 즉 두려움이 있다.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페미니즘을 마주 보기
 

김 군과 IS 사태에서 비롯된 페미니즘 논쟁은 우리나라 여성문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 군이 남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에 간다”는 메시지를 두고, 현대의 페미니즘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문제는 극성스러운 페미니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성스러운 안티 페미니즘에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로 테러조직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안티 페미니즘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았는지 보여준다. 이에 대해 페미니즘에 화살을 돌리는 모습은 한숨이 나온다. 성평등의 걸림돌은 일베와 같은 극우 안티 페미니즘 세력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척하며 은근히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일반 남성들을 포함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에 대한 혐오가 아니다. 남성의 밥그릇을 빼앗으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남성을 공격하고 끌어내리려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주체로서의 남성성에 저항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것은 이를 여성만을 위한 것이나 남성혐오주의로 받아들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페미니즘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이 여자와 남자의 대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페미니즘은 생각보다 어렵거나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꺼려지는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많으니 너무 위축될 필요 없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하며, 성(性)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것에 반대한다.”

위 문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페미니스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