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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영화는 소년, 소녀들을 구원할까?

‘갓 헬프 더 걸(God Help The Girl, 2014)’은 ‘찬란한 여름’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이브, 제임스, 캐시. 세 명의 친구들은 여름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밴드 ‘갓 헬프 더 걸’을 결성한다. 영화의 각본과 감독은 밴드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의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이 맡았다. 영화와 밴드는 어느 정도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벨 앤 세바스찬 역시 글래스고에서 우연히 결성됐다. 밴드는 뮤직비즈니스 수업 팀플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영화 속 밴드 ‘갓 헬프 더 걸’ 역시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결성된다. 

 

 

“우리가 밴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밴드가 우리를 만드는 거야” 

– 제임스

하지만 이런 배경지식 몰라도 상관없다. 이는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가 표를 끊고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일단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다. 배급사가 내세운 “빈티지 주크박스 필름”이라는 카피처럼 영화에선 ‘레트로’가 뿜어져 나온다. 레트로풍은 주인공의 옷도, 음악도, 시대를 특정하진 않지만 익숙함과 편안함을 공유하며 러닝타임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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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러티브의 안락함은 청춘영화의 문법을 정직하게 지키면서 충족한다. 제작을 맡은 배리 멘델(Barry Mendel)은 영화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다. 짧은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달은 후이자, 꿈이 밥벌이가 되기 전 열정으로 가득했을,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가능성이 무한했을, 그 짧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단순한 청춘영화다. 

 

※주의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맨 아래부터 이브, 캐시, 제임스 ⓒ갓 헬프 더 걸

 

 

성실한 청춘영화

영화는 이브의 성장을 중심축 삼아 진행된다. 성장과정을 풀어내는 과정은 청춘영화가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청춘영화는 ‘성장’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성장’이란 어쩌다 태어난 세상에서, 어쩌다 받게 된 ‘나’라는 정체성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는 ‘찾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는 대상이다. 내 안에 다양한 나의 정체성, 또 다른 나를 알아간다. ‘성장’이란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며 삶을 살아가는 법을, 그리고 나의 혼란스런 자아들(정체성)과 공존하면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청춘영화는 결말에 ‘성장’을 두고 이야기의 흐름을 그에 맞춘다. 청춘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건’을 통해 성장에 도달한다. 물론 그것이 생존법에 대한 100%의 깨달음일 수는 없지만, 주인공은 자기 삶을 바꿀 일 말 이상의 깨달음을 얻고 자아가 충만해진(해질 것 같은) 상태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 ‘어떤 사건’들은 대개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낯선 사람과의 조우, 그리고 그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성장의 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문법을 성실하게 따라간다. 주인공과 이브는 글래스고 여성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다. 세상과 그녀를 가로막는 것은 병적으로 음식을 거부하는 또 다른 그녀 자신이다. 싸우는 부모,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병원의 도움 없이는 그녀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살아갈 수 없다. 병실 안 그녀의 유일한 숨구멍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음악)와 책(글)이다. 이브는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 일기와 가사를 적을 때만 자기 자신을 조절해서 가까스로 생존하는 법을 안다.

ⓒ갓 헬프 더 걸 프로젝트 홈페이지(http://www.godhelpthegirl.com/) 

청춘영화 ‘갓 헬프 더 걸’의 성장과정은 욕구 단계 이론에 따라 진행된다. 의사는 ‘아래단계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윗단계 욕구를 성취할 수 없다’라고 설명한다. 이 이론을 설명하는 의사는 이브에게 “위에서부터 시작하려하면, 도움을 안 받으려하면 피라미드가 망가져”라고 말한다. 의사의 조언은 이브를 성장시키는 지침이 된다. 그대로 이브는 순차적으로 먹고, 관계 맺고, 음악 한다. 음식을 조금씩 챙겨먹을 수 있게 되면서 이브는 세상 밖으로 나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브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어떤 사건’은 친구인 제임스와 캐시를 만나면서 발생한다. 셋은 밴드를 만든다. “히트곡을 제조하는 데엔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제임스의 말처럼, 음악의 신은 이브를 리더로 하는 밴드 ‘갓 헬프 더 걸’을 따라다닌다. 밴드는 여름에 결성되어서 그해 여름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작은 콘서트도 연다. 

마지막 콘서트 장면에 삽입되는 ‘A Down and Dusky Blonde’

 

영화는 이브의 성장으로 끝난다. 그녀는 더 큰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글래스고를 떠나 런던에 있는 음악학교에 진학한다. 자신의 식사조차 조절하지 못했던 이브는 “운명이 내 손 안에 있는 기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자신의 앞날까지 결정할 수 있는 소녀로 성장한 것이다. 

 

그저 신나는 쥬크박스

갓 헬프 더 걸의 성장 서사엔 성장, 첫사랑, 첫경험까지. 청춘영화라고 불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들어가있다. 또한 청춘영화인 동시에 뮤지컬 영화인만큼 노래와 퍼포먼스를 삽입해놨다. 이는 중간 중간 배치되어 뻔한 이야기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재미를 담당한다. 청춘영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청춘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성장도, 연애도, 음악도, 우정도. 모두 담으려다 보니 뮤지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서사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또한 주인공 이브의 내면을 엿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영화는 청춘영화의 문법, 뮤지컬 영화의 문법을 맞추는 데 정신이 없다.

 

청춘영화는 소년, 소녀들을 구원할까?

 

스튜어트 머독이 만든 듣기 좋은 사운드트랙을 제외하곤 별 여운이 없을 뻔했던 영화는 러닝타임 이후에도 나름의 의미를 남기는 영화로 만들어 줄 장면을 아주 살짝 배치해놨다. 정말 예쁘고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영화로서의 역할을 끝낸 마지막 장면에서다. 제임스는 런던으로 떠나는 이브를 데려다준다. 화면은 세피아 톤으로 변하고 제임스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제임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음악을 하나도 모르는 캐시가 밴드를 할 수 있었던, 꿈은 있었지만 냉소적이었던 제임스가 곡을 만들 수 있었던, 병실에만 있던 이브가 드디어 세상 밖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가능성이 끝이 없었던” ‘찬란한 여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여기에 제임스는 아름다운 청춘영화를 보고 다시 영화관 밖으로 나가 현실과 마주하는 관객들을 대변한다. 이브는 새로운 세계, 런던으로 떠나고 제임스는 줄곧 있던 세계, 글래스고에 남는다. 제임스는 글래스고에 남아 같은 생활을 반복하리라는 암시가 퍼진다. 그는 계속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한다. 제임스의 모습이 마치 관객들 같다. 청춘영화의 성장 서사의 주인공은 성장과정에 있는 관객들이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이다.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 속 인물은 자라나고 결국 성장하지만, 우리는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우리는 왜 청춘영화를 볼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청춘영화가 방황하는 소년, 소녀들을 성장시켜줬듯이, 우리도 이를 보고 성장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러한 의문만 던져주고 답을 구하는 아무런 메시지도 전해주지 않는다. 8mm 카메라로 찍은 듯한 예쁜 이브의 영상만 보여준다. 그렇게 ‘갓 헬프 더 걸’은 끝까지 초장편의 예쁜 뮤직비디오가 되길 자청한다. 

 

8mm 카메라로 찍은 듯한 엔딩컷의 이브 ⓒ갓 헬프 더 걸 스틸컷

한줄요약/ 

111분짜리 (청춘영화 아닌) 뮤직비디오  

릴리슈슈
릴리슈슈

릴리슈슈는 이와이 슌지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 따왔습니다. 에테르가 풍기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이팀 저팀 돌아다니고만 있습니다. 아 그리고 여러분 국카스텐 들으세요.

1 Comment
  1. Avatar
    달다래GGM

    2015년 3월 12일 12:25

    처음보는 영화인데 영화가 재밌어보이네요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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