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불문하고 인터넷이 되는 곳이라면 ‘뮤지컬 프레스콜’을 검색하는 것이 일과 중 하나다. 취향저격 당한 뮤지컬을 발견하면 같은 장면을 다른 매체 동영상들을 찾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조건반사가 됐다. 무대 위 모든 것에 대한 설렘이 마음 속을 가득 채운다. 전문가처럼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진 않다. 하지만 배우, 음악을 사랑한다고 단언할 순 있다. 자, 뮤덕입문자의 ‘덕질’을 시작하련다.  


※[뮤덕일기]의 모든 작품은 필자의 순수한 ‘덕후’ 마음으로 다녀왔다. 지극히 필자의 취향인 작품들만 다룬다. 


설렘에 보답하는 생생한 여운의 맛  


ⓒ뉴스컬쳐


무대의 생생함은 언제나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빠른 박자에 맞춰 들리는 구두 굽 소리. 비즈 장식 끼리 부딪히는 불규칙한 소리. 인터넷 동영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부분이다. 불필요한 소리가 아니다. 장면과 어우러져 하나의 배경이 되고 그 자체로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무겁고 큰 보석이 박힌 액세서리, 크고 풍성한 가발, 각선미를 살려주는 아찔한 구두. 빛을 발하는 드레스를 입은 ‘라카지 오 폴’의 마담인 앨빈이다. 앨빈 그리고 그녀처럼 되길 바라는 하녀 자코브, 그녀를 사랑하는 조지와 장미셀. 뮤지컬 라카지의 주인공들이다. 


‘라카지 오 폴’ 클럽을 운영하는 게이 커플인 조지와 앨빈의 아들 20살 장미셸이 결혼을 발표한다. 결혼상대의 아버지는 극보수주의 정치가. 뮤지컬은 이러한 배경에서 발생하는 순탄치 않은 결혼 과정을 그린다. 이들의 갈등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이야기를 극적이고 독보이게 하는 앙상블, ‘라카지걸’의 무대는 한층 달콤한 여운을 만든다. 


“내 이 근육도 이 존재도 숨겨진 또 다른 나. 나는 나일뿐 이 브라도 이 굵은 목도”


‘We’re What We’re’가 울리는 1막. 새장 속 새들의 지저귐이 시작된다. 경쾌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에 찔린 드랙 퀸의 아픔이 느껴지는 노래다. 극 중 갈등의 최고조 지점에서 라카지 오 폴의 마담 앨빈이 부르는 ‘I am What I am’은 위 노래와 같은 멜로디지만, 차분하고 더 짙은 감정을 전달한다. 아래 앨빈역에 정성화 배우가 부른 ‘I am What I am’이다. 가사에 집중해서 들을 것을 권한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옷, 춤 여자가 춰야 예쁘지”라고 말한, 뒷자리에 앉았던 중년 남성의 말이 떠오른다. 라카지걸은 노래 가사처럼 여자와 남자 사이에 있지만 신체적인 조건은 남자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이 말하는 ‘여자’스럽다. 몸짓과 말투는 섬세하며 아름답게 과장되어 있다. 남자가 더 ‘여자’처럼 하는 모습에 사람들의 웃음을 터트린다. 나 또한 웃었지만 점점 불편해진다. 남자도 여성스러울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왜 웃음 포인트가 되었는지 그런 의구심에 빠진다.   


무대가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는 나를 주인공 입장에 서게 한다. 마치 그가 내가 된 듯, 그들이 받을 상처를 되씹어본다. 배우든 관객이든 동일한 마음을 느낄 순 없을 것이다. 2막 마지막 역시 완전한 이해와 화합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끝이 난다. 그들은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감내하려 한다. 불안한 미래가 보이지만 사랑하는 그들에게서 이 말이 떠오른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뮤지컬 라카지는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두 번째 라카지는 끝났지만, 다시 돌아올 ‘라카지 오 폴’ 클럽에 앉아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나를 떠올려본다. 안녕 라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