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창 밖에서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 속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설익은 르포]는 당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혹은 잊고 지낸 세계를 당신의 눈앞에 끄집어낸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자.


모든 일상 속, ‘사람’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물망 같은 연결망으로 굳이 보지 않아도 연결되는 세상이 된 지금. 더 많이, 빈번하게 사람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군집만을 생각한다. 마치 세상에는 사람밖에 없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다양한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중에서도 인간군집과 함께 생활했지만 없는 존재가 되고만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바로 유기된 반려동물이다.

 

 

사람만 생각하는 것을 멈춰


답십리 땡큐센터(Thank You Center)는 먼 곳에서부터 눈에 띄는 노란색 건물이다. 노란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고맙다”고 쓰여 있다. 고맙다니, 누구에게 고맙다는 걸까. 혹여 유기동물 보호를 위해 봉사를 오는, 힘쓰는 이들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와장창 깨졌다.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기자의 생각을 뒤집어주는 만화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화의 시작은 어린아이다. 작고 귀여운 아이가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 귀여운 아이는 부모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큰다. 그러던 중 아이가 집을 어지럽히고, 잔을 깨는 등의 실수를 저지른다. 무척 혼이 난 아이는 주눅이 들지만 이내 쾌활한 성격으로 돌아온다. 몇 번의 반복된 아이의 실수와 장난에 부모는 무척 화가 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는 아이를 차에 태운다. 멀리멀리 달리던 차는 외딴곳에 멈춰 선다. 그리곤 아이를 차 밖으로 밀어내버린다.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아이를 두고 부모가 탄 차는 쌩 하고 도망간다. 혼자 남은 아이는 그 자리에 남아 부모를 기다린다. 풀이 죽은 그 아이는 이내 강아지로 바뀌며 만화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이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 의미심장한 문구가 등장한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살아줘서 고마워”

만화 속에서 뿐만아니라 1층 복도에서부터 보호소가 위치한 2층까지 이 문구들이 이어져 있었다. 문구를 따라, 반려견의 사진을 따라 어느새 보호소 입구에 도착했다. 방금 본 만화를 떠올리며 ‘사람’의 시선으로만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을 한 채 기자는 문을 열었다.

 

  

사람이 줬던 상처, 지금은



복도식으로 된 내부는 총 9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9개의 방은 다시 7개의 오른쪽 방과 2개의 왼쪽 방으로 나뉘었다. 안쪽으로는 조용한 방 하나가 더 있었다. 반려묘가 머무는 공간이다. 7개의 오른쪽 방에는 큰 개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왼쪽 2개의 방에는 비교적 작은 작은 개들이 머물고 있었다. “컹컹” 큰 소리로 다소 힘없이 짖고 있는 큰 개들을 만나러 갔다. 그들은 각자 철창문이 있는 방에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 낯선 사람이 지나가자 바라보다가 짖기를 반복했다. 기자가 당황한 채로 서 있자 센터 간사가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싫어서 짖는 게 아니라 무섭다고 짖는 거예요.”

맨 마지막 방에 있는 백구의 행동이 이상했다. 머리는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고 계속해서 같은 곳을 뱅글뱅글 돌았다. 한쪽 다리는 아예 쓰지도 못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움직이려는 건지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몰라요. 구조를 해왔을 때부터 이런 상태였어요. 심각한 사고를 당한 아이일수록 사람에 대한 상처가 커서 경계를 많이 해요. 물지도 몰라요.” 


시계방향으로 뱅글뱅글 돌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이가 궁금했던지 바라보려 애를 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고 때문에 머리를 들 수 없어서 기자를 바라보려 하는 눈의 움직임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때문에 표정은 한껏 구겨졌지만 바라보는 눈만은 선했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니, 무슨 일이 있었어” 어느새 유기견 봉사하던 한 소녀가 다가와 쭈그려 앉았다. 백구를 바라보며 소녀는 한참을 말을 걸었다. 

그 반대편 방에서 낑낑대는 소리와 함께 맹렬히 점프하는 소리가 들렸다. 갈색 윤기가 나는 털을 가진 날렵한 황구였다. 기자가 황구를 바라보자 “헥헥”거리며 웃는 얼굴로 변했다. 마치 “같이 놀자”는 듯, 개구쟁이의 표정이었다. 그 유쾌함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리트리버도 함께였다. 적극적인 황구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어 리트리버도 어슬렁어슬렁 다가와선 냄새 맡기에 동참했다. 이 둘이 싼 오줌과 난장판이 된 배변용 신문지를 정리하고 있던 찰나에 으르렁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리트리버와 황구가 서로 싸우기라도 할 기세였다. 근처 다른 방을 치우던 봉사자가 다급히 들어왔다. “이 둘은 불리분안 증상이 심해서 사람이 떨어지면 낑낑거려요. 그런데 들어가면 또 그 사람 독차지하려고 싸워요. 제가 치우시는 동안 곁에서 아이들과 있을게요. 치우시는 동안 잠깐씩만 리트리버 봐주세요.” 사람에게 상처받은 그들이 겪는 정신적 아픔, 분리불안. 이 아픔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손은 황구를 토닥이기만 할 뿐이었다.

 

까다로운 입양절차, 상처의 고리 끊기

입구 쪽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입양을 원하는 이가 입양절차에 관해서 묻고 있었다. 이 센터에서는 구조되기 전, 반려견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센터에서는 이 작은 생명이 받았을 어떤 상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나 입양의 경우 깐깐한 방법을 거쳐야 한다. 


약 7장의 입양자 집 내부 사진과 입양취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담은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입양자의 인성과 동물을 대하는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입양이 결정된 이후에도 예방접종, 동물등록 등에 쓰일 입양 책임비(개 12만원, 고양이 7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입양 한 달 후에는 적응 후기까지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까다롭기 그지없는 절차다.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라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절차’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상처받은 동물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까다로워야 할 절차’가 된다. 더불어 땡큐센터에서 보호하고 있는 반려견과 반려묘는 입양되지 않았다고 해서 안락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을 기조로 하는 이 센터에서 입양(수요) 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만의 이야기로 생명을 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 시선을 낮추고 동물과 함께 ‘공존’, 이것이 바로 이 센터의 주요한 테제다. 설명을 듣던 입양희망자의 입에서 “까다롭다”식의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끄덕이다가 이내 “꼭 입양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권력관계를 허물다



앞서 언급한 만화에 등장한 아이를 단편적으로 바라보자면 ‘버림’받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버리다’는 뜻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 따위를 내던지거나 쏟아내는 행위”를 뜻한다. 이 뜻풀이에서 버리는 행동의 직접적 원인은 ‘필요’다. 필요가 없어질 때, 버리는 행위가 발생하곤 한다는 말이 된다. 또한 버리는 행위의 주체가 있을 것이고, 버림을 받는 주체가 있을 것이다. 이들 간에는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미셸 푸코는 “두 사람만 모여도 권력관계가 형성된다”고 했다. 권력이 미시적인 관계 속에서도 작동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푸코의 견해를 ‘버림’에 대입했을 때, 버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이는 사람이다. 필요로 반려동물을 데려왔고, 필요하지 않을 때 얼마든지 내던져 버릴 수 있는 그 힘은 바로 반려동물과 사람 간의 권력관계로부터 비롯된다.

반려동물과 사람 간의 권력관계는 역사를 이어져 왔다. 야생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개, 고양이 등은 사람의 필요(집 지키기, 사냥 등)로 가축화되었다. 사람과 함께 살도록 길들었고 그 결과 육식을 하던 식성이 잡식성으로 바뀌는 등 생물학적 진화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교배되어 지금의 반려동물이 있게 됐다.

그러나 이 센터에서는 이 권력관계를 허물어버린다. “네(반려동물) 잘못이 아니다”라고 한다. “고맙다”고 한다. 이 말은 반려동물에게 사람이 건네는 말이다. 기존에 있던 권력관계를 허물고 그 상하 권력관계의 틈을 메워보자는 것이다. 눈높이를 맞추고, 버림받은 것이 “너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라고 품어주는 곳, ‘버림’이 품고 있는 권력관계보단 너도나도 모두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생명임을 일깨우는 말을 건네는 곳이다. ‘땡큐카페’를 나오니 건물 외관이 다시 보였다. 노란 건물에 커다랗게 써진 “Thank You”를 보며 기자도 함께 중얼거렸다. “살아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