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다 사랑에 빠져 봄 노래를 부르고

꽃잎이 피어나 눈 앞에 살랑거려도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봄, 사랑, 벚꽃 말고.

– HIGH4, 아이유 <봄 사랑 벚꽃 말고>

 

 

꽃샘추위가 한풀 꺾였다. 봄이 성큼 다가왔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졌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HIGH4와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로이킴의 ‘봄봄봄’ 등 봄을 알리는 노래가 각종 음악 차트를 장식하기도 했다. ‘벚꽃, 로맨틱, 성공적’이라는 표어와 함께, 사람들은 꽃피는 봄에 연애하는 청춘을 장려한다. 하지만 ‘로맨틱’에 집중하기에는 팍팍한 현실이 마음에 걸린다. 봄기운이 만연한 주말이지만 ‘봄 사랑 벚꽃 말고 다른 얘기를 듣고 싶은’ 청년들이 있다.

 

지난 28일 오후 2시, 용산구 한강로 영구빌딩에서 진행된 ‘청년복지다방’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청년복지다방은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가 진행하는 공개 세미나로, 매번 청년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청년복지다방’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8번째 세미나인 이날 행사는 ‘청년 문제는 왜 사회문제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날 세미나는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김동현 교육국장의 발제와 칼럼니스트 한윤형의 강연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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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식상한’ 청년 문제

 

김동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교육국장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청년문제를 “식상하지만 계속되는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2003년 방영한 MBC 시트콤 ‘논스톱4’에서 고시생(앤디 분)은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김동현 교육국장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청년실업이 이슈화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제시한다.

 

청년실업이 계속되면서 청년에 대한 담론도 활발하게 생성됐다. ‘88만원 세대’, ‘인구론’, ‘삼포세대’, ‘이태백’ 등의 세대론이 등장했다. 그러는 사이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커졌다. 한윤형은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내려가는 사회’로 지칭하며, 내려가는 사회를 “저성장 기조, 인구 감소 추세와 그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가 변동하는 맥락을 포괄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내려가는 사회에서는 고용없는 성장이 나타난다. 고용없는 성장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윤형은 고용없는 성장을 두 가지 유형으로 설명한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의 기업은 업종의 특성상 수입이 늘어난다고 해서 고용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한편 국내의 ‘현대차’, ‘기아차’, ‘삼성전자’ 등은 사람을 고용해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설비 투자 등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고용없는 성장은 어떤 형태이든 간에 청년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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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된 MBC 시트콤 ‘논스톱4’의 고시생 ⓒMBC

 

 

청년문제는 사회문제다

 

앞서 이날 세미나가 ‘청년문제는 왜 사회문제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고 소개했다. 이런 의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청년문제가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년문제를 단순히 ‘청년들만의’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청년문제에 대해 청년들이 잘하면 해결될 일이라며 모든 비난의 화살을 청년세대에게 돌린다. 하지만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대부분 그 원인이 ‘청년’이라는 경계의 바깥에 존재한다. 한윤형은 이날 강연에서 청년문제가 사회의 각 영역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주거 영역에서 청년층은 희생자이다. 몇 년 전부터 집값이 오르지 않자 부동산 매매가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부동산 중개인들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그러자 부동산 중개인들은 사람들이 자주 이사하도록 만들어 부족한 수입을 충당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들을 자주 이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동산 중개인들은 집주인에게 전셋값을 올리도록 종용하며, 정부 역시 금리를 낮추어 이에 호응한다”고 한윤형은 설명한다. 집을 소유하지 못한 청년세대가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은 청년세대의 잘못이 아니다.

 

교육 영역에서는 학과 통폐합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학과 통폐합은 대학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대학 측의 대처이다. 대학 정원을 줄이는 것은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출산율이 낮아졌기 때문이고, 출산율이 낮아진 것은 고용 불안정에 대한 대처이다. 청년문제의 대부분은 ‘청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 불안이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하는 ‘사회문제’이다.

 

 

한국 사회의 ‘근과거 판타지’

 

한윤형은 현재 시점에서 90년대와 같은 가까운 과거를 그리워하는 문화 코드를 일컬어 ‘근과거 판타지’라고 지칭한다. 그 예로는 대중들이 90년대 회고 콘텐츠인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하는 모습을 제시한다. 2012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시청자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인기에 힘입어 2013년에는 시리즈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4’가 방송됐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 번째인 ‘응답하라 1988’은 현재 제작 중으로, 올해 안에 방영될 예정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팬들은 ‘응답하라 1988’을 ‘응쌍팔’이라고 부르며 벌써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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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근과거 판타지는 미래의 행복 가능성과 현재의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는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19세기와 같이 사회가 나아진다거나 하는 희망이 있다면, 미래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가 ‘살 만하지도’ 않다. “현실의 어려움은 현실의 어려움대로 존재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없어지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은 ‘가까운 과거’가 된다”는 것이 한윤형의 설명이다.

 

미래의 행복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는 현실은 비슷하지만, 일본에서는 근과거 판타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은 현재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은 현재의 어려움도 크다고 여긴다. 하지만 일본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지만 그러므로 지금이 가장 나은 시기라고 인식한다. 미래의 행복 가능성은 없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 한윤형은 “일본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대졸 초임자보다 일시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등 어느 정도 평준화되어 있다”는 점을 들며, “일본 같은 사회는 (한국 사회가 심적으로 근과거에 의지하는 것과 달리) 현재에 마음을 둔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힘든 이유

 

청년문제가 계속해서 이슈화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사이가 나빠진 경향이 있다. 일부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한윤형의 강연에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기성세대는 사회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청년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한윤형은 자신의 일상 속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한국 사회가 좋아졌다고 믿는 기성세대에게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 얼마 전에 아버지와 같이 산책하는데, 공원의 공중 화장실에 휴지가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역시 나라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들어보니 예전에는 공공장소에 휴지를 가져다 두면 사람들이 휴지를 훔쳐갔기 때문에, 휴지는 개인이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지 저렇게 내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 이사하는 날 용달차 모는 분들에게 내비게이션이 없었을 때는 이사를 어떻게 하셨냐고 여쭤봤다. 이사 전날에 지도를 펴놓고 예상도로를 파악하고 어찌어찌 했다고 하시면서 꼭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느냐’는 말을 덧붙인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도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윤형은 출산율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과거에는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집안 형편이 나아졌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을 많이 낳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녀 한 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난 데다가 이것을 근검절약의 수준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가령 사교육비를 아끼는 것은 자식의 기대소득을 줄이는 행위가 된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세대론에 대한 섣부른 접근은 자칫 세대전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한윤형은 “세대론을 세대전쟁이나 몫 배분의 문제로 이해할 경우 사회 변동의 측면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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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청년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청년들이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해서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청년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도록 만드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부동산을 들 수 있다. 한윤형은 상대적으로 집을 소유하지 않은 청년들이 무엇을 지지해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다. 지역구 투표에서 지역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를 하는 것은 언제 이사 가야 할지 모르는 세입자보다는 아무래도 집주인 쪽이다.

 

대학생들이 보수화되고 있는 점도 변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해석된다. 한윤형은 “과거에는 대학생이 생애에서 가장 진보적인 시절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대학생 시절이 가장 보수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학생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환경으로는 대항 담론이 부재한 대학 사회와 친기업적 논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 교육의 현실을 지적했다.

 

청년들의 활발한 정치 참여를 방해하는 요인도 많지만, 정치를 통해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마냥 비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 한윤형은 친기업의 논리로 무장한 채 입사했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신은 ‘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직장인의 사례를 언급했다. 이어서 그는 “사회문제가 심해질수록 저항이 강렬해지므로 정치에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밝히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