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매달 대중에게 음악으로 세금을 내겠다” 라고 공언한 아티스트가 있다. 누굴까? 당신은 ‘국민가수’ 수사가 붙곤 하는 김건모, 조용필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티스트 ‘유세윤’, 앨범 제목 ‘월세 유세윤’이라는 말. 당신은 코웃음 친다. 그 코웃음이 가지는 함의에서 월세 유세윤은 출발한다.

 

곡을 발표하는 개그맨들은 많았다. 작사를 병행하는 이들도 있으며, 심지어 정형돈은 한국 작사가협회의 회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가수(개그맨+가수)’라는 말이 탄생하였다. 유세윤 또한 ‘개가수’의 범주에 속한다. 그가 뮤지와 결성한 그룹 UV는 ‘쿨하지 못해 미안해’, ‘이태원 프리덤’과 같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곡들을 남겼다.

 

유세윤은 ‘개가수’일 뿐 아니라 ‘뼈그맨(뼛속까지 개그맨)’이기도 하다. 그가 ‘뼈그맨’이라 불리는 이유는 방송뿐 아니라 대중에게 비치는 유세윤의 일상이 개그스럽기 때문이다. 유세윤이라고 일상 속의 무겁고 어두운 면이 보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사회가 주는 이러한 류의 자극까지 개그로 승화시킨다. 그렇다 이것은 분명 승화가 맞다. 그 승화의 과정에서 작품은 탄생하고 그의 감수성과 예민함이 드러난다.

 

표면적으로 유세윤은 작사만 맡고 있다. 음악과 가사, 가창 등 다면적 매체인 대중음악에서 그의 개성 강한 가사는 리스크 일 수밖에 없다. 전체 흐름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앨범 전체의 분위기와 편곡이 그의 가사를 꾹꾹 눌러주고 있다. 곡 전체를 아우르는 프로듀서로서 유세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부분이다. 

 

그가 작사한 가사 또한 단순 웃기지만은 않다. 메시지가 존재한다. 아니 분명하다. 어디에 끼워도 맞는 것 같지만, 결국 어느 곳에도 맞지 않는 구태의연한 가사들보다 디테일한 상황설정 이후에 이어지는 그의 가사는 신박할 뿐 아니라 매력적이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월세 유세윤’이라는 이름으로 세 곡이 발표되었다.

 

<월세 유세윤> , b급에서 시대를 비추는 예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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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직웍스 

서로에게 무언가를 구하는 연인관계에서 ‘늙음’과 ‘젊음’의 차이는 역학관계를 만든다.

 

“미안해요. 늙어서, 미안해요. 지쳐서, 미안해요. 먼저 태어나서.

“언제부턴가 그대는 자꾸만 그대는 휴대폰을 감춰요. 

그 안에 누가 있나요? 나보다 어린 사람일까요? 

하지만 걱정 마요. 난 그 휴대폰 사용법을 모르니까.”

 

첫 번째 발표곡 ‘미안해요. 늙어서’의 절반 이상은 자신의 늙음을 자책하는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다. 반복되는 미안하다는 말이 젊은 애인에게 늙은 남자가 가지고 있는 부채의식을 드러낸다. 그의 늙음은 죄, 미안해야 할 일이 된다. 곡 속에 늙음을 위한 위로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유세윤의 첫 곡 속에는 위로가 없다. ‘늙어가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늙어가는 삶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 속에서 백색 거짓말에 불과하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소설 ‘은교’ 속의 한 구절은 늙음도 젊음도 결국 선택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실로 그렇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개념은 실제로 단순 상대적인 차원에서 존재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며 우리에게 선고된다. 젊음을 선고받은 사람은 그들 나름 ‘젊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짓눌린다. ‘늙음’을 선고 받은 사람도 말할 나위 없이 그렇다. 첫 곡의 가사를 통해 유세윤은 말한다. ‘그 이상의 젊음과 늙음은 결국 만들어진 것. 젊음 만을 탐닉하는 사회는 결국 젊음과 늙음 모두에게 악이다.’

 

두 번째 곡에서도 그의 감수성과 예민함은 사회와 개인의 변화를 포착한다. 두 번째 곡의 제목은 ‘니네집에서’. 반복되는 ‘니네 집에 갈래! 니집 에서 살래!’라는 말이 영화 ‘봄날은 간다’ 속 이영애의 ‘라면 먹고 갈래?’를 떠오르게 한다. 노래는 영화가 개봉했던 2001년과는 다른 2015년의 사회를 조명한다. 네가 먼저 해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말, 차마 내가 먼저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무심히 ‘라면 먹고 갈래?’ 던지던 ‘너의’ 모습과 함께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래. 라면 먹고 가지 뭐’ 했던 때가 있었다. 

 

14년이 지난 오늘 유세윤의 노래는 말한다.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었으면 좋겠어. 니네 집에 갈래! 니집에서 잘래!’ 문장부호는 물음표(갈래?)에서 느낌표(갈래!)가 되었다. 과거 내가 차마 꺼낼 수 없어서 네가 이야기해 줄 때까지 기다린 그 말을 유세윤의 ‘니네집에서’ 속 에서는 이제 내가 먼저, 심지어 때를 쓰는 듯이 이야기 한다.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와 관련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영화의 배경인 2000년 전체 인구의 15.6%였던 1인 가구가 올해 27%를 넘어설 전망이다. 과거 가족단위의 주거형태에서 집은 개인의 전유가 아니었다. 공동의 주거공간이기에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두 동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의 공동공간에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하지만 1인 가구는 다르다. 이 사람을 ‘집’이라는 공간에 들여도 되는가에서 고민 과정이 비교적 간소하다. 주거 형태 변화에 기인한 ‘집’의 의미변화, 사회가 내리는 ‘늙음, 젊음’ 등의 거시적 프레임뿐 아니라 개인의 내면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가는 곡 또한 존재한다. 

 

세번째 앨범의 ‘우리 싸웠어’는 다툼의 과정에서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를 잊어버리는 한 쌍의 연인을 그린다. 우리가 무엇에서 시작했고 어느 것을 의도했는지 잊어버린 채 과정에 매몰되어, 소모적인 논쟁만을 계속하는 연인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면이 크다.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논쟁은 어떠한 결과물도 도출해내지 못하고 오직 노래의 제목인 ‘우리 싸웠어’라는 사실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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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블로 트위터, 타블로와 유세윤의 대화 (내용과는 다르게 유세윤은 파주에서 전세 거주 중이다.) 

 

‘개그맨이 음악 좀 냈다고 뭘 이렇게 호들갑이야?’

 

당신이 머릿속으로 하는 말이 들린다. 맞다. 이 글은 ‘호들갑’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손석희가 ‘섹션티비’ 같은 연예 뉴스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만큼, 팝 아티스트 나열과 비교를 통한 음악평론가 임진모의 ‘월세

 유세윤’ 리뷰는 어색하다. ‘월세 유세윤’ 리뷰은 ‘b급 마이너 감성’을 기반으로 해야만 진정한 ‘b급 감성의 종합예술’ 선언문이 될 수 있다.

 

뼈그맨은 ‘월세 유세윤’을 통해 b급 종합 예술가로 태어났다. 아티스트 유세윤은 몹시 진지하다.  그 진지함을 느끼기 때문에 음악은 웃기지만 가볍지 않다. 같은 ‘b급 마이너’인 나도 몹시 진지하다. 이쯤 되니 ‘월세 유세윤’ 속 ‘월세’에도 특별한 함의가 보인다. 혹 ‘부동산 시장의 변화로 전세가 사라질 것’ 이라며 제목으로 ‘월세’ 시대를 상징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글은 산행을 떠났다. 지리산을 지나 소백, 태백산맥, 북으로 향한다.

 

 

글. 압생트 (9fif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