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외모지상주의’의 핵심 서사는 이렇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석은 키 작고 뚱뚱하며 왕따를 당한다. 한계치에 다다른 형석은 전학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한다. 그리고 판타지가 시작된다. 낮에는 잘생긴 몸, 밤에는 본래의 뚱뚱한 몸. 이들은 한쪽 몸이 잠들면 나머지가 깨는 식으로 교대하게 된다.

 

판타지적 요소와는 달리 웹툰은 곳곳에서 고등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상투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이런 묘사를 통해 웹툰 외모지상주의는 네이버 웹툰 기준 금요일 1위를 달리고 있다. 모든 웹툰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웹툰에서 자주 나타나는 자극적 묘사와 관습화되어있는 서사의 결합은 신선하지 못한 방식으로 1위를 차지한다. 좋지 않은 관습이 ‘복합적으로’ 엮여있는 외모지상주의는 ‘클릭’을 얻어내는 데에만 골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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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외모지상주의’ 

 

판타지의 시작, 달라진 외모로의 모험

 

형석은 계속 몸을 바꾸어 가며 달라진 시선들을 경험한다. 낮에는 상냥한 시선과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저녁이 되면 깔보는 시선, 심지어는 실질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형석은 이러한 간극을 자꾸만 되새긴다. “달라진 건 외모뿐인데 시선은 완전히 달라.”

 

정말로 달라진 것은 외모뿐인가? ‘낮에는 잘생긴 얼굴, 밤에는 뚱뚱한 몸’이라는 설정은 이 문제를 은폐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는 한번 바뀌고 계속 예뻐진 상태를 유지한다. 한 번만 외모 변신을 하고 달라진 모습에 여유롭게 안착한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의 형석은 밤만 되면 다시 본래의 뚱뚱한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아는 한쪽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몸은 멋진 상태, 성격은 배려 깊은 모습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멋진 외모와 배려 깊은 성격, 두 가지를 갖추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주인공 형석은 뚱뚱한 시절부터 배려 깊은 성격은 가지고 있었다. 다만 멋진 외모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멸시를 당했던 것이다! 비어있는 외모의 자리만 채운다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웹툰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외모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와 동시에 웹툰은 불편해진다. 외모만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는 세계관은 곳곳에서 불쑥불쑥 드러난다. 현실이 그렇지 않으냐는 의문은 타당하지 않다. 웹툰은 실제보다 더 과하게, 다소 반동적으로 외모지상주의 세계를 그려낸다. 개인이 가지는 모든 문제를 ‘외모’ 하나로 환원시켜버리는 방식은 실제와도 괴리가 있으며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외모만 달랐다면 지금 이런 대접을 받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은 타당할 수는 있으나 전부는 아니다.

 

묘사 비율 파괴 지상주의, 극단적으로 그려내기

 

외모지상주의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노쇠했고 폐지를 줍는다. 엄마가 아닌 할머니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외양과, 폐지를 주우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낸다. 주인공의 신체비율은 압축하듯 줄여 기괴함을 선사했다면 엄마는 늙고 주름지게 그려낸다. 다소 진부하게도, 돈은 없으나 아들 하나는 잘 키우는 것이 목표인 엄마라는 설정은 가족 드라마에 나올만한 신파를 지니고 있다.

 

엄마와 주인공의 관계도 어디서 많이 본 구도다. 아들은 엄마에게 ‘츤데레’처럼 군다. 주인공은 엄마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자꾸만 미안한 짓을 하게 된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서 이 간극은 점점 커지고 주인공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사실 부모에게 가장 미안해지는 순간은 주변 사람에겐 아무 말도 못하다가 부모에게만 아무 말도 못하게 될 때일 테다. 작가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고 그래서 신파성을 획득했다. 주인공이 엄마에게 화내고 혼자 방에서 울며 미안해하는 지점에서 신파의 정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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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훈련소 문구 ⓒ기호일보

 

웹툰에서 여성은 둘 중 하나다. 바비인형처럼 신체를 왜곡시킨 ‘예쁜 여학생’과 뚱뚱하고 못생긴 ‘날라리’다. 바비인형들은 착하거나 나쁜 성격을 가질 수 있지만 날라리는 성격이라는 것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나쁜 쪽으로 묘사되지만 ‘추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극단적 그림체는 웹툰의 한 기조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웹툰에서 볼 수 있지만 자주 접할 수 있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성격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웹툰에서 남성들은 ‘힘이 세다’와 ‘착하다’, 두 가지 잣대에 의해 나누어진다. 강하고 나쁘거나 강하면서 착하고, 약하고 나쁘거나 약하고 착한 것. 총 네 가지로만 나뉘게 된다. 이들은 웹툰 제목처럼 외모로만 구별할 수 있다. 심지어 여성들은 그마저로도 구분하기 어렵지만.

 

웹툰에서 그려낸 세계는 외모가 전부다. 그런 공간을 어디서 본 듯한 뻔한 인물들이 채우고 있다. 자꾸 바뀌는 외모로 여러 가지 상황을 겪어나가는 형석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대리만족과 자기 위안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웹툰의 질은 독자가 웹툰을 보면서 얼마나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는지에 달려있지 않다. 웹툰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작품의 질에 대한 생각도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