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만화계의 거장 중 한 명인 이현세 씨가 레진코믹스에서 처음으로 웹툰 형태의 작품을 발표했다. 장태산 작가 역시 네이버 웹툰에 ‘몽홀’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두 사람이 40여년 만화를 그리며 발표해온 작품들을 생각하면 존경심이 들면서도 새삼 신기하게 다가온다. 90년대 ‘용비불패’로 유명세를 떨쳤던 문정후 작가 역시 레진코믹스에 ‘초인’이라는 작품을 연재한다. 한국 출판 만화계에 위기가 찾아온 뒤 2000년대 초 많은 만화 작가들이 게임산업 쪽으로 가거나 학습만화, 혹은 일본 만화시장으로 진출했다. 이후 웹툰이라는 포맷과 시장 영역이 형성되면서 시장의 판도는 다시 변화했다. 짧은 시간 동안 숱한 환경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선보인 작가 중 열 명을 꼽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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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마루한 – 구현동화전’ 한 장면 ⓒ 박성우

 

박성우 – 섬세하게 풀어내는 무협 판타지

최고의 작품: 천랑열전, 나우

최근 작품: 마루한 – 구현동화전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연재했던 천랑열전, 후속작 격인 나우 등을 비롯해 잘 구성된 세계관과 스토리, 세련된 그림체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성우 작가 역시 일본으로 건너갔던 적이 있다. 천랑열전과 나우 모두 긴 시간 꾸준한 연재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2004년부터 연재되었던 ‘흑신’을 비롯해 ‘메테오 엠블럼’ 등의 작품을 일본에서 선보였고, 애니메이션화 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박성우 작가를 ‘흑신’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이후 네이버웹툰에서 ‘마루한 – 구현동화전’을 선보이고 있다. 판타지, 무협 장르에 꾸준히 강세를 보였던 만큼 ‘마루한 – 구현동화전’ 역시 옛 동화를 무협물의 형태로 각색해서 선보이고 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발전한 그림체가 감상 포인트.

 

윤태호 – 산을 하나 쌓은 뒤 더 큰 산을 쌓는 작가

최고의 작품: 야후

최근 작품: 파인


‘미생’, ‘이끼’와 같은 작품이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만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은 윤태호 작가 역시 출판만화 시절부터 활동해왔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연재한 ‘야후’는 당시에도 수작으로 꼽혔다. 사회 부조리를 담아내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잔혹함을 섬세하게 담아낸 그림까지 보는 이에게 인상 깊게 다가온다. 2008년 선보인 ‘이끼’ 이후의 웹툰이 모두 주목을 받는가 하면, 일상 가까이 있는 소재를 극적으로 풀어내며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작품의 연속으로 많은 이의 지지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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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믹스에 실린 ‘까꿍’ 일러스트 ⓒ 이충호

이충호 – 백만 부의 신화, 웹툰의 강자로

최고의 작품: 까꿍, 마이러브

최근 작품: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1993년 ‘마이러브’, 1995년 ‘까꿍’ 모두 백만 부 이상 판매되며 관련 상품과 게임이 생겨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당시 일본 만화 전면 개방에 대적했던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판타지 세계를 흥미롭게 구현해낸 두 작품 이후 이충호는 학습 만화로 잠깐 방향을 돌렸지만, 출판 만화를 경험했던 사람 중에서는 발 빠르게 웹툰으로 뛰어든 상황에 해당한다. 이충호 작가는 ‘무림수사대’, ‘이스크라’,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등 이미 몇 차례 웹툰을 선보였다. ‘하이드, 지킬, 나’를 통해 드라마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충호 작가의 작품은 한국, 일본, 미국의 화풍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으며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귀엽고 예쁜 그림부터 잔인한 장면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또한, 스크롤을 이용한 연출이나 만화적 상상력을 구현하는 데에도 능하다.

 

김성모 – 근성은 영원하다?


최고의 작품: 럭키짱
최근 작품: 돌아온 럭키짱


숱한 유행어와 말투로 인기를 끈 김성모 작가는 다작의 대명사인 동시에 인터넷상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작동한다. 그는 처음 이름을 알린 ‘마계대전’부터 ‘럭키짱’, ‘스타크래프트’, ‘대털’, ‘혐일류’ 등 성인만화부터 학원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웹툰을 통해 ‘질보다 양’, ‘병맛’, ‘근성’과 같은 자신의 키워드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찍어내다시피 하는 연재 분량과 속도, 황당한 대사와 상황으로 유명하지만 지난 몇 작품은 근성 있는 취재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꾸준히 자신만의 개그 센스를 밀어붙였기에 지금의 김성모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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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리드미칼 트레이닝 더 소울 블루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웹진 iMage 33호 중 발췌 ⓒ 전상영

전상영 – 궁상과 코미디를 던지고 액션 활극의 모험을 택하다

최고의 작품: 미스터부

최근 작품: NR 예거


‘궁상’이라는 단어 보급에 앞장선 한국 최초의 엽기 만화 ‘미스터부’를 통해 크게 성공했지만, 이후 내추럴 리드미칼 시리즈를 통해 사이버펑크 액션 활극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전상영 작가는 실험정신이 강해서인지 비교적 일찍 웹툰으로 뛰어들었는데, NR로 시작하는 여러 편의 웹툰을 통해 그야말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이 느껴진다. 전상영 작가는 작화 뿐만 아니라 스토리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코미코에서 ‘너클걸’이라는 작품을 유상진 작가와 함께 연재하고 있다.

 

서영웅 – 한국형 학원물의 성공, 게임 회사에 도전하다

최고의 작품: 굿모닝! 티처

최근 작품: 레벨 업

 

한국 고등학교의 정서와 모습을 잘 반영한 ‘굿모닝! 티처’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영웅 작가는 이후 로봇물이나 판타지물에 도전하며 조금씩 모습을 보이다 2014년부터 레진코믹스에서 ‘레벨 업’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굿모닝! 티처’와 ‘레벨 업’의 공통점이 있다면, 굉장히 현실적인 배경과 등장인물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특유의 간질간질한 인물 간의 관계 형성을 들 수 있다. 비록 ‘레벨 업’의 스토리작가는 다른 사람이고, 긴 시간이 흐른 만큼 그림체도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특유의 8등신->5등신->2등신으로의 변화나 등장인물의 존재로 흐름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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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하우스’ 16권 표지 ⓒ 원수연

원수연 – 한국 순정만화를 대표하는 작가

최고의 작품: 풀하우스, 매리는 외박중
최근 작품: 떨림


1987년 데뷔하여 1993년 ‘풀하우스’라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원수연 작가는 꾸준히 작품을 낸 것으로도, 만화가 강도하와 부부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5년 발표한 ‘Let 다이’는 일찍이 동성애를 소재로 하였고, 원수연 작가의 작품은 주로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 많은 화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일러스트집을 따로 발표할 정도로 뛰어난 그림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후 2009년 ‘매리는 외박중’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최근 코미코에서 ‘떨림’이라는 작품을 연재 중이다.

천계영 – 다양한 변화,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캐릭터

최고의 작품: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
최근 작품: 좋아하면 울리는


천계영은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 ‘DVD’를 통해 크게 사랑을 받았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특유의 그림체가 가장 크게 적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패션 등의 문화 코드에서 트렌드에 민감했고, 그 트렌드를 잘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2013년 ‘하이힐을 신은 소녀’ 전후로 작업 방식과 그림체가 크게 변화해서 간혹 못 알아보는 분들도 있지만, 소설을 냈던 경력이 있는 만큼 탄탄한 스토리는 여전히 장점 중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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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믹스를 통해 공개한 차기작의 주인공 미단이 ⓒ 박소희

박소희 – 순정 만화의 격을 끌어올린 센스

최고의 작품:

최근 작품: 궁 외전: 별신의 밤


일찍이 드라마화에 성공했던 ‘궁’을 만든 박소희 작가는 작품 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앞서 말한 작가들에 비해 나중에 데뷔하기도 했다. 2000년 데뷔 후 단편 위주의 작업을 하다 ‘리얼퍼플’을 연재하였고, 이후 2002년부터 2012년까지 ‘궁’ 및 외전을 선보였다. 최근 ‘궁 외전: 별신의 밤’을 통해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외전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 역시 깨알 같은 개그와 특유의 패션 센스가 돋보이며, 가상의 상황을 현실로 옮겨놓는 방식이 매력적이다.

정혜나 – 발랄한 시작, 사뭇 진지해진 현재

최고의 작품: 탐나는도다

최근 작품: 백의전사


시청률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드라마화에 성공한 만화 ‘탐나는도다’의 정혜나 작가는 지금까지 소개한 작가 중 가장 최근에 데뷔하였으며 가장 젊다. 정혜나 작가는 2006년 데뷔하여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했던 ‘탐나는도다’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멜 표류기’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역사적 배경과 제주도 문화, 그리고 가상의 상황을 적절히 섞어냈다. 최근에는 네이트 만화에서 ‘백의전사’라는, 병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연재했다. 네이트 만화에는 ‘호텔 아프리카’, ‘마틴 앤 존’으로 유명한 박희정 작가 역시 ‘케덴독’이라는 작품을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