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했다.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들을 숙청했다.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마르틴 뉘밀러, <그들이 처음 왔을 때>

 

건국대 예술 계열 과 통폐합 반대 시위가 한창이다. 비단 건국대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중앙대 구조조정과 동국대 문예 창작학과 폐과 통보를 두고 학생들은 반대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올해 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구조조정 문제로 학교와 학생 간에 대립은 존재했다. 그 대립 때마다 학생들은 총장실을 점거하거나, 플랜카드를 걸고 반대 서명운동을 하는 등 자신들의 의견을 학교 측에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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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학교는 우선 인문학을 숙청했다

 

그 ‘적극적인 의견 표출’을 직접 본 것은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2012년이다. 당시 20살 새내기였던 나는 학교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방에 갔을때, 06학번 한 선배는 무엇인가에 분개하며 반대 서명 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선배는 동아리방의 책상 하나를 꺼내 학생회관 정문으로 옮겼고, 미리 프린트한 반대 서명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대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을 도우며 듣게 된 이야기는 ‘구조조정’이었다. 학교에서 인문학 계열을 통폐합하고, 여타 학과들도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게 개편하거나 새롭게 학과를 개설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어떤 문제를 유발하는지 이해는 했지만 큰 문제의식은 느끼지 못 했다. 다만 수업을 오가다 보면, 그 선배는 늘 학관 앞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끔씩은 나에게 잠시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선배는 나를 학관 앞의 자리에 잠시 동안 앉혀놓고 학생회 측에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러 가거나 함께 반대를 하러 갔다. 혹은 교수와 이야기를 하러 가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학생회나 이런 곳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곳은 조용하고 오히려 선배만 고생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 선배는 “학생회도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학교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하는 곳이라 협박 받으면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나처럼 ‘찍혀버린’ 고학번이 혼자서 날 뛰는 것도 유의미하다”고 했다. 

 

나는 인문학과가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유의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렇게 또 며칠을 보내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서명을 해 뜸해진 학관 앞에서 그 선배에게 넋두리를 뱉었다. 이런다고 해서 학교 측에서 바꿀지 모르겠다고. 그 선배는 “아예 구조조정을 그만둘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다만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의 소리를 낸다면, 학교는 우리를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 아예 자기들 맘대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선배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학교의 일방적인 통보식 가정통신문을 내리면 째깍째깍 부모님 서명을 받아오는 교육을 12년이나 받은 탓이다.

 

그 이후 선배는 학생회와 붙인 플랜카드가 사라졌다고 항의를 하러 가거나, 외부 사람들에게 연락해 세미나를 준비하는 등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어느새 점차 행동이 줄어들었고, 나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후 사항을 묻지 않았다.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나에게 ‘가정통신문’처럼 전파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학교는 반대 의견에 대한 답도 이후 상황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반대를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보였다.

 

그렇게 새내기 시절이 지나고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학교 소식에 관심은 없었으나, 페이스북을 통해 총학생회가 학교와 등록금이나 구조조정 문제로 시위를 벌이며 싸우고 있다는 소식은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복학 후 경제학과였던 나는 경영경제학부 학생이 되어 있었다. 인문계열이나 어문계열 학과들은 없어져 있거나 ‘콘텐츠’ 또는 ‘미디어’와 같은 말이 붙은 채로 바뀌어 있었다. 새내기 OT때 ‘우리는 이제 신입생이 없어요!’라고 웃으며 외치던 법학과 사람들은 어느새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몇 년간의 과정 속에서 나는 무관심했고, 더해서 군대라는 핑계로 문제를 회피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숙청한다면

 

2012년 당시, 수업까지 빠져가며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던 그 선배에게 “힘들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 말에 선배는 “지나가며 서명을 해주거나, 서명하지 않더라도 “고생한다”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학우나 교수가 있어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 선배는 또 자리를 옮겼다. 그 선배 대신 나는 학관 앞의 작은 책상을 지켰다. 당시는 몰랐지만 이제는 그 책상과 의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던 것인지,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였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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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

현재 그 무게를 직접 견디며 대학과 마주하는 학생들을 보며, 당시 겨우 그 정도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부끄러워한다. 언젠가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책상을 꺼내야 할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이미 예전에 학교와 맞섰던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것이다. 20살 기억에서 3년이 흐른 15년의 봄, 학교를 마주한 채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보면 선배와 무거운 책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