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했다. 탑승 인원 476명 중 생존자는 사고 당일에 구조된 172명뿐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246명을 포함해 295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아직 9명은 바다에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세월호 참사’라 부른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 세월호를 묻으라고 하지만, 고함20 기자들은 계속해서 세월호를 이야기할 것이다.

 

블루프린트   아무도 허무함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땅에서 참사 이후를 고민하는 대화들은 늘 그 필요성과 효용에  대한 냉소, 나아가 ‘지겹다’는 말에 도전해야 했다.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모두 무가치한 취급을 받는 이 곳에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허무를 마주하기에 지금은 그렇게 어렵고 외로운 시대다.

그럼에도 우리는 허무를 생각해야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의 두려움을 걷어내고 그 뒤의 시작을 고민해야한다.  세계는 너무 오랫동안 ‘뭘 할수 있을까’가 아닌 사건의 종결에 집중했다. 인간의 기억에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좌절인 동시에 희망이다.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말은 종종 ‘이제는 다 끝났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 되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시일 뿐이다. 그렇게 끝없이 믿어야한다. 모든 믿음이 그렇듯, 물론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나오란   핸드폰 메모장에서 ‘세월호’를 검색해봤다. 2014년 6월 19일의 메모에는 극도의 분노가 느껴진다. 분노의 이유는 책임자 처벌에 앞서 2달이 넘는 기간 동안 사실 규명조차 안 됐다는 점과 응원을 못 해줄망정 포기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되레 욕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세월호 1주기가 되는 2015년 4월 16일, 과거 내 분노의 이유는 달라진 것이 없다.

 

콘파냐   작년 겨울은 송년회를 보내지 않았다.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아 2014년을 송년送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망각의 정당화에 찬성하지 않기 위해 2014년에 머물러 있겠다. 오늘은 2015년 4월 16일이 아니라 2014년 16월 16일이다.

 

아호   겨울을 휘몰아치던 찬 바람이 물러나고 따뜻한 햇빛이 봄을 채운다. 사람들은 앞다퉈 봄의 기운을 쫓아 벚꽃구경을 떠난다. 나도 계절의 변화에 들떠 새로 산 예쁜 옷을 입고 그 움직임에 동참했다.

나의 일상은 2014년 4월 16일 이후에도 그전과 다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라는 단어가 견고한 일상에 불쑥 끼어들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떠난 배가 수백명의 생명을 안고 잠기고 있다는 뉴스에 ‘구조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부끄러움, 정말 구조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을 때 물 위에 뜬 배의 일부모습에 희망을 걸고 지켜볼 수밖에 없던 무기력함이 이따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수치심뿐만 아니라 단 한 명의 생명도 살려내지 못하고 수장시킨 정부의 무능과 유가족을 외면하는 행태를 바라보며 비통함을 느끼기도 했다. 때로는 자칭 애국보수 회원들이 유가족 옆에서 음식을 먹는 야만에, 세월호를 ‘교통사고’라 정의하는 정치인의 무례함에, 자본과 정치가 결탁하여 만든 부패의 썩은내에 삐죽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로 유가족의 아픔을 완전히 헤아렸다고 말하지 않겠다. 물에 잠겨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가족을 생각한다는 것은 상상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다. 더욱이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무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지난 365일, 8760시간 동안 미여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내온 그들이다. 아픔을 호소하고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잊으라’는 위로는 독이다. 잊을 수 없는 일에 잊으라고 강요하는 폭력과 우리 사회가 세월호 사건을 잊겠다는 외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내가 그들에게 전하는 마음이다.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 희생자의 가족들, 살아났지만 끔찍한 기억을 견디며 살아갈 이들, 그리고 세월호가 드러낸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과 치부를 기억하겠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때로 잊혀지더라도 삶에서 지워내지 않겠습니다.

 

감언이설   세월호라는 말이 어느새 ‘질린다’란 말이 되어버렸는데, 정치에서 이용되어 버려서 그런 것은 아닌지. 순수한 마음은 어디론가 다들 없어지고 상호 갈등과 증오만 남아버린 것 같다. 추모할 것은 추모하고, 고쳐야할 것은 고치고, 잘못된 부분을 인정해야 사건 하나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정리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정리하려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내면 ‘질린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지금이 안타깝다.

 

달래   말 그대로 ‘참사’였다. 시험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서 뉴스를 틀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화면 한 구석에 자리한 ‘구조 OOO명, 사망 OOO명’ 숫자는 계속해서 바뀌었고,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참사 이후 1년, 그간의 풍경은 마치, 세월호와 함께 이 땅의 진실과 상식도 침몰한 듯 했다. 세월호와 함께 진실도 정의도 상식도 세상 밖으로 ‘인양’되길 바란다.

 

풍뎅이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난국이 모두 드러난 사건이다. 안전은 무시하고 이윤만을 좇는 자본. 그와 결탁하여 눈감아준 부패한 관료. 진실이 사라진 언론. 공감능력을 상실한 시민들. 그리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정부까지. 지금의 구조에서는 제2의 세월호 사건이 터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세월호 100일 추모 집회에서 어느 발언자가 말했다. “과거의 수많은 사고부터 현재 세월호까지 우리는 너무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겪지 않은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라고. 끝까지 잊지 말고 진실을 밝혀내서 보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미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날 당시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당직사관님이 점호할 때 다들 집에 전화 했냐고 물어봤었습니다. 뭔 일 있나 싶어서 점호 끝나고 티비를 틀었고 세월호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종자 와 구조자, 사망자가 계속 카운트 되는 것을 보면서 무서움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1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봄이 돌아왔지만 아직도 실종자로 남아있는 학생이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라켈   정당 싸움의 먹잇감으로 소모됐고, 악플러들의 정신승리에 놀아났으며, 언론의 취재경쟁에 너덜너덜해졌다. 때때로 “이제는 그만 좀 하라”는 냉랭한 눈초리까지 더해진다. 그 때 그 ‘세월호’사건 말이다. 그러나 정말 잊어도 되는 건지 묻고 싶다. 망각의 강을 건너는 순간, 전 국민은 또 하나의 ‘세월호’에 탑승하는 건 아닐까?

 

베르다드   가슴에 묻기에는 아직 해야할 일들이 많습니다. 한 세월호 유가족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도 저희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 바라는 것 뿐이에요” ‘지겹다,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봅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얘기입니다. 저는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잘못된 것을 바꾸고 싶습니다.

 

호련   세월호는 평생 안고가야 할 마음의 빚이다. 사람들이 수장되고 있는 동안 봄을 누리고만 있었다. 아이들이 손톱을 으스러트리며 구조를 요청하는 동안, 나는 튤립을 감상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았을 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난 지금.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어째서 가라앉고 실종자들이 왜 모두 사망자가 됐는지 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사람들은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라 앉은 진실의 실체는 구명할 수 있다. 진실이 밝혀져야 마음의 빚 중 일부를 덜 수 있을 것 같다.

 

참새
“저는 앞으로도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도 있을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가장 오래 남는 게 냄새라는데, 잘 없어지지도 않다는데, 냄새가 안 나요. 이불에서도 냄새가 안나요.”
– ‘금요일엔 돌아오렴’ 중
필사적으로 기억하려는 분들입니다. 잊는 것이 가장 무서운 분들에게, ‘이제 그만 잊으라’ 말할 수 없습니다.

 

블럭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잊지 못해서 늘 가까이 소식을 두고 있었다. 가끔은 웃는 것조차 미안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어떻게든, 내 에너지가 남아있는 한 행동으로 옮기려 했다. 금방 끝날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절대 먼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은 늘 간직하고 있다.

 

은가비   뭐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심스럽고 어렵다. 당시 나는 전원 구조 보도를 믿고 싶었고, 정정 보도 후에도 SNS 상에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많은 학생들은 바닷속에 갇혔음을 알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기력감과 슬픔이 밀려왔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내 가족이, 친구가 있었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공포였다. 내 주변 일이 아닐지언정 세월호는 잊을 수 없는,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나에게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단지 그들이 편히 잠들 수 있길 바라고 바랄 뿐이다.

 

농구선수   세월호 사건은 어느 순간부터 맥락 앞 뒤 모두 잘린 채 난도질 당했다. 그리고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 1년이 지나버렸다. 그래도 ‘바뀔 수 있는 것이 있을까’라는 회의론으로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무던하게 열기가 지속되길 희망한다.

 

종자기   너희의 죽음은 우리의 민낯을 드러냈다. 소모적인 정치를, 귀를 닫은 언론을, 두려움의 대중을 그리고 겁쟁이인 나의 민낯까지 보여주었다. 이만큼 우리는 너희에게 빚졌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너희들에게 갚을 방법이 없다. 그저 평생의 마음의 빚으로 삼으며 미안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