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OO 씨*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많이 읽는다. 댓글도 주의 깊게 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간편하게 알 수 있는 좋은 창구라고 생각해서다. 그도 사고 이후에 뉴스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20대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쳐버릴 정도’의 정보들이었다. 사회복지 전공자인 그는 인터뷰 도중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두 명의 동생이 있고, 학생회 임원을 맡았던 김OO 씨는 그 영향으로 평소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만큼 뒤에 따르는 죄책감도 크다고 말했다.

 

 

그날은 12시부터 6시까지 수업이 있는 날이라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두 시간 전에는 집을 나선다. 집이 학교랑 좀 멀어서, 아침 9시에 준비를 해야 한다. 핸드폰으로 배가 뒤집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시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올 때였다. 친구들은 먼저 SNS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일어났는데 뭐야? 무슨 일이야?’, ‘전원 구조 돼서 다행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신문이 집으로 오지만 잘 살펴보지는 못한다.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서 읽는 정도. 주로 부모님이 보신다. 아, 그 시간대에 다른 가족들은 출근하거나 등교한 상태였다. 아버지는 주말에 오시는데, 그 주 주말에 사고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갈 준비를 끝마치고 다시 확인하는데 오보라는 거다. 그때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까진 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맹골수도’ 인지도 몰랐고, 다 구명조끼를 입었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학교에 갔다. 가는 동안 남윤철 선생님 소식이 나왔다. 나라면 어땠을까 싶어서 생각을 많이 했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다들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도 출석을 부르기 전에 뉴스를 같이 보자고 하셨다. 이 상황에서 ‘학교 사회복지사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3~40분간 토론했다. 

 

기사를 읽으면서 울었다.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이 전공을 선택했지만 나라면 못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 얼굴도 생각날 거고. 처음에는 학생들을 빠져나가게 도왔겠지만…‘지금 나가면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들어가서 구조를 하신 분도 있었다.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여자 선생님도 계셨고.  

 

오보 이후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사를 보면서 ‘어떡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실화나 인터뷰를 보면서 감정이 점점 격해졌다. 평소에도 감정적인 편이다. 시험 기간 이었는데 시험을 못 볼 정도로 우울하더라. 어떻게든 하긴 했지만. 그때 친구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지는 않아야 한다고 말하더라. ‘너무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것 아니냐, 그래도 할 건 해야지’라는 식으로. 거기에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근데 많은 사람이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계속 뉴스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원래 ‘힘들어도 할 건 해야지’ 하는 스타일인데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거 같긴 하다. 특히 우리 청년세대에게. 나도 사회 탓을 하면서도 똑같이 토익 스피킹 따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다. 대학생인 동생이 있는데, 힘들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네가 이겨내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했던 것 같다. 

 

이 사고는 전국적이었다. 페이스북에도 소식이 많이 올라왔고. SNS의 추모를 보면서 역겹다는 친구가 있었다. ‘걱정하는 척’ 하는 게 싫다고 했다. 물론 짜증이 날 수는 있지만, 걱정하는 척이라는 표현이 거북하고 불편했다. 또, 물론 자기 공간이지만 즐거운 분위기의 이야기나 사진이 올라오면 그걸 보는 게 조금 힘들고 화날 때도 있었다. 선장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때도 화가 났다. ‘인간이 무엇인가’ 싶었다. 안내방송 소식 나왔을 때도 마음이 아팠고.

 

작년에 막냇동생이 초등학생이었다. 그즈음 수련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 사고 이후 취소되었다. 남 일이 아닌 것 같았지. 동생도 뉴스를 봤다. 아직 어리니까 “얼마나 추울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반 애들끼리도 이야기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주제로. 엄청 걱정이 된다. 안 그래도 그저께 동생이 양평으로 수련회를 갔다. 2박 3일간 학부모들이 학교 측에 연락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학교에서 전체문자도 돌렸다. 다들 잘 있다고. 정말 큰 사고였다는 걸 또 느꼈다. 작년 여름에도 10년 만에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갔다. 원래 가족들이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괜히 더 깊은 곳으로 못 들어가고 그랬다. 살면서 크게 사고 났던 경험은 없다. 다만 어머니가 고혈압이 있으신데, 가족력이다. 외할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신 적이 있다. 그때 돌아가시는 줄 알고 많이 놀랐었다.

 

겁만 많지 안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한테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하는 공상은 많이 해서 조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사고 이후 안전 매뉴얼을 주의 깊게 보게 됐다. 영화관 대피로 안내 같은 것도 동생한테도 직접 다시 일러준다. “여기서 만약 불이 나면 저기로 나가는 거야” 이런 식으로. 앰뷸런스가 지나갈 때 2차선과 3차선에서 매뉴얼이 다른데, 그런 것을 기억한다던가. 직업을 사회복지사로 완전히 결정한 건 아니지만, 만일의 상황이 벌어지면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상상을 좀 많이 했다. 

 

왕십리역 사고가 났을 때 대학 동기가 그 사고 장소에 있었는데, 놀라서 울고 전화하고 그랬었다. 그리고서 이틀 뒤인가, 내가 타고 있던 전동차가 갑자기 급정거했었다.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나도 해머 위치를 찾아보고 그랬다. 별일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더 민감해진 게 있다. 가스 밸브나 문단속을 더 살핀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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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6일 진도체육관 ⓒ 이정용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그런 생각도 했다. 안내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까? 아니면 “야, 아니야 나가야돼! 빨리 나 따라와” 이렇게 할까. 나도 가만히 있을 것 같다. 그런데 2호선 사고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문을 나오는 뉴스도 있지 않았나. 안내방송이 나오면 당연히 못 믿는 게 맞는 거 같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당연히 있을 텐데. 하물며 구명조끼를 입었는데도 그런 사고가 났다. 그런데 지하철이다.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기자 : 큰 맥락에서는 사회안전망 부재로 일어나는 사건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런 일이 정말 매일 일어난다. 신문 사회면에도 매일 실리고. 누굴 돈 때문에 죽이거나,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하거나. 일용직 40대 남성이 파킨슨병에 걸린 어머니와 장애인인 형과 살다가 자살했다. 그런 기사에는 너무 마음 아프게도 ‘이해가 간다’는 댓글이 많다. 사람들은 이미 사회안전망을 믿지 않는다. 이미 못 믿고 있어서 ‘나 같아도 죽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도 자살한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한 달 동안 노란 리본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뒀다. 그 이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었다. 되게 애매한 게(잠시 간격) 슬픔을 강요받는다는 말도 있었다. 약간 공감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게 싫었다. 연예인이 단식 시작했다가 잠깐 멈췄다는 그런 소식이 보도되는 것. 연예인이라서 더 주목받았겠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치인이 단식 현장에 찾아가는 것도 그렇고. 기사를 보면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지 몰라서였다. 내가 선동당하는 것 같았다. 언론에 따라 논조가 다르니까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이 이 이슈에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 게 정치인들이 개입해서라고 생각한다. 언론책임도 크고. ‘대댓글’에도 선동되었다는 말이 많다. 

 

사건 이후 가장 큰 키워드가 ‘불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못 믿는 것 같다. 내가 매뉴얼을 습득했던 이유도 못 믿어서 아닐까? ‘소중한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야지’라고 생각해서였을 거고. 배가 누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나? 근데 이제 사람들은 정말 배를 안 타려고 한다. 못 탄다. 비관이 생겨난 건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근처의 어떤 여자 분이 고통을 호소하면서 앞으로 몸을 숙이더라.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이. 너무 놀라서 “괜찮으세요?”라고 여쭤봤는데, 알고 보니 쥐가 났던 거였다. 잠시 뒤 괜찮아지셨다. 지금 생각하면 해프닝이다. 별일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긴 했는데 그땐 너무 당황스러웠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다 빙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 괜찮냐고 여쭤보고, “119에 신고해드릴까요?” 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정말 충격받았다. 이렇게 다들 안 도와주나 싶어서. 그 동그란 원 안에 그분과 나만 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의 그 시선을 잊을 수가 없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희생자 및 생존자 가족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글도 올렸다. 하긴 하는 데 일시적이더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인력을 구축해야 한다. 또 사고 이후 신속하게 개입을 해야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상담 방법에 여러 가지 경로가 있지만 이런 사고는 정말 ‘긴급’한 경우다. 그게 정말 화가 났다. 구조했던 분이 자살시도 하신 것도 마음 아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드셨을 거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는데 죄책감을 가지실 거다. 

 

지하철역에 있는 진상규명 서명하는 본부 등을 잘 못 쳐다보겠다. 미안해서. 우리가 그 심정을 어떻게 알겠나.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하라는 말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 사고 이후의 변화가 있다면, 서로 아무도 못 믿게 됐다는 거다. 나처럼 개인적으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안전의식을 깨우는 변화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나라도 살아야지 이런 인식도 강해진 듯하다. 정부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그게 보여주기 식이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계기로 변화는 계속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전쟁과 같은 강도의 사건’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좋은 변화는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 

 

인간은 당연히, 서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 하나 되는 건 꿈이겠지만 말이다. 만약 사고가 일어난다면… 인간은 눈에 보여야 믿으니까, 그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중요한 건 사람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살아야지’가 아니라 의인은 아닐지라도 내 옆에 모르는 세 사람이라도 끌고 나갈 수 있도록 나부터 내 주위 사람들부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고 이후 키보드 워리어들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인식변화가 참 중요한 데. 그게 제일 어렵지 않나. 사실 나도 이 사건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다. 취업준비 때문에 바빴고, 다른 참사는 왜 기억에서 잊혀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든 참사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기억했으면 좋겠다.

 

*[뭍위에서] 기획에서 인터뷰이의 이름은 인터뷰이의 의향에 따라 실명 혹은 익명으로 기록했다.

인터뷰.글/ 블루프린트(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