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창 밖에서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 속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설익은 르포]는 당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혹은 잊고 지낸 세계를 당신의 눈앞에 끄집어낸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자.

 

“도시 설계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1970년대의 도시학자 레이 제프리는 도시의 환경 설계와 범죄 발생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오스카 뉴먼을 비롯한 다른 도시설계 학자들이 범죄를 예방하는 도시 디자인에 주목했고, 이는 현대 도시학의 한 분야인 범죄예방 환경설계, 즉 셉테드(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 Design)가 되었다.

 

 한국은 2012년에 시작된 서울시의 ‘범죄예방 디자인 프로젝트’를 계기로 셉테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에 마포구 염리동에 시범적으로 소금길이 조성되었고, 작년에 용산2가동 소통길, 면목동 미담길, 행운동 행운길을 비롯하여 서울의 안전 위험지대 곳곳에 확대 적용했다. 정말로 디자인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 서울 OO길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울에 조성된 ’범죄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구역 두 곳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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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골목을 덮은 노란 풍경 ::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

 

오전에 급작스레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내렸다. 전날까지는 봄을 건너뛰고 여름이 온 듯이 무더운 날씨가 이어져서, 도로를 적시는 빗물이 어색했다. 이대역 5번 출구에서 왼쪽의 골목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헤매다 마주한 염리동 소금길, 이곳의 느낌은 오늘 날씨처럼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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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길이 조성된 구역에서 한 블록을 건너면 기자가 재학 중인 서강대학교가 있다. 등교 혹은 하교를 하며 수백 번도 넘게 근처를 지났지만, 염리동 골목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학교 후문 쪽 주택가 있는 데, 왠지 음침하지 않아? 범죄 자주 발생한대” 동기들이 전해준 소문 때문이었다.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염리동 주택가는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를 풍겼다. 오후 1시, 한낮의 시간이었음에도 날이 궂어서인지 다니는 사람이 몇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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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리동은 가장 먼저 시작된 서울시 디자인 프로젝트의 시범 구역이다.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었으나 몇 년 동안 사업의 진전이 없었다. 그대로 방치된 허름하고 어두운 골목은 이곳을 5대 범죄(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전위험지대로 만들었다. 서울시는 2012년, 68개의 전신주에 숫자가 적힌 노란 표지판을 달아서 미로 같은 골목의 지표를 만들었고, 노란 점선과 벽화로 소금길을 조성했다.

 

바닥의 노란색 점선을 따라 염리동을 한 바퀴 도는 소금길 곳곳에 벽화가 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이 크게 그려진 벽화, 소금 주머니를 그린 벽화 등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그림들은 어딘가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부조화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그림들은 바로 옆의 침침한 거리와 대비된다. 노란색 점선은 비교적 큰 골목이나 가게들이 많이 있는 거리보단 좁고 인적이 드문 구역들을 따라 이어졌다. 우산을 펴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골목길도 있었지만, 바닥의 노란 점선, 하늘색으로 색칠된 양옆의 벽과 멀리 보이는 벽화 한 폭에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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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골목을 빠져나오니 노란 표지판과 빨간 경고 벨을 달고 있는 ‘지킴이 집’이 눈에 띈다. 행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벨을 누르면 즉각적인 도움을 주는 곳으로 소금길에 6가 구가 있다. 노예지 씨(15)는 “지킴이 집들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 따로 교육받은 적은 없지만 오며 가며 눈에 띄어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소금길 시행 5개월 차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민의 범죄예방 효과 인식은 78.6%로 나타났다. 실제로 소금길이 조성된 뒤 5대 범죄율이 전년 대비 2.91% 감소했다.

 

쓰레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 용산구 용산2가동 소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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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길게 늘어선 나무 길을 따라 걸으면 해방촌의 입구가 보인다. 용산구의 해방촌,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광복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월남인들이 판잣집을 지어 터전을 일군 마을이다. 지금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은 외국인 거주비율(7.6%, 안전행정부)을 보이며 그에 따른 독특한 지역 문화를 형성했다. 

 

해방촌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분위기의 카페와 식당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지나다니는 주민들의 세 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이었고, 거리를 걷는 내내 어딘지 모를 외국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해방촌이 서울시의 도시디자인 정책 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높은 외국인 거주비율로 인한 소통의 부재 때문이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이웃 간의 다툼이 잦았고, 쓰레기 투기 문제도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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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용산2가동을 ‘소통길’로 지정했다. 폐가가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곳곳에 벽화를 그리고 쓰레기 무단투기가 잦은 지역에 반사경을 설치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 반성하라는 의도였다. 해방촌을 거닐다 보면 주황색 반사경을 자주 마주할 수 있다. 확실히 거울이 설치된 곳에는 다른 데에 비해 쓰레기가 적었다. 주민 변정희(90) 씨는 “그래도 과거와 비교하면 쓰레기가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여기 앞(거울이 설치된 곳)에 막 버렸는데 이제는 정해진 위치에 버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해방촌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벽화를 실컷 감상한 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온통 쓰레기였다. 마을의 곳곳에는 “이곳에 쓰레기를 제발 버리지 맙시다!”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에 쓰레기를 버리시오”란 경고문이 붙어있다. 거주민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경고문은 영어와 아랍어도 함께 표기되어 있다. 쓰레기를 합법적으로 투기할 수 있는 시간은 가로변의 경우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면도로나 골목길의 경우 저녁 6시에서 자정까지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반, 그러나 새빨간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 스티커가 무색하게 거리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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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 앞에서 만난 주민 강현숙 씨(가명, 가정주부)에게 소통길에 관해 물었다. “소통길에 벽화를 조성해두어 예쁘고 보기 좋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숙 씨는 소통길의 실질적인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투기 시간이 아닌데도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일이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 용산2가동은 거리가 낡아서 아스팔트에 생긴 균열을 보수하는 등의 작업이 벽화를 그려 넣는 것보다 시급하다.

 

소금길과 소통길을 통해 셉테드(범죄예방 환경설계)가 서울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반사경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비추게 한 아이디어, 가장 좁고 위험한 골목들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힌 아이디어에는 셉테드의 철학이 담겨 있다. 범죄예방 디자인의 목적은 가장 아름답게 마을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안전하게 마을을 바꾸는 것이다. 

 

마을의 허름한 벽을 채운 동화같은 그림들, 마을 곳곳에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여러 장치들이 얼마나 범죄를 막을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지금까지는 수치상으로 효과가 증명되기도 했고,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변한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마을을 가장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도시설계의 고민은 미래를 내다보며, 장기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