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사립대학 기성회비가 수업료 명목으로 통합된 이후 16년 만에 국·공립대학에서도 기성회비가 사라졌다. 지난 3월 3월 국회에서 통과 된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국립대학 회계 법안)’ 때문이다. 이 법의 통과로 국·공립대학에서 이전까지 학생들로부터 기성회비 명목으로 걷어왔던 돈을 수업료 명목으로 계속해서 걷을 수 있게 되었다. 50년 가까이 법적 근거가 없었던 돈에 대한 근거가 만들어지면서 이젠 합법적으로 같은 양의 돈을 걷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성회비란 시한폭탄 앞에서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전신인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은 발의 때부터 국립대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시끄러웠던 법이었다. 기성회비를 수업료 명목으로 통합하여 걷는다는 것은 불법인 기성회비를 합법화하는 꼼수다, 국립대학에 대해 국가가 재정적인 책임을 지지 않겠다 거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2010년 국·공립대학생들의 기성회비 반환 소송이 시작된 뒤 법원은 “대학이 징수한 기성회비는 아무런 법률적 원인 없이 얻은 부당이득이므로 학생들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며 학생들의 손을 연이어 들어주었다. 2014년도 말, 1차 기성회비 소송이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둔 상황이었고, 대학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대학 측의 패소를 확신하고 있었다. 


국·공립대학들이 당장 2015년도 재학생들에게 등록금을 고지하는 것부터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등록금에 기성회비 항목을 넣는다면 학생들의 반발이 예상되었고, 기성회비를 학생들로부터 걷지 않는다면 대학 재정의 상당한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국·공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총장협의회)는 2014년 6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공립대학 졸업생과 재학생이 제기한 기성회비 반환소송에서 대학이 패소하고 있다”며 국회에 “대체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경우 재앙적 수준의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즉, 2015년도 초 국·공립대학 총장들 코앞에는 해결이 시급한 3개의 숙제가 있었다. 당장 학생들에게 고지해야 할 등록금에 기성회비를 넣을지 말지에 대한 결정, 대법원이 기성회비에 대한 위법판결을 내린 뒤 발생할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그리고 학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낸 기성회비 반환소송에 대한 반환금 지급. 이 세 가지 문제의 발생 원인에는 기성회비에 대하여 국가와 국·공립 대학이라는 두 주체의 방관이 있었다. 과연 이 문제들은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


상습적인 꼼수 ‘이름 바꾸기’


총장협의회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교육예산이 50조 8,000억 원 가운데 고등교육 예산은 8조 7,000억 원에 불과하다”며 “고등교육 예산을 늘려 기성회 회계의 대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고 말했다. 학생들로부터 기성회비를 못 걷으니, 재정의 손실을 국고로 메워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교육부는 2014년도 9월 발표한 ‘2015년도 예산안’에서 2015년도 예산에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수업료로 일원화하였다. 기성회 회계를 대체할 재원을 마련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해 12월 국회에서도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통합하도록 편성한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기성회비를 대체할 국가의 지원은 없었다. 


정부와 국회에서 이와 같은 예산안이 발표된 가운데, 재학생 등록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국회에서 기성회비에 대한 대체법률안 통과만 계속 기다릴 수 없었던 총장협의회는 2015년 1월 기성회비 대신 ‘등록예치금’을 학생들에게 고지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못 받자, 법률과 학칙에 근거도 없는 등록예치금이 등장하여 걷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 학생들과 한국대학생연합 학생들이 국회앞에서 등록예치금 관련 시위를 하고 있다. Ⓒ참여연대


시민단체와 국·공립대 학생들은 등록예치금에 대한 반발했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에서 기성회비는 등록예치금이란 명목으로 순조롭게 걷혔다. 


지난 1월 27일 국무회의에서는 그동안 수업료 없이 기성회비만 납부하던 특수목적 국립대(한국해양대, 목포해양대, 한국체육대, 한국복지대, 한국교원대) 5곳에서 기성회비를 수업료 명목으로 받을 수 있도록 ‘국립대학 설치령’과 ‘한국교원대학교 설치령’을 고쳤다. 


이로써 대학들은 기성회비에 관한 대체법률안이 없이도 성공적으로(?) 등록금을 걷을 수 있었다. 


등록예치금 문제


예치금의 사전적 뜻은 ‘맡겨 둔 돈’이다. 돈을 맡겨 두었다는 뜻은 다시 찾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등록예치금 또한 그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학생들은 기성회비와 마찬가지로 등록예치금을 의무적으로 내야 했다. 내지 않으면 제적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등록예치금을 강제로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도, 기성회비처럼 법적 근거가 없는 등록예치금은 학생들이 얼마든지 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법이 바꿨다. 이러한 소송들을 막기 위한 조항이 대학들이 등록예치금을 다 걷은 후 통과된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의 부칙에 포함됐다. 법률안 제2조는 “2015년 1월 및 2월에 수입되는 2015학년도 수업료 등은 당해 대학회계의 세입으로 한다”라고 명시했다. 등록예치금 문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하 교대연)에서는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2015년 1학기에 부과된 ‘등록예치금’에 대한 소급 면책을 적용했다. 그러나 이는 소급입법*금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소급입법: 법을 만들 때 이전의 일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적용할 수 없게 법을 제정하는 일

서울 과학 기술 대학교

등록예치금으로 2015년도 초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자, 다음은 사라질 기성회비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대신할지에 대한 대체입법 제정이 문제였다. 이 문제는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학의 재정·회계법안’을 골자로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의 ‘기성회회계처리에 관한 특별법안’과 정의당 정진후 의원의 ‘국립대학법안’이 통합된 안이 통과되면서 해결됐다. 


민병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비국고회계인 기성회계를 일반회계와 합쳐 ‘교비회계’로 통합하는 것으로, 기성회계가 폐지되더라도 기성회비를 수업료에 포함하여 징수하는 것이었다. 유은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경우, 기성회비 몫을 단계적으로 국고로 채우는 내용이다. 정진후 의원의 법안은 국립대 운영 경비를 국가가 부담할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단계적으로 국립대 무상교육으로 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민병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 이유는 정부가 기성회비 몫을 국고 부담으로 전환하는 안이 예산 부족 등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기성회비는 수업료로 이름만 바뀌어 학생들로부터 걷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 참여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낸 기성회비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부당이득금(이 경우 기성회비가 부당이익금에 해당된다) 반환 소송의 소멸 시효가 10년임을 고려한다면 청구할 수 있는 모든 학생이 10년 치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낼 경우 대학이 학생들에게 반환해야 하는 금액은 13조 원에 이른다. 국립대학이 걷는 기성회비는 연간 약 1.3조 원이다. 과연 국립대학에서 13조 원이 달하는 상당한 금액을 학생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국립대 기성회는 자체 적립금이나 보유자산이 없다. 파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2014년 6월 초 42개 국·공립대학 사무국장들은 충남대에서 워크숍을 열고 기성회비 반환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에 대비해 기성회 파산을 검토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성회비 문제의 해결안으로 둔갑된 국립대학 법인화 법안

민병주 의원이 발의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의 원안은 이번 기성회비 문제가 불거지면서 만들어진 법안은 아니었다. 국회에서 이와 비슷한 법안들이 몇 차례 발의와 폐기가 거듭된 적이 있었다. 국립대학 법인화와 깊은 관련성 때문이었다. 

법인화 논의는 1987년 교육개혁심의회가 ‘교육개혁종합구상’에서 장기 과제로 ‘국립대학 특수법인화’와 ‘국립대학특별회계제도’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국립대학 법인화의 핵심 목적은 대학이 자율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기관형태로 운영되는 현행 국립대학 시스템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연구경쟁력을 확보하기 곤란하며, 대학 스스로 특성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추진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어 국립대학 특수법인화를 통한 운영체제개선 필요”

-2006년 국립대학의 선택적 특수법인화 추진경과 및 향후 추진계획(안) 중에서


하지만 정부의 국립대학 법인화와 관련된 법안들은 추진 중에 유보되거나 폐기되었다. 야당과 대학구성원들 그리고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하 국교련)의 조직적 반대활동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립대가 법인화될 경우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와, 등록금 상승,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규제 강화 우려, 대학의 수익사업 강화로 인한 상업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며 국립대 법인화와 관련 법안들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국립대학 법인화에 대한 법안들이 대학구성원들에 의해 통과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산되자, 재정·회계 부분만을 분리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이 발의되었다. 재정회계법은 기존의 국립대학 법인화 법안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고, 국립대학 법인화의 핵심 부분인 재정 부분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이 법 또한 발의와 함께 대학 구성원들의 원성을 샀다.

2007년 6월 2일 국립대법인화 저지를 위한 범국민결의대회 Ⓒ전국 대학 노동 조합


회계법안은 3년간 상임위에서 계류하다가 기성회비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유은헤, 정진후 의원의 법안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민병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부담이 상당히 낮다. 게다가 이 법안은 역대 정부들이 지속해서 추진해오던 국립대학 법인화와 연관성이 있는 법안이다. 정부가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의 부담을 줄이고자 한다면 이번 법안의 통과로 정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것이다.


민병주 의원의 법안엔 교문위를 거치면서 수정된 부분들이 있었다. 법안에 “국가는 제2항에 따라 각 국립대학에 지원하는 출연금의 총액을 매년 확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국립대학이 정부로부터 더욱 큰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법안에서 적립금에 관한 조항들을 모두 삭제하여 국립대가 사립대학에서 적립금을 쌓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법인화와 관련된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적립금에 대한 부분을 삭제함으로서 마지노선은 지킨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정에도 불구하고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 3월 3일 발표한 논평자료에 의하면 “제한적인 예산만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예산 증액은 적부가 ‘노력’하는 선에서 판단하겠다는 의미”라며 “기존에 국립대학에 지원하던 예산 규모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하였다. 적립금에 관한 부분에서도 “적립금 조항이 삭제됐어도 국립대학은 이월금을 통해 예산을 계속 남길 수 있다”며 “이미 상당수 국립대학들은 적립금을 남길 수 없는 기성회계에서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이 넘는 이월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게는 1987년, 짧게는 2008년부터 진행되어온 정부의 국립대학에 대한 법인화 정책은 점점 진척되고 있다. 국립대학의 법인화로 자율성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정부가 책임져야 할 국립대학의 공공성은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