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는 ‘즉각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휙휙 지나가는 트렌드들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기보다는, 아직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현상의 단면을 조악하더라도 빠르게 훑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트렌드20]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연재 [인스턴트]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나 숨어있던 현상들을 짚어내어 스케치하고자 한다. 취미, 컨텐츠, 소비 현상들을 엮어내, 생활 방식을 파악할 수 있길 희망한다.

 

가창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 혹은 조금 다른 방식의 음악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음악가의 곡으로 만드는 공연 무대를 중심으로 하고 토크가 거기에 결합하는 형태라면,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나는 가수다 3’, ‘일밤 – 복면가왕’ 등의 프로그램은 그 날의 컨셉을 중심으로 경연과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일밤 – 복면가왕’의 경우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연예인이 얼굴을 가리고 나와 노래 실력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며 권인하, 박학기 등의 연륜 있는 가수부터 배우 박준면, B1A4의 산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음악 프로그램에 조금 더 관심이 간다. 엠넷에서 방영하고 있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이하 너목보)’, 그리고 JTBC에서 하는 ‘백인백곡 – 끝까지 간다(이하 백인백곡)’ 두 프로그램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 음치가 상금을 획득한다

두 프로그램 중 ‘너목보’는 모두 비연예인이 다 출연하며, 프로그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인 만큼 가창력이 중심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유리한, 그리고 상금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너목보는 총 세 단계를 통해 비연예인 출연자 중 실력자와 음치를 가려낸다. 우선 얼굴만 보고 이후에는 목소리만 들어본 뒤 립싱크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일부 사실만 알려주고 질문 시간을 가지며 최종 선택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패널들의 판단이 개입되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세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치에게 상금을 돌렸다. 그만큼 출연자가 음치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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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만 봐서는 노래를 잘해서 반전인지, 못해서 반전인지 모른다. 그게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 너의 목소리가 보여, mnet

 

물론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을 받고 이야기가 퍼져 나가는 것은 주로 실력자 쪽이다. ‘불후의 명곡’까지 서게 된 황치열이나 울산 나얼이라 불리는 방성우 씨가 그렇다. 엠넷이나 네이버 티비캐스트에 클립으로 올라가는 영상도 대부분 음치의 모습이 아닌 실력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프로그램의 내용을 좌우하는 건 역시 음치 쪽이다. 재미있는 건 상당수 패널은 음치인가 실력자인가를 추측할 때 수많은 스테레오타입을 꺼낸다. 예를 들면 ‘저렇게 생긴 사람은 노래 못해’, ‘레이싱 모델이 노래를 잘 부를 리가 없어’와 같은 식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합리적 추측이나 설득력 있는 가정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급하게 꺼내는 직감이나 경험에 기인한다.

 

‘백인백곡 – 끝까지 간다’ :: 노래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미션 성공의 여부다

그런가 하면 음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백인백곡’은 각자 사연이 담긴 곡을 가진 100명 중 한 명을 게스트로 등장하는 가수가 뽑아 노래를 부르고, 파편이 된 가사를 보며 노래를 완성해야 상품을 얻을 기회가 생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최후의 1인이 나올 때까지 게스트들은 대결을 하고, 최후의 1인으로 남은 게스트가 자신을 뽑아준 경우 그 사람들에게는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 조금 복잡한 룰 같지만, 체감상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여기에 등장하는 100명의 사람이나 게스트 중에서는 노래를 빼어나게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문지애, 김대성, 홍석천 등 몇 출연자는 정말 친근한 정도를 넘어 사연을 가진 100명과 비슷한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참가하는 100명 역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모인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가운데 정말 잘 부르는 사람도 있고 음을 놓치는 사람도 있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보통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백인백곡’에서 역시 게스트 중에서도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가수들이 주목을 받는다. 케이윌, 손승연, 정동하 등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사람은 사연을 가지고 출연한 100명을 포함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다. 무엇보다 노래 실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가다. 몇 사람들은 그래서 백인백곡을 ‘도전 1000곡’과 비교하기도 한다. 사회자가 장윤정이라는 점도 비교하게 되는 계기겠지만, 어떤 곡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곡을 선택하여 부르게 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흡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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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파편화된 가사를 모아 끝까지 부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백인백곡 끝까지 간다, JTBC

연예인이거나 아니거나, 혹은 노래를 잘 부르거나 못 부르거나

두 프로그램 모두 찾다 보면 불편한 점이나 단점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비연예인을 눈앞에 놓고 당사자가 눈앞에 있음에도 연예인끼리 왈가왈부하는 건 다소 불편한 지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뒤에 편견을 깨는 부분은 조금 통쾌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역시 노래를 못 불러도 방송에 나오고 상금을 얻거나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즐길 수 있다는 부분이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노래를 잘하는 사람만 지겹게 봐와서 이러한 것들이 신선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방송에서는 노래를 못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심지어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여타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노래 못하는 사람이 우스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래를 못하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불편함을 느껴야 할 것도 아니고 일생의 중요한 덕목도 아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음악을 즐기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싶다. 나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즐겁고 당당하게 음치임을 드러내며 즐길 수 있는 모습을 보며 괜히 즐거움을 느낀다. 프로그램 출연자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프로그램 자체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