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버려… 

 

이 시는 시집 ‘솔로 강아지’에 실린 시 ‘학원 가기 싫은 날’이다. 보기에는 씹어먹느냐는 둥 구워 먹는다는 둥 다소 잔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은 동시로 초등학생 전 연령이 볼 수 있었으나 전량 폐기처분 되었다. 또 이 시를 쓴 작가도 욕을 먹고 있다. 어린이가 보는 시에 이런 내용을 넣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10살짜리 초등학생 소녀다.

 

‘솔로 강아지’ 시집은 잔혹 동시라고도 불린다. 이 시집에는 학원 가기 싫은 날 외에도 약 5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있다. 이 시를 읽은 네티즌들은 “어디서 호러물을 그리다 오셨나?”, “제정신이 아니죠”, “저는 아이가 썼다는 게 상상이 안 돼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작품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가족에 대한 비난도 나온다. 10살이 이런 글을 썼다는 것도 제정신이 아니고 이 시를 출판할 생각을 한 가족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는 시집의 전량폐기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내렸지만 신청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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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강아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아이의 상이 있다. 아이들은 사회의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해야 한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아이답게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 어긋나는 순간 아이들은 솔로 강아지의 작가와 같이 욕을 듣는다. 그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수해야 할 어린이는 무언가가 매우 싫을 때 구워 먹고 씹어먹는다는 표현을 하면 안 된다.

 

아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하고 미리 선을 그어놓는다. 학생들에게는 ‘학생 때는 이래야 한다’하는 식이다. 만약 고등학생이 공부하지 않으면 그 학생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학생이 되어버린다. 그들 생각에 당연히 고등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탈한 학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청년들에게도 같은 식이다. 흔히들 젊은 청년들은 패기 있고 열정도 있으면서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런 청년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용기가 없어”, “요즘 청년들은 도전을 안 해’하는 식으로 청년들을 욕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청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동성애자니까 이러이러한 것을 좋아하겠네”,”이 사람은 청소를 하네? 그럼 냄새가 날 테니까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개인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알려고 하기보다는 멀리서 그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묶어놓는다. 그리고 이 묶어놓은 밧줄을 벗어나는 순간 그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은 유순한 동물에서 사냥감이 되어버린다. 귀여운 아동에서 ‘잔혹동시’를 썼다고 싸이코패스가 되어버린 아이처럼 말이다. 이것이 사냥감이 되어버린 10살짜리 소녀를 대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누군가에 대해서 미리 선을 그어놓고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그 영역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메인 이미지 ⓒJake and Dinos Chapman ‘Minderswertigki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