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00* 씨는 24살 대학 졸업생이다. 현재는 토익 공부를 하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신도 성결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사건 이후 한 달 동안은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그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내가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한 달 이후엔 죄책감을 가까스로 덮어놓았다. 그러나 죄책감이 종종 튀어나온다고 말했다.

 

그날 학교를 갔다. 학교를 가기 전에 뉴스를 봤었는데 가는 중에 뉴스를 봤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그때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봤었다.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구조라니 다행이다.’ 이렇게 넘어갔는데.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뉴스를 봤다. ‘전원 구조 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안에 수백 명이 있다.’ 그때는 정확히 몇 명이라고 안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와 잠시만 소름 돋았다) 그때까지는 ‘설마 구조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큰 배가 무슨 순식간에 침몰하나. 타이타닉도 아니고.

 

사건 다음 날인가. 그 다음 날부터 심각하게 느꼈다. 아이들이 아직도 안에 수백 명이 있다는 속보를 접했다. 전원 구조되거나 벌써 끝난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을 거다.

 

처음 며칠은 구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근데 그 다음부터는 안 될 기도라는 걸 아니까 일주일 지난 시점에는 그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사실 그때 ‘살아서 돌아오길 바란다’ 이건 말도 안되는 거다. 기적을 바라긴 했지만 속으로는 ‘구조가 안될 텐데’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 텐데’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하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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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5일 서울광화문광장 ⓒ박민석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네이버 뉴스를 틈날 때마다 본다. 주로 랭킹에 올라온 거, 메인에 뜬 거, 사람들이 댓글 많이 단 거 위주로. 댓글 보면 싸우는 것도 있고 그런 거 궁금해서 본다. 한달 동안 되게 우울해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우울한 뉴스들만 보면서. 

 

일주일 지나고 ‘이제 애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겠구나’ 생각하면 너무 우울한 거다. 뉴스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던 것 같다. 2학년 9반에 한 명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 기사들 보고.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도 보고. 그때는 유가족이 아니었지. 피해자 가족들이.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동시에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죄책감. 팽목함에 가지도 못했고, ‘정말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내가 바빠서 내가 하는 건 정말 뉴스를 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성금도 해봤자 몇 천원 했던 것 같다. 또 그런 것도 있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즐겁고 그런 기억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애들은 그런 걸 누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사라져 갔다는 게… 

 

‘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진짜 그때는 ‘맛있는 거 먹어도 되나’ 정말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 팽목항에 저렇게 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맛있는 거 먹어도 되나?’ ‘게임을 해도 되나?’ ‘친구들하고 놀아도 되나?’

 

사실 그 전에 경주 마우나리조트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10명 정도가 죽은 걸로 아는데 ‘되게 안됐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이렇게 지속될 정도 우울했던 적도 없었고 죄책감도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태까지 삶을 돌아봤을 때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강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전에도 아픈 사람들은 되게 많았다. 내가 만약 그런 사람들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면 내가 좀 더 기부를 많이 했겠다. 그런데 기부를 그렇게 많이 하진 못했다.

 

주변사람들과 이 ‘우울함’에 대해 잘 얘기를 못 했던 것 같다. 얘기하면 되게 우울해진다. 사실 그때 여자친구를 많이 만났는데, 여자친구랑은 그런 얘기를 잘 하지 못했다. 데이트하려고 만났는데 우울한 얘기를 하는 것이 힘드니까. 그런데 얘기는 좀 했던 것 같다. ‘그 뉴스 봤냐’ 정도. 그렇게 잠깐 잠깐 얘기를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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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7일 서울시청광장 ⓒ이우기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프사 같은 건 바꾸지 않았다. 바꾸는 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 시간이 지나서 구조되는 건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는 게 헛된 희망이 아닌가. 그때 계속 에어포켓 얘기가 나왔다. 근데 일주일 지난 상황에서 ‘에어포켓 안에서 살았다’가 말이 안되는 거다. 근데 누가 그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저거 가능성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분들은 한 줌의 희망이라도 걸고 싶은 사람들인데. 그래서 다들 ‘기적을 바랍니다’고 프사를 걸었는데, 나는 차라리 ‘그냥 빨리 생존의 가능성을 포기했으면, 그게 오히려 더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되게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더 죄책감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좀 소극적인 사람인 것 같다. 

 

먼저 나서지도 않고 페북에서 도는 것도 나는 잘 따라하지 않는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나는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고 충분히 확인한 뒤에 행동하는데 그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상황이라서..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은 면에서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집회라도 갈 수 있지 않았겠나. 조금 비겁하지 않았나…

 

다니는 교회에서는 사건 초기엔 구조를 위해 기도했고 그 이후로는 가족들에 대한 위로를 구했다. 그런데 한 달 좀 안되는 기간 정도였다. 보수적인 사람들 쪽에서는 유가족에 대한 비판적인 말이 있었다. 교회가 아무래도 보수적이다 보니 몇 달 동안 기도하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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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9일 진도팽목항 ⓒ장영식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왜 하나님은 저 많은 아이들을 나오지 못하게 놔두셨나?’ 그런 생각도 했다. 신학을 공부하다 보면 구약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게 처음이 아니다. ‘왜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나는가?’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인가?’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는 일인가?’ 신학적으로 깊게 들어가면 되게 머리 아프다. 교수님께 물어보고 책도 찾아보고 싶었지만 사실 그때 다른 공부하기 바빴다. 그런데 어렴풋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주님이 뜻이 있으시겠지’라는 식의 발언에 대해선 이런 생각이 든다. 그게 하나님이 뜻하신 바인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렇게 슬픈 일들이 더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본다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우리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거다. 우리가 잘 가꿔내고 이런 일이 없도록 했어야 하는데, 제도도 안전하게 잘 만들고. 애초에 세월호가 그런 식으로 뜨지 못했어야 했다. 우리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심지어 바티칸에 돌아가서도 안부를 물어봤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 그게 참 대조적이다. 물론 교회에서도 도와주러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약간 생색내러 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또 여전히 대다수인 보수적인 교회에서 그 어떤 뉴스나 루머들만 보고 판단해서 유가족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하지 않았나. 유가족들 빨갱이라고 말하는 목사님 기사도 봤다. 그런 거 보고 아 진짜 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함을 극복했다기보다 내가 다른 일을 하고 바쁘게 지내면서 애써 잊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사실 죄책감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계속 갖고 있었다. 내가 페북에서 받아보는 목사님 중에 김병년 목사님이 있는데, 그 목사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다. 그런 걸 보면서 한 번씩 덮어둔 죄책감이 나오면 다 읽지 못하고 스크롤을 내려버렸다. 읽다보면 눈물나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세월호 뉴슬 접할 때 처음 한 달은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면, 그 다음엔 보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야가 대판 싸우고,.. 그런 진흙탕에서 내가 뭘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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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일 진도팽목항 ⓒ박민석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진흙탕이 된 것이 아닌가. 어쨌든 세월호 사건은 야당에게는 좋은 공격기회였던거다. 여야가 아주 신나게 싸웠다. 결국엔 야당이 좋게 가져가지 못했지만, 보상금 문제도 유가족들이 원하지 않은 보상을 야당 측이 달라했다. 그게 또 뉴스에 나오고 그러면 사람들이 ‘이 보상에 대한 건 아니지 않나?’ 또 이런 식으로 비판한다. 그러니까 야당에서도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했고 여당 측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미지를 깍아 내리면서 진흙탕이 된 것 같다. 사실 나도 잘 정리가 안된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인데,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싸우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인 건가. 아니 그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왜 이게 진행되지 못하는 거지.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바꿔야 하는 거다. 세월호 사건 때 제도적으로 문제가 나타났고, 그 책임자들의 무능한 대처가 나타났는데, 그걸 당연히 바꿔야 되는데, 왜 그게 안돼서 유가족들이 싸워야하는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일주년이었다. 달라진 게 없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뉴스도 봤다. 어느 배를 조사했는데 트럭을 묶지도 않고 출발했더라.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 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적으로도 딱히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보상 문제도 마찬가지고. 희생당한 아이들이랑 유가족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떻게 보면 이 상황이 재수 없어서 걸린 아이들이 되어 버린 상황이 아닌가. ‘언젠가 이렇게 재수 없게 걸릴 사람이 또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니까 뭐라 해야 하지. 세월호 사건을 보면 바꾸고 더 이상 이렇게 죽는 아이들이 없게 해야 하는데, ‘어쩌다 사고 난 경우다’라고 보는 것 같다. 이렇게 바뀌지 않는다면 또 언젠가 제2의 세월호가 나오는 게 아닐까.

 

좀 더 정부를 불신하게 됐다. 원래도 그렇게 믿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도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나 질타가 남아있다. 내가 한 게 아무 것도 없구나라는 생각. 그런데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뭘 한다고 바뀌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항상 마음 속으로 약간의 울분과 안타까운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인터뷰는 2015년 4월 19일에 진행됐습니다. 

*[뭍위에서] 기획에서 인터뷰이의 이름은 인터뷰이의 의향에 따라 실명 혹은 익명으로 기록했습니다.

 

인터뷰.글/ 릴리슈슈(kan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