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OO씨는 대학의 기숙사를 관리하는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유럽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했다. 지금은 페이스북을 끊었지만, 사고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치와 안전이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개인의 성찰과 정치에 대한 관심은 별개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안전에 대한 강박이 심해지는 만큼, 정치에는 눈길을 주지 않게된다는 결론은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생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그는 단 한번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날은 친구 아버지 장례식에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사고 소식을 좀 늦게 접했다. 핸드폰 볼 감정상태도 아니었고 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장례식장에서 나와서, 지하철 역사 안의 빵가게에 갔었다. 무슨 역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시간은 한 시정도 였고. 그때 조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로 가려던 차에 커피한잔 사가려고 들른 거였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세월호 사고가 났다는 걸 알았다. ‘전원 구조 가능할 듯’, 이런 식으로 자막이 나왔다. ‘뭐야, 무슨 사건이야?’ 하다가 자막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출근을 했는데, 아니었던 거지. 그때가 서너시 정도였다. 출근하고 나서는 컴퓨터로 계속 뉴스를 봤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조교들도 아예 실시간으로, 포털의 뉴스를 켜놨다.

 

다 지나고 나서 언론에 대한 무능을 깨달았지, 당시에는 사건 자체가 너무 충격이었다. 학생들이 너무 많이.. 나도 고등학교때 제주도를 –그 배는 아니지만- 타고 다녀왔으니까 그때 생각 나면서 심하게 감정이입이 됐다. 4월 16일은 실종자가 계속 바뀌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뉴스를 봐야 할지도 몰랐었다. 그날 JTBC 인터뷰 실수 있지 않았나? 동생이랑 켜놓고 새벽까지 보고 잤다. 

 

눈뜨자마자 또 TV틀고. 안 그런 사람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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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4일 안산 합동분향소 ⓒ박종식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사고가 나고 20일에 유럽여행을 갔다. 일단 그런 사건이 있으니까 여행자체도 꺼려졌다. 못 가겠더라 혼자. 비행기도 무섭고. 부모님도 가지말라 그러고. 엄마한테 같이 가면 안되냐고 하기도 했고. 공공장소에서의 침체된 분위기를 느낄 새 없이 떠났다. 

 

아, 홍콩 공항이든 스위스 공항이든, 세월호 뉴스가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유럽 가서 계속 페이스북을 봤다. 어떤 아버지께서 JTBC 인터뷰 하셨던게 기억난다. 너무 덤덤하게 말씀을 잘 하시더라. 나중에 인터뷰가 잡혀있었는데 그 학생 시신이 발견 됐다고 해서, 손석희 앵커가 그거 전달하는데 그때 진짜 펑펑 울었다. 잘 기억 안 나는데, 파리 아니면 체코였을 거다. 시차가 달랐다. 왕십리역 사고 났을때도. 사람들이랑 2호선 또 사고 났다고, 우리나라 왜 이러냐고 얘기했었다.

 

첫 목적지가 스페인과 프랑스였는데 모두 한인민박에서 지냈다. 거기서도 역시 화두는 세월호였고. 사람들이 계속 소식을 확인했다. ‘시신 또 찾았다’, ‘사망자 수가 안 줄어든다’ 그런 얘기. 여행하는 게 좋긴 했는데 온전히 못 즐기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동할 때마다 너무 불안했다. 비행기나 배를 타면 무조건 불안했다. 조금만 흔들려도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에서 동생과 만나서, 이동을 스위스-이탈리아-크로아티아 이렇게 했다. 그 때 이탈리아에서 크로아티아 가는 걸 페리로 예약했다. 2인실에서 자고 가는. 둘 다 너무 무서웠다. 동생은 한숨도 못잤다고 하더라. 

 

난 안전에 예민한 사람이다. 초보운전 차를 잘 안탄다.(웃음) 자동차도 무서워서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운전 숙련자의 차만 탄다. 맥주 한 잔 마신 운전자 차도 안 탄다. 영화관에서 비상대피로를 확실하게 확인한다. 스크린에서 말해줘도 내 눈으로 무조건 다시 확인한다. 자리는 무조건 끝자리로 예매한다. 복도 바로 옆이니까.

 

삶의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나는 죽는걸 무서워한다. 죽음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게 아예 두려운정도다. 근데 최근에, 그동안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일이 많이 생겼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정도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힘든 건 아니지만, 내가 상황을 받아들이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애도 아닌데, 너무 힘들었다. ‘아 그냥 죽을까?’ ‘죽고 싶다’ 이 정도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까지는 생각 안했던 거같다. 술먹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그 아파트 복도에서 순간적으로 ‘아, 뛰어내릴까’ 그런 생각 잠깐 들긴 했다. 

 

입원한적은 한번도 없다. 나랑 동생은 병원신세를 져 본적이 없다. 고소공포증은 없는데 무서운데 비행기 공포증이 있다. 비행기는 사고나면 무조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외에 무서워하는건 벌레 정도다.

 

(기자[이후 생략]: 근데 여행을 많이 다녔다. 비행기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않나?) 단 한번도 안전하다고 느낀 적 없다. 좌석 앞에 꽂혀있는 매뉴얼도 빼서 다 본다. 승무원분들 시범도 항상 보고. 지하철은 위험부담이 적은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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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4일 진도 팽목항 ⓒ신선영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사고 당시에, 정치인들이 진도에 갔던 게 가장 화났다. 너나할 것 없이 수행원 데리고 가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교육부장관이었나? 분향소 갔는데 보좌관이 유가족한테 “장관님이십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 보고 심하게 욕했다.

 

물론 진짜 걱정 되서 간 걸 수도 있다. 그들도 사람인데 연민을 느꼈겠지. 근데 워낙에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크니까, 다 쇼인거같았다. (그런 불신은 언제부터?) 대학교 입학 직후까지는 내 인생에 정치는 영향을 안 미친다고 느꼈다. (지금은 미친다고 느끼나?) 너무너무. 연말정산이 그 예다. 정책하나 슥 바뀌면 바로 타격입고. 뉴스에서 늘 가계부채 얘기 나오는데 그게 나한테 진짜로 느껴지니까. 취업난도 진짜 심각하다고 느꼈다.  

 

(안전 매뉴얼 같은게 매뉴얼 자체로가 아니라 안전 자체가 정치인 말 한마디에 달렸다는 게 증명됐다. 정책의 확정이 아니라 정치 안에서 안전이 오간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사건 이후로 국민들이 안전에 있어서는 국가를 전혀 신뢰하지 못하고, ‘내가 배워야겠다’, ‘알아서 해야겠다’ 그런 마인드가 생기지 않았을까?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이런 큰 인재가 우리나라에 유독 많지 않나? 대구지하철 참사나, 삼풍 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나, (잠시) 세월호나. 네팔의 지진 같은 게 아니라 인재들이다.

 

( 해외여행은 어쨌든 위험을 담보하는 행동이다. 그보다 가고 싶었던 욕구가 컸던 것 아닌가?) 그렇지. 너무 경험해보고 싶었다. 유럽은 치안이 안좋다. 나는 해 떨어지면 재깍 들어왔다. 나한테 숙소 잡을 때 제일 중요한 건 그 도시의 치안이었다. 돈은 두번째였다. 에펠탑 근처가 제일 안전하대서, 비싼 곳이었는데 그냥 잤다.

 

독일 하이델부르크에서, 철학자의 길을 걷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걸더라. 원래 경계심이 강해서 뭐지? 하는데 같이 등산하자고 해서 얘기하면서 걸었다. 자세히는 기억은 안 나는데, ‘세월호’ 라는 단어로 바로 얘기가 됐었다. ‘캡틴’ 얘기를 제일 많이 했다. 할아버지가 그건 독일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시더라.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해서 좋았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때는 호스텔이었는데 옆 침대에 중국인 여성이 있었다. 옆 나라여서인지 더 잘 알더라. 너무 안타깝다고 하면서, ‘한국은 미래를 잃었다’고 까지 표현했다

 

(작년 4월 16일 이후로 안전하다고 느끼나? 대중교통에서 불안하지 않은가?) 불안하다. 그때 서울역에 문제 있다고 기사 났는데, 한동안 지하철을 안탔다. 1호선을 주로 이용하는데 서울역을 무조건 통해가니까. 버스 타거나 돌아서 갔었다. 그것도 너무 불편하니까 요즘은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긴 한다.

 

(당신이 얻는 정보에 대한 신뢰도는?) 많은 사이트를 방문하진 않는다. 싸이월드 하던 버릇이 있어서 네이트를 선호한다. 지면에서 인터넷으로 뉴스 중심이 옮겨오면서 실시간으로 떠오른 정보를 주로 보게 되지 않았나. 예전엔 전체적으로 정보를 접했다면 이제는 이슈 위주로 뉴스화 되고. 베플을 자주 본다. 사람들 생각 궁금해서. 

 

(모든 게 다 생중계됐다. 신문이 1면부터 15면까지 다 그 얘기였다. 슬픔을 언론이 많이 만들어냈다고 보는가?) 그렇다. 언론사의 큰 뉴스이기도 했고. 제대로 정보를 확인 안하고 내뱉는 게 정부만큼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 특히 유가족들은 정보를 얻을 곳이 언론 뿐 아닌가.

 

참사 직후엔 페북을 더 신뢰했다.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나 TV나, 진도 팽목항을 생생하게 접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어머니께서 핸드폰 화면으로 몇분동안 찍은 걸 봤었다. 그게 오히려 와닿았다. 그때 어머니가 “언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여기에 직접 오셔야 한다”고 하셨다. 솔직히 그땐 기사보다 더 주목했던 건 실종자 수였다. 예전에 이탈리아 배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 있었다는 거 읽고 그것만 바라면서. ‘제발, 제발’ 이랬었다. 와, 근데 진짜 아직까지도. 뭐 아무것도 된 게 없다는게 놀랍다. 1주년 될 때 제일 많이 든 생각은 그거였다. 

 

(추모를 하는 게 순간 부담되고 움츠러들 때가 있었다. 한국에서 ‘행동’이라는 것을 하려면 자격이 갖춰져야 한다.) 그건 무조건 나라 탓인 거 같다. 상대적으로 젊은 기자들이 어떤 사안을 보도하지 않는 것도 그 기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시스템이 잘못된 거다. 대통령이나 정치에 대한 얘기도 민감하게 여겨진다. 그런 얘기하면 용기나 소신 있는 발언으로 여겨지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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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8일 서울 세월호 국회농성 ⓒ이명익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사고 이후에 기숙사 대피훈련 강도가 더 올라갔다. 한 학기 한번 정도였는데 한 달에 한번 정도로 늘어났다. 기숙사 엘리베이터 쪽이 문이 원래는 다 열려있는데, 불이 나면 방화문이 탁 닫히게 되어있다. 불이 더 안 번지는 시스템인데, 2011년에 생겼다. 히터처럼 생긴 게 있는데 그게 연기 흡입기인 것도, 소화전의 자세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아는만큼 보인다는 걸 알았다. 화재대피 훈련 중 누군가의 실수로 방화문이 다 닫히고 흡입기도 작동된적이 있었다. 문이 떨어져나가고 그러더라. 눈 앞에서 그렇게 되니까 당황했다. 진짜 실제 사고가 나면 난 탈출을 가장 나중에 해야한다. 학생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하니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면 나도 선장이랑 다를 바 없는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근데 내가 내린 결론은 ,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너무 불안해도, 그래도 도울거같다. 

 

그런상태로 나오면, 그런 마음을 가지곤 평생 못 살거같다. 나만 살자고 나온 내 자신이 너무너무 싫어서.

 

(4월 16일 이후에 스스로에게 생긴 변화는?) 사건 이후 어느날 덕수궁 앞을 걷고있었다. 누가 봐도 고등학생인 이들이 담배피고 침 뱉고 그러고 있는걸 봤다. 소위 말하는 ‘양아치짓’ 하면서. 근데 그걸 보면서 ‘아 저렇게라도..’ 하고 생각했다. 그냥 그들을 보니까 그냥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든 거다. 갑자기 그들에게 고마운 느낌까지 들었다. 예뻐보이기 까지 했다. 

 

(생활속에서 허무함을 느끼나?) 그렇다. 특히 돈 관련해서. 고등학교 내내 학교생활이 정말 재밌었는데, 집에 와선 맨날 울었다. 정말 단순한 성격이라 학교에서 애들이랑 놀면 집에 대한 생각이 아예 안난다. 근데 집에만 오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내가 주변에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왜 나는 그 많은 정자중에 그 한마리였을까,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다. 좀 많이 지쳤었고. 대학 입학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난 부양자이기 때문에 세금도 더 떼가고. 그리고 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노무현 정권-이명박 정권 사이에 있었다. 두 정부의 복지가 다르다는 걸 정말 많이 느꼈다..

 

(당신에게 이 나라는 어떤 존재인가?) 보호는 너무너무 안 어울리는 단어다. 소속감이랑은 다르다. 어차피 같은 언어를 쓰고, 무의식적으로 소속감은 지울 수 없다. 난 국가가 보호를 해줘야 하는 존재로까지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좀 심한 말일지 모르겠는데, 이제 무관심해졌다. 아예 그런쪽으로 생각을 안해봤다. 생각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생각 하는 것도 감정소모가 너무 심하다. 사실 필요한 건데, 28년을 살면서 국가와 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아예 없었다. 100년이든 200년이든, 그때 이 사건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세월호는 지금 이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고 사건같다. 축소판. 이것보다 더 잘 설명되는게 없다.

 

진상규명 반대 논리 중 하나가 정부가 잘못한 거 아닌데 왜 욕하냐는 것 아닌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든 정부든 정치하는 사람이든, (창 밖 가리키며) 진짜 저 사람이 지나가다 홀에 빠져서 위험한 것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있었는데 진상규명이 안되는건, 역사에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것이다. 

 

동생이 근로하는데서 고등학교 홍보를 맡았는데 단원고로 배정받았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하더라. 되게 무서워했다. 그러다 동생이 사진을 보내줬는데, 반에 포스트잇 엄청 붙어있고 꽃 있고 그런풍경이었다. 수능 전이니까 9~10월쯤. 사진 봤을 때 ‘이건 과거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동생한테 어땠냐고 물어보니까, 애들이 너무너무 착하다고 하더라. 복도 끝 두 반이 다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고 했다. 그때쯤엔 교실에 불이 다 꺼져있었는데, 옆에 지나가던 학생들이 “야, 이젠 불도 끈다. 불도 끄네”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라. 그들에겐 그게 일상인 것이다. 나도 공휴일에 안산이나 진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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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9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최윤아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인터뷰는 2015년 5월 1일에 진행됐습니다. 

 

*[뭍위에서] 기획에서 인터뷰이의 이름은 인터뷰이의 의향에 따라 실명 혹은 익명으로 기록했습니다.

 

인터뷰/글. 블루프린트(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