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OO* 씨는 군 전역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복학 준비생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일병이라는 계급을 달고 군대의 새로운 환경에 한참 적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입대 전 독서 토론 동아리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지만, 입대 이후 사회에 폐쇄적인 환경과 고된 일과로 시사에 대한 관심이 다소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2014년 4월 16일에 기억이 나는 게 부대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TV에서 나오는 뉴스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을 확인했다. 사실 처음 그 사실을 접했을 때는 배 하나 침몰했거니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랬던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날, 부대의 행정반에서는 제주도에 여행 간 부대원 가족이 있는지 확인했었다. 해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원 파악하고 전화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부대 내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연관된 사람은 없었다. 나도 가족에게 혹여나 우려하는 마음에 전화해보았다. 

그때 당시 부대원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걱정했다. 처음 뉴스로 접했을 때보다 실종자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렇게 매일매일 걱정하면서 보낸 것 같다.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 평소보다 뉴스를 많이 보긴 했다. 이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뮤직비디오부터 틀어서 봤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일어나자마자 뉴스부터 틀었던 기억이 있다.

2014년 4월 23일 안산 합동분향소 ⓒ박민석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그것까지였다.

그 참사 이후 부대원들이 뉴스를 많이 봤던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간부들도 병사들처럼 안타까워하며 뉴스를 같이 봤던 것 외에는 딱히 큰 관심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차분하게 보낸 것 같다. 부대의 환경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평소 (위험한 훈련은) 안전규칙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잘 지킨 것 같아 딱히 변화한 것은 없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진도 주변의 부대는 출동하고 엄청나게 바빴다고 들었다. 내가 있던 부대는 그곳과 떨어져 있어 바쁘진 않았다.

밖에 있었을 때보다 참사를 접했을 때 다소 덤덤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다른 사건보다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었지만, 일병 때라서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물론 처음에 그 사건을 받아들였을 때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바쁜 일과 때문에 빨리 잊히고 무덤덤해졌다. 그때 당시 훈련을 준비한다고 바빠서 다른 마음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나에게 4월 16일이 의미 있는 날은 아니었다. 4월 16일은 2015년 4월 14일 전역하고 이틀 후라는 의미밖에 없었다. 세월호 1주기인 올해는 친구들을 만났다. 또 SNS에 올라온 세월호 관련 글을 살펴보았다. 씁쓸했다. 인양은 언제 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왜 이제야 정부에서 이런 대처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단원고 학생들이 참사를 당하기 전 부모님에게 카톡을 보낸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스스로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그 사건으로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변화한 것은 딱히 없다. 

나에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고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대구 지하철 참사와 그리고 최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산 외대 체육관 붕괴 사고(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부산 외대 체육관 붕괴 사고가 일어날 당시에도 군인이었는데, 부산 외대에 다니다 군대에 온 부대원도 있었고, 고향이 울산이라 부산 외대에 다니는 친구도 많아서 많은 걱정 되었다. 세월호 참사도 한국에서 일어났지만, 나 자신과 더 가까운 곳에 있고 나와 관련되어야 자신에게 크게 다가왔다. 


*인터뷰는 2015년 4월 16일에 진행됐습니다. 

*[뭍위에서] 기획에서 인터뷰이의 이름은 인터뷰이의 의향에 따라 실명 혹은 익명으로 기록했습니다.

인터뷰.글/ 소소한(sukim1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