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창 밖에서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 속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설익은 르포]는 당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혹은 잊고 지낸 세계를 당신의 눈앞에 끄집어낸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자.

‘나들이 나왔어?’라는 문구가 담긴 벽화 그림, 어쩐지 낯이 익은 그림이었다. 어디선가 본 만화에서 나온듯한 그림, 이 거리는 강풀 만화거리이다.

 

강동역 4번 출구로 나와서 길을 걷다 보면 만화거리의 입구를 알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만화거리 근처에 강풀의 작업실이 있다. 강동구는 강풀의 몇몇 작품에서 배경이 되었다. 거리는 강풀의 순정만화 시리즈인 ‘그대를 사랑합니다’, ‘바보’, ‘당신의 모든 순간’ 등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벽화에는 원작의 내용을 재구성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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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

 

만화거리의 입구에는 이곳의 간략한 지도가 있다. 어디에 어떤 주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표시해 놓은 지도다. 골목골목이 복잡해 지도 없이는 길을 찾기 힘들다. 만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커플들이 눈에 보인다. 이곳을 찾은 어떤 커플은 지도를 어디서 나눠주는지 다른 커플에게 물어본다. 골목 입구에서 얻을 수 있다고 답하는 이 커플, 이들은 기사를 보고 이 골목을 찾았다고 한다. 황진성(가명, 28) 씨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없고 좋아요. 와볼 만한 곳이긴 한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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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이어져 있지 않다. 말 그대로 골목 어귀에 하나하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지도의 번호를 따라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림의 내용이 순정만화이다 보니 길을 걸으면서 훈훈한 느낌을 받는다. 

 

서울에 살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닌 적이 없는 이지은(가명, 22) 씨는 산책하시는 마을 주민분들께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지은 씨는 “서울을 돌아다닌 지는 얼마 안됐어요. 그냥 명소 같은 곳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만화는 잘 안 보는데 그래도 영화화된 것도 있고 해서 알긴 알아요. 저번에 이화동에 벽화 마을을 갔었는데 거긴 평일인데 사람이 엄청 많았거든요. 여기는 주말인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은 없어서 구경하기 편해요.”

 

강풀의 만화거리다 보니 몇몇 상가는 만화 그림으로 디자인이 되어있다. 추억이 흐르는 이발소, 이곳의 주인아저씨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이 디자인한 그림으로 가게를 꾸몄다. 하지만 만화거리가 조성되면서 이 거리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저씨는 결국 자신의 디자인을 포기하고 강풀의 캐릭터로 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강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게 좋겠냐는 질문을 받고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20대로 되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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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흐르는 이발소

 

이 이발소의 주인아저씨인 김영오 씨는 외관 디자인을 바꾸면서 내부는 어떻게 꾸밀까 많이 생각을 했다. 이발소는 아저씨, 할아버지들밖에 찾지 않는다. 김영오 씨는 그래서 20대로 되돌려준다는 문구를 이용해서 이곳을 추억의 장소로 바꿔놓았다며 내부 디자인을 설명했다. 2, 30년대의 음반을 비치하고 당시의 이발 기구를 비치해 7, 80세 할아버지들께서 20대가 된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김영오 씨는 “거리를 이렇게 조성해 놓는 것은 좋은 일이. 그래서 나도 그 흐름에 따라서 바꾼 거고. 물론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까 관광하러온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가지. 그래도 사람 많아지는 게 좋은 거지”라고 만화거리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이렇게 변하고 나니까 바뀐 것도 많지. 예전에는 청소년들이 나쁜 짓 하려고 골목에 숨어들었는데 이제 그림도 있고 사람도 자주 다니니까 그런 학생들도 많이 사라졌고 골목 분위기가 밝아지다 보니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많이 줄었어. 전체적으로 깔끔해졌지.”

 

만화거리의 청년들

 

그림을 찾아가면서 이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강동팟’이란 곳을 마주하게 된다. 강동팟의 이진영 씨는 “저희는 자생하는 청년 아지트입니다”라고 강동팟을 소개했다. “강동팟은 청년들에게 공간을 대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해 청년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활동을 마련하죠”라고 진영 씨는 말했다. 강동팟은 만화거리 조성과는 별개의 단체지만 마을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만화거리와 상생한다. 강동팟에서는 이날 15시까지 진행되었던 ‘마을탐방을 통한 콘텐츠 만들기’라는 주민참여 프로그램에서 강풀 만화거리를 이용해 마을의 문제점과 발전방안을 토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시회_건물

전시회가 열리는 철거예정인 건물

 

이 거리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허름한 주택이 하나 있다. 이 주택은 40년 전에 지어진 주택으로 한 달 뒤 철거될 예정이다. 그러나 철거되기 전까지 이 낡은 주택에서 전시회가 열린다. 이 전시회의 작가 백영훈 씨는 ‘전시는 반듯한 갤러리에서 해야 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바뀌었고 전시공간이 우리가 사는 집과 같다면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전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 만화거리의 그림에 참여하다가 여기에 전시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생각하다가 하기로 했죠. 제 작품이 철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곧 철거될 이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잘 맞는 것 같아요.” 

 

이 건물은 철거된 후 예술 창작촌 및 커뮤니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영훈 씨는 “생각보다 여기에 청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저번에 강동팟 사람들이랑 다른 청년들이 모여있는 것을 봤는데 서른 명 남짓 사람이 있더라고요. 좀 신기했어요”라고 이곳의 가능성을 말했다.

 

강풀 만화거리는 구청의 주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협력해 거리를 조성했다.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성한 거리는 마을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만화 거리 조성과 함께 지역 공동체에서도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그리고 골목의 이미지에 적합한 전시회와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센터 설립은 만화 거리에 플러스 요인이 되고있다.

 

글/사진. 사미음(blue934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