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는 ‘즉각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휙휙 지나가는 트렌드들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기보다는, 아직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현상의 단면을 조악하더라도 빠르게 훑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트렌드20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연재 ‘인스턴트’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나 숨어있던 현상들을 짚어내어 스케치하고자 한다. 취미, 컨텐츠, 소비 현상들을 엮어내, 생활 방식을 파악할 수 있길 희망한다.

 

 

 

KBS2TV의 드라마 ‘프로듀사‘가 연일 순항하고 있다. 자체 시청률 갱신은 물론 출연진의 인기에 힘입어 여러 나라로 수출, 콘텐츠 파워 지수도 장악했다. 지금은 활짝 웃고 있는 ‘프로듀사’이지만 처음 1,2회를 방송했을 당시에는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초반의 인물 소개와 배경 설명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큐 3일의 방식을 차용한 중간 인터뷰 방식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깬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1, 2화 때까지만 해도 배우들이 ‘하드 캐리’하는 드라마라는 평이 많았다. 

 

 

 

3회부터 시청자들의 호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PD의 교체 시점과 맞물려 있다.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윤성호 PD 대신에 트렌디 드라마로 익숙한 표민수 PD가 3회부터 본격적으로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 표민수 PD의 효과는 대단했다. ‘뽀샤시’해진 화면부터 강화된 러브라인까지, 시청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더해진 대중성에 시청자들은 시청률과 호평으로 반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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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2TV ‘프로듀사’

 

 

 

대중성은 잡고, 기획 의도는 놓치고

 

 

 

‘프로듀사’의 애초 목적은 트렌디 드라마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리얼 예능 드라마’를 표방하며 진짜배기 방송국 사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기획 의도에는 PD들의 삶을 직장인들의 삶으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포부도 담겨있다. 그 의도에 맞게 설정들은 리얼하다. 실제 프로그램 이름을 쓰고 실제 PD 이름을 유사하게 혹은 똑같이 쓰기도 한다. 제작진이 의도한 리얼함의 각은 ‘다큐 3일’의 방식을 차용한 것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방송국 사정에 무지한 신입 PD의 말을 다큐의 형식으로 전해 시청자들이 느끼는 거리감을 해소하고 재미를 선사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48억짜리 KBS2TV 홍보 드라마, 사내 방송용 드라마라는 비판과 함께 리얼 ‘예능’ 드라마에 걸맞지 않은 ‘노잼’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그 이후, 바뀐 PD가 주도한 방영분이 나가자 호응은 얻었지만 애초에 KBS2TV가 호언장담했던 신선함과 새로운 시도는 차츰 없어졌다. 다큐 3일의 방식을 차용한 인터뷰 형식은 이제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방송국 구성원과 사정을 보여주기보다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이 강화되었다. 

 

 

 

물론 주인공 남녀 간의 케미 터지는 러브라인은 재미있다. 오래된 소꿉친구 간의 러브라인은 클리셰지만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느꼈던 설렘을 선사해줄 것만 같고, 짝사랑의 모습은 공감이 간다. 게다가 로코물에서 강세를 보였던 연기자들의 합과 예쁘게 편집된 러브라인 장면들은 의도적인 걸 알지만 설렌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불려가는 장면, 팀원들끼리 회의하는 장면,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생하는 장면 대신에 주인공들은 편집과 촬영을 하는 공간에서 서로의 감정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분명 재미있어졌지만 문제는 애초의 신선함과 기획 의도가 점점 러브라인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듀사’는 방송국판 미생을 꿈꿨지만 현실은 재벌가에서 방송국으로 장소만 옮겨진 트렌디 드라마가 되었다.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트렌디 드라마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재미와 대중성도 좋지만 리얼 예능 드라마 ‘프로듀사’가 꿈꿨던 목표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신선함을 위해 독립영화 PD에게 제작을 맡기고 다큐 3일의 방식을 차용했던 처음의 포부는 어디로 갔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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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2TV ‘프로듀사’

 

 

 

케이블 잡기용 드라마?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프로듀사’는 케이블 견제용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동안 금요일과 토요일은 케이블이 꽉 잡고 있었다. 케이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 부터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까지 케이블이라는 핸디캡을 넘어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케이블의 성공과 함께 지상파 위기론은 항상 대두되었다. 이런 우려의 시선 속에서 지상파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KBS2TV는 대응으로 ‘프로듀사’의 금요일, 토요일 방영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방송 전부터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교하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많았다. 하지만 ‘프로듀사’는 보란듯이 엄청난 캐스팅과 색다른 드라마임을 강조했다. 리얼 예능 드라마라는 호칭만 봐도 그렇다. 프로듀사의 정면 승부에 성공 가도를 달리던 TVN의 ‘삼시세끼’마저 우스갯소리로 ‘프로듀사’가 끝나고 봐달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실패할 수 없는 캐스팅과 제작진 라인업, 더불어 PD의 교체로 인한 드라마 방향 우회라는 강수로 ‘프로듀사’는 초반의 혹평을 벗어던지고 성공했다. 케이블 드라마의 성지였던 금토 드라마를 향한 노림수가 제대로 먹힌 셈이다. 하지만 그 성공에 제작진들이 외쳤던 색다름은 어디로 갔을까. 차라리 색다름으로 보자면 논란은 있었어도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고 있는 SBS의 ‘정글의 법칙’이 더 나아 보인다. 

 

 

 

지상파의 위기라는 압박 속에서 대중성과 새로운 시도 간의 줄타기를 하는 것은 어렵다. ‘프로듀사’의 경우 소위 빵빵한 제작진과 출연진들을 두고 독자적인 노선을 타며 시청률 실패와 혹평의 위험을 감수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초반의 설정들이 러브라인에 밀려 리얼 예능 드라마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현재 ‘프로듀사’의 행보는 어쩐지 아깝다. 시청률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공의 지표를 얻고 케이블을 잡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실패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글. 백야(yjeun02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