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간호사인 아영은 교사인 애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 반지를 선물로 받았다. 이젠 혼자 지낼 오피스텔을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 시댁에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눈치가 보여 점심시간에 짬을 내 혼수용 외제차를 보러 다닌다. 애인이 준 카드로 피부과 동료들에게 비싼 저녁도 샀다. 오늘은 새로 산 명품 화장품으로 다른 메이크업을 했다.… 

 

이 문장들 중에서 진짜는 얼마나 될까?

 

 

영화 <거짓말>의 주인공 아영에게 거짓말은 각본 외우기와 같다. 위급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거짓말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아영의 예상대로 되묻고 행동한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결제 직전, 아영이 “제가 지갑을 안 들고 와서요”라고 말하면, 직원들은 선뜻 계좌번호를 적어준다. 특유의 말투와 명품가방, 적어 내려간 가짜 주소가 그 신뢰의 근거가 된다. 영화 마지막, 스스로를 ‘거짓말병’으로 규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소위 ‘상류층’에 어울리는 태도와 말투를 스스로 학습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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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은 피부과 직원들에게 늘 아슬아슬한 거짓말을 한다. ⓒ <거짓말> 스틸

 

 

 

 

아영은 대상과 공간에 따라 거짓말에 살을 붙이거나 떼어낸다. 결제한 냉장고를 전화로 취소할 때는 “남편이 새 물건을 주문했다”고 말하지만, 오피스텔을 보러 다닐 때는 미래의 투자 가치까지 내다보는 싱글여성이 된다. 위기의 순간에도 거짓말은 유연하다. 외제차 매장에 있는 자신을 목격한 동료에게 “아까 보셨죠?”라고 먼저 말을 건네는 대담함도 있다.

 

 

그런 아영은 줄곧 무표정이다. 전혀 신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휘감는 메마른 일상이 더욱 부각된다. 리플리증후군이나 공상허언증처럼 자신의 거짓말을 믿지도 않는다. 오히려 거짓말을 하는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인처럼 보인다. 아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체가 되어 만들어낸 세계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푹 꺼지고 만다. 교사 애인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태호가 집에 놀러온 모습을 보고, 아영은 허구와 실제가 섞이는 모습에 폭발한다. 아영에게 무결점의 상태는 거짓말은 거짓말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오히려 두 세계를 더욱 날카롭게 비교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콜중독인 언니와 미성년자인 동생을 돌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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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은 거짓말의 ‘증명’을 위해 태호와 함께 사진을 찍어 동료들에게 보여준다. ⓒ <거짓말> 스틸

 

 

 

피부과에서의 거짓말이 연속가능한 성격이라면, 전자제품 상가나 부동산에서의 거짓말은 일회적이다. 아영은 돈을 쓸 수 있는 곳에서는 더 과감한 거짓말을 한다. 동료들이 있는 피부과에서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고려해야 하지만, 매장에서는 돈만 있으면 된다. 아니, 돈 있는 척만 해도 직원들은 아영에게 침을 뱉을 수 없다. 거짓말을 하던 최초의 순간에는 일탈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젠 그것도 취한 언니를 깨우거나 손님의 여드름을 짜는 것과 같은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아영이 보여주는 표정이 다양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다. 거짓말하는 사람 특유의 조마조마함이나 어색한 표정연기도 없다. 그는 피부과에서 손님과 상사를 대할 때에만 진실을 말한다. 그에게 거짓말은 목숨을 부지하거나 무언가를 빼앗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행동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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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의 집은 잘못 배달된 냉장고가 들어가기 어려울정도로 작다. 

 

그는 어떤 삶을 지나왔기에 몇 겹의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사는것일까? ⓒ <거짓말> 스틸

 

 

 

 

아영의 거짓말 세계에서 남자은 믿음직스러운 존재다. 실제 주변에 있는 이들과는 다르다. 알코올중독인 아내를 오랜 시간 보살피다 떠나는 형부와 집을 나간 동생, 아영에게 치근덕거리는 유부남 운전강사가 전부다. 아영의 진짜 모습을 봐 주는 듯 했던 애인 태호도 마찬가지다. 아영은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그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만, 결심은 태호에 의해 구겨진다. 그동안 자신이 해 온 거짓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태호를 보며 아영은 허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낀다. 그것은 더 정확히 말하면 허구의 ‘평범한 삶’을 진짜로 맞이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인이자 절망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모두 아영이 오피스텔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게 삶은 늘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은’ 일들의 연속이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마구잡이로 말할 때에야 아영은 환한 웃음을 보인다. “아버지는 빚쟁이라 어딨는지도 모르구요, 엄마는 저희 버리고 나가서 재혼하셨어요. 동생도 집 나갔구요. 언니는 알콜중독이에요. 저는 피부과에서 여드름 짜는 일 해요. 그거 얼마나 더러운 줄 아세요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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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대기중인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외워, 부동산 직원이 돌아간 뒤 몰래 들어가는 아영. ⓒ <거짓말> 스틸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지로 거짓말을 고른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을 공격하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 언제나 ‘정신 똑바로 차린 상태’로 버텨왔을 아영은, 결국은 경찰서에 앉아 “이제 거짓말 안 할 수 있어요”라고 고백한다. 그가 거짓말을 마음 놓고 해 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아영이 되뇌이는 ‘정신차리자’혼잣말이 슬프다. 그렇게 치열하게 버티려는 캐릭터는 영화를 통틀어 아영 단 한명뿐이다.

 

 

 

글 / 블루프린트. (41halftime@g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