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창 밖에서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 속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설익은 르포]는 당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혹은 잊고 지낸 세계를 당신의 눈앞에 끄집어낸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자.

 

평일 초저녁, 구로시장에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주변 아파트에서 물건을 사러 나온 손님들이다. 구로공단이 시들해진 이후 구로시장도 같이 쇠락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성기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렸을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중앙로에서 벗어나 패션거리 쪽으로 진입하는 순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다. 대부분 사람은 중앙길에서 먹자골목 쪽으로 다닐 뿐이었다. 패션거리 쪽 골목에는 군데군데 빈 상점이 보인다. 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밝은 조명이 켜져 있는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작은 점포 네 개가 있다. ‘구로는 예술대학’, ‘똥집 맛나’, ‘쾌 슈퍼’, ‘아트 플라츠’가 그것이다. 이 작은 공간 입구에는 ‘영-프라쟈’라고 쓰여 있다. 이곳은 젊은 청년 장사꾼들 위주로 조성된 시장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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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20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다. 색색의 건물 분위기도 한몫한다. 조명도 흰색 조명을 사용한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건물 안에서 밖을 바라다보면 대낮에 온 느낌을 받는다. 이날 아트 플라츠 멤버들과 몇몇 청년들이 벽을 흰색으로 페인트칠하고 있었다.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다. 주변에 비어있는 건물은 몇십 년 동안 계속 비어있었다. 빈 건물은 주변 상인들의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들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허락을 받고 빈 건물을 환하게 칠한다.

 

영-프라쟈가 위치한 이 공간은 유동인구가 적다. 10여 년 전부터 이미 소외되어 있었다고 한다. “먹자골목 쪽에는 사람이 많은데 여긴 별로 없어요.” 하지만 시장이 활성화되었던 5, 60년대에는 이곳이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여기 청년들이 다시 이곳을 살리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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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는 예술대학

 

영-프라쟈는 ‘구로는 예술대학’에서 전체적으로 관리한다. 영-프라쟈 근방에 사무실도 따로 있다. 청년들은 사무실로 가는 길에 주변 상인들과 꾸준히 인사를 한다. ‘구로는 예술대학’은 이미 4, 5년 전부터 구로에서 문화예술 기획을 해온 단체다. ‘별별 시장’이란 마을시장을 기획하면서 구로시장에 있는 빈 점포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마침 구청에서 빈 점포를 활용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구청과 협의하여 장사하려는 청년들을 모집했고, 최종적으로 4팀이 뽑혔다. 그것이 지금의 영-프라쟈다.

 

‘구로는 예술대학’ 가게에서는 크레페를 판다. 프랑스 여행 중 인상 깊은 먹거리여서 아이템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최윤성 씨, 그녀의 별명은 윤숭이다. “여기서는 사람들끼리 별명으로 불러요.” 영-프라쟈의 청년들은 서로 친해 보인다. 페인트칠을 하던 아트 플라츠 사람이 시원한 물을 달라고 하면서 다툰다. “같이 장사하는 친구들과의 화합이 중요해요. 저는 아마 여기서 혼자 장사했으면 장사를 못 했을 것 같아요. 서로 같이하고 힘들 때는 의지하면서 장사하는 게 많은 도움이 돼요.” 

 

시장에서의 조화

 

“저희는 여기서 화합을 할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들은 구로시장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젊은 사람들이 와서 이곳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는 있다. 하지만 주변 분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자칫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에 장사하시던 분들과 자연스럽게 같이 장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쾌 슈퍼는 그렇게 동화되기 위해 이곳 상인들이 쓸 수 있는 재료를 판매한다. “저희도 결국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에 불과하잖아요?” 처음 모집할 때 심사기준에 얼마나 화합을 잘할 수 있을까를 보는 것도 중요한 심사기준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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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를 파는 ‘구로는 예술대학’과 똥집 튀김을 파는 ‘똥집 맛나’

 

처음에는 좋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윤성 씨는 “여기 앞에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처음에 저희를 별로 좋게 보시지 않으셨어요. 그러다가 그분이 마음이 풀어지신 거 같아요. 저번에 막 자기 젊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그러셨어요. 이분들도 처음 장사하실 때 저희와 비슷한 연령대였을 거잖아요? 그 아주머니도 겉으로는 그러셨어도 속은 좋은 분이세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애착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나가시는 아주머니께서 청년들에게 오늘 장사 잘 되느냐고 물어보면서 가신다. 어떤 아주머니도 페인트칠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네 가게 셔터에 칠 좀 해달라고 하신다. 개업한 지 반년이 약간 안됐지만 서로서로 관심을 두면서 대화를 나눈다. 똥집 맛나 사장님은 지나가면서 “중국 사람들이 계산할 때 돈을 던진다고 하잖아. 근데 나 오늘 그거 처음 당해봤는데 기분 묘하더라”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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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 슈퍼 내부

 

이들에게 영-프라쟈란?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장은 사람이 모이는 곳,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거든요.” 윤성 씨가 장사하는 소감을 말한다. “여기도 그래요. 그냥 비어있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거든요. 근데 그 죽은 공간에서 아주 작게라도 뭔가를 해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모이죠? 그럼 그때 이야기가 생기고 사건이 생기는 거에요. 그러다 보면 공간이 살아나요.” 윤성 씨가 말했다.

 

매월 셋째 주 금요일에는 야시장을 연다. 각 점포에서 준비한 계획으로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영-프라쟈는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한 문화공간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은 초창기라서 먹거리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업을 좀 확대하려고요. 올해 하반기에 영-프라쟈 2차 모집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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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플라츠 가게 앞에서 마실 것을 팔고 있다

 

해는 오래전에 저물었고 주위에서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시간이 되었다. 주변 상인들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는지 슬슬 오셔서 구경도 하시고 가신다. 아트 플라츠 앞에는 테이블을 따로 설치해 마실 것을 팔고 있다. 쾌 슈퍼에서는 재료를 손질하고 벽화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야외 테이블에서는 간단한 식사를 즐기시는 분들도 있고, 똥집 맛나에서 안주를 주문해 술을 마시는 분들도 있다. 사람이 모이면 사건이 생긴다는 말을 믿으며 과연 이 청년들이 어떤 일을 해낼지 기대가 되는 밤이다.

 

글/사진. 사미음(blue934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