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는 ‘즉각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휙휙 지나가는 트렌드들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기보다는, 아직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현상의 단면을 조악하더라도 빠르게 훑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트렌드20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연재 ‘인스턴트’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나 숨어있던 현상들을 짚어내어 스케치하고자 한다. 취미, 컨텐츠, 소비 현상들을 엮어내, 생활 방식을 파악할 수 있길 희망한다.

 

 

‘재벌가, 대통령가 며느리들의 요리선생’. 예능 [한식대첩] 홈페이지는 요리연구가 심영순씨를 그렇게 소개한다. 여성이 요리예능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한 조건을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는 요리학원을 열고 책까지 냈지만 ‘요리사’로 불리지는 않는다. 고위관료·교수의 며느리나 딸 등 ‘명문가’ 여성들에게 한식을 가르친 대가 정도로 통할 뿐이다.

 

이제 방송에 출연하는 셰프, 혹은 요리사들은 예능인이라는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게 됐다. 코미디언까지 아니지만 요리하는 남자라는 대체불가능한 캐릭터로 프로그램의 무게를 잡는다. 여기에 요리가 전업이 아닌 사람들이 그것을 ‘시도’하는 과정도 예능에서 스토리로 각광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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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쇼 홈페이지

 

이는 예능사회의 ‘장르’가 늘어난 것 뿐, 예능의 ‘여성 총량 법칙’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전히 ‘셰프군단’은 조리복을 입은 ‘훈남 셰프’들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남성 셰프들이 대거 등장하는 올리브쇼는 고정 여성패널은 한 명만 두고있다. 올리브쇼 2014 MC였던 홍은희나 현재 진행자인 김지호가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갖춘 조건은 ‘기혼’이다. 이 조건에는 물론 ‘가정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위치’일 것이라는 암시가 있다. 그렇게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은 (그들의 진행에 따라)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특히 김지호는 ‘미식가인 남편을 따라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줄 아는’ 캐릭터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김성주와 정형돈을 서브하는 역할을 하던 여성 출연자들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 출연자들은 남성 셰프, 혹은 요리를 하는 남성 출연자 중심의 프로그램에서 애매한 위치를 갖는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여성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소희 셰프나 배우인 이하늬, 이유리 등이  진행하는 ‘쿡방’이 있긴 했다. 김소희 셰프의 [홈메이드 쿡]이나 이하늬의 [비건 레시피]같은 프로그램은 각 출연자의 특징, 즉 요리사나 채식주의자라는 정체성을 끌어올린 흔적이었다. 그에 반해 이유리의 [새댁 상차림]은 전통적 성역할을 부각하는 컨셉의 전형이었다. 그런 컨셉은 [집밥의 여왕]과도 일맥상통한다. 여성 셰프가 전면에 나오는 프로그램 자체가 적다거나, ‘요리하는 여자’를 색다른 각도로 접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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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도 좋아할 것 같다. ⓒ 올리브쇼 방송화면

 

 

여기에 ‘여심을 자극’하는 음식이 트렌드로 설정되면서, 여성들이 특정 음식을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이 쏟아진다. “디저트류 같은 단 음식, 칼로리가 낮은 가볍고 상큼한 식감의 음식들은 누가 좋아할까?”에 대한 대답을 프로그램이 알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음식을 먹은 패널과 셰프들 사이에서는 “이건 여자들이 좋아할 맛”이라는 시식평이 흔하게 오간다. 물론 그것은 어느 순간에는 여성 출연자들의 말이 되기도 하지만, 가상의 여성 이미지가 ‘남성’ 셰프들이 주인공인 방송에서 설정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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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수로 솜사탕을 녹여먹는 음료에 대한 채낙영 셰프의 시식평,

뻥튀기 봄나물 피자에 대한 홍진호의 시식평. ⓒ 올리브쇼 방송화면

 

 

물론 라이프스타일 채널이나 예능의 의무가 여성-남성 셰프들의 양적불평등 해소에 있지는 않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의심스럽다. [집밥의 여왕]처럼 프로그램 제목에서 ‘집밥’ 주체를 여성으로 한정하거나, [한식대첩]의 도전자 과반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언뜻 여성은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메인일 수 있는 이유는 예능에 ‘부엌’, 즉 가정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 셰프 군단’이 꾸려진다면, 그들이 지금의 남성 셰프들처럼 예능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집밥의 여왕]의 요리사 버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반면 ‘요리 하는 남자’의 요리 기반은 가정이 아니다. 돈을 버는 직장, 즉 ‘자신의 주방’이 무대라는 점이 늘 강조된다. 그래서 밀려드는 ‘쿡방’을 보며 먼저 드는 감정은 분노보다는 지루함이다. 이런저런 각도로 재생산되는 고정관념은 매회 달라지는 레시피를 따분하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글. 블루프린트(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