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는 ‘즉각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휙휙 지나가는 트렌드들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기보다는, 아직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현상의 단면을 조악하더라도 빠르게 훑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트렌드20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연재 ‘인스턴트’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나 숨어있던 현상들을 짚어내어 스케치하고자 한다. 취미, 컨텐츠, 소비 현상들을 엮어내, 생활 방식을 파악할 수 있길 희망한다.

얼마 전 국립국어원 트위터 계정이 상담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 그간 국립국어원 트위터 계정은 각종 질문에 빠르게 답변해주는가 하면 여러 외래어를 우리말로 다듬은 결과를 알려주는 일 역시 부지런히 했다. 특히나 팔로워 수가 적은 이들에게는 다소 많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루에 많은 트윗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트위터상에서 여러 사안으로 크고 작은 이슈를 꾸준히 만드는가 하면 많은 비판 멘션과 공격을 받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지난해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크게 질타를 받았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정치 이념을 어떻게 가지냐에 따라 아직도 근로자, 노동자 두 단어를 가지고 신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는 이미 순화대상에서 제외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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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트위터 메인 캡쳐화면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최근 사랑’에 관한 정의를 다시 바꿔놓은 것이다. 2012년, 국제앰네스티 대학생네트워크가 주축이 되어 ‘이성애중심 표준어 정의 개정 캠페인’을 통해 사랑, 애인, 연애 등의 정의를 보편적인 방향으로 개정한 것을 2014년 이성애에 국한한 의미로 되돌려놓았다. 여기에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개정 반대 운동을 벌인 것이 영향을 줬다. 국립국어원은 나름의 변명을 내놓았지만, 논리적인 근거 없이 ‘다시 검토하고 심의했다’는 말뿐이었다. 이에 사랑, 연애, 애정, 연인, 애인 다섯 단어가 다시 이성애 중심의 정의를 갖게 되었다. 현지시각으로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법원은 미 전역 동성 결혼 합헌 결정을 내린 것과는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랑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커플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두 사람이 좋은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데, 왜 어느 한쪽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 최근 ‘페미니스트’의 정의가 잘못되어있음이 발견되면서 논란은 한 차례 더 일어났다. 2015년 6월 15일 현재 페미니스트의 뜻은 “① 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②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에서 “①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②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2번은 바뀌기 전과 후 모두 명백히 틀린 말이며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이나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페미니스트라고 하긴 어렵다. 더불어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페미니즘을 “사회, 정치, 법률 면에서 여성에 대한 권리의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에서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견해”라고 변경하여 정의한 것과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묘하게 느껴진다. 국립국어원은 해당 단어의 뜻 변경 요청에 재심사할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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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 2015년 2분기 수정 내용 중 일부. ⓒ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원은 특정 이슈에서는 비교적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몇 부분에서는 굉장히 유연하기도 하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너무’의 의미를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 변경했다. 따라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몇 사람들은 국립국어원이 지나치게 유연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이는 ‘개기다’, ‘삐지다’처럼 이미 널리 쓰이는 말을 인정하게 된 상황과 비슷하다.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 최정도 학예사는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너무’가 긍정적으로 쓰이게 된 변경에 대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희가 항상 규범의 보수성 때문에 많이 고민하는데요. 실제 쓰이는 쓰임하고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보통 우리 국립국어원은 전체적으로 국민께서 언어를 편안하게 쓰시도록 도와드리려고 하는 경향이 크거든요. 그래서 오랫동안 논의됐던 ‘너무’라는 단어를 국민께서 좀 편안하게 쓰실 수 있게 수정한 거죠. 긍정적인 표현에 ‘너무’를 썼다고 해서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시는 것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쓰실 수 있게 해 드리고자 이번에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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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홈페이지 메인 캡쳐화면

이처럼 국립국어원은 때로는 보수적으로, 때로는 유연하게 언어를 구성해나간다. 이에 관한 또 다른 문제는 일관성 없는 외래어, 전문용어 표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학계에서 쓰이는 표기와 국립국어원이 권장하는 표기가 다를 때, 주로 학습자의 입장에서 둘 간의 괴리를 빈번히 느낄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을 두고 설명을 할 때도 미묘하게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표기 차이가 발생하여 헷갈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외래어 표기의 경우 내부에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과 차이가 발생하거나 원어 발음과 큰 차이를 가지기도 한다. 우리말 다듬기 작업 역시 전문성 부족으로 단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한국어로 바꾸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말로 다듬은 결과 역시 양적으로 늘리기만 할 뿐 보편화 작업이나 자리 잡기 작업에는 소홀하기도 하다.

국립국어원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에서 보수성을 지키는 영역이 따로 있고 그렇지 않은 영역이 따로 있다는 느낌이 들어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국립국어원은 한국어와 관련된 기관 중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국가의 기관이자 언어 기관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각종 사안에 따른 설득력 있는 대처나 뚜렷한 주관, 그리고 전문성으로부터 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한 언어의 기준을 정하는 곳은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기관이 아니라 모두를 설득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글. 블럭(blucshak@gmail.com)